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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환의 인사이트] 치트키도 잘못 쓰면 ‘shit키’ 된다

2019-01-23 오전 2:07:00 임기환

(베스트 일레븐)

치트키는 게임에서 어드밴티지를 만들기 위해 사전에 설계된 프로그램 또는 문장을 의미한다. 스타크래프트에서 주로 쓰이는 이 표현을 축구로 옮기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나 리오넬 메시 같은, 스스로 힘으로 국면을 변화시키는 해결사들이 해당된다.

한국에선 손흥민이 치트키에 가장 가까운 선수다.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에선 치트키라 부르기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이번 아시안컵에 합류하기 전까지 그의 소속 팀 토트넘 홋스퍼에서 보였던 활약은 치트키라 부르기에 충분했다. ‘손흥민’이라는 키를 누르면 굳이 해리 케인의 발을 거치지 않더라도 공격에 대한 갈증은 시원하게 해소됐다.

치트키가 달린 자판이 바뀌었다. 토트넘에서 한국 대표팀으로. 친숙하고도 낯선 자판에서 손흥민이 맡은 역할 역시 낯설기만 하다. 손흥민은 이재성의 부상 공백을 메우기 위해 4-2-3-1의 2선 중앙 미드필더 자리로 투입됐다. 토트넘으로 치면 크리스티안 에릭센의 포지션이다.

2선 공격형 미드필더를 맡은 손흥민은 대표팀에 합류하고 바로 치른 2019 아시아축구연맹(AFC) 아랍에미리트(UAE) 아시안컵 조별 라운드 최종 중국전에선 한 수 위의 클래스를 선보이며 “역시 손흥민”이라는 찬사를 자아내게 했다. 손흥민은 산책하듯 몸 사리며 뛰고도 중국 선수를 압도했다. 여기엔 이미 16강에 오른 중국이 토너먼트를 대비해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는 인상도 작용했겠지만, 이와 별개로 손흥민의 클래스는 남달랐다.

이 치트키가 한국(53위)보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이 두 배 이상 낮은 바레인(113위)를 상대로 먹통이 되리란 생각은 범인으로선 쉽게 하기 어려울 듯하다. 메시는 이따금씩 보는 중앙 미드필더 역할도 곧잘 소화한다. 폴 포그바에게 더블 볼란테는 완벽히 들어맞는 옷은 아니지만 그래도 제법 맵시를 낸다. 우리에게 손흥민은 그런 선수다. 더 솔직해지면 ‘그런 선수라고 믿는’ 것에 가깝다. 손흥민 정도면 어디에 둬도 시쳇말로 평타는 쳐줄 거라는 생각.

신봉의 오류, 인식의 오류에 가깝다. 손흥민이 톱클래스 선수임엔 분명하다. 그러나 명제는 어디까지나 토트넘이라는, 거기서도 측면이라는 옷을 입었을 때라는 전제 하에 성립된다. 대표팀에선 아니다. 이번 한 경기를 놓고 비판하는 건 아니나, 손흥민이라고 언제나 축구팬의 답답한 마음을 속 시원하게 뚫어 주는 건 아니다. 오히려 아닌 적이 더 많다. 한국 축구가 침체된 순간에 이따금 영웅적 면모를 보이기에 마치 ‘만능키’처럼 인식되는 측면이 없지 않다.

이 인식의 오류에서 모두가 벗어나야 한다. 손흥민에게 “‘에이스’에 ‘주장’인데 ‘해결사’까지 해”라는 건 삼중의 짐을 씌우는 가혹한 처사다. 그리고 그 암묵적 믿음과 기대감은 어떨 땐 코끼리 발목을 짓누르는 수 톤의 족쇄로 작용할 수 있다. 구자철이 득점왕에 오르며 한국을 4강에 올렸던 2011 카타르 아시안컵만큼만 해줬더라면, ‘카타르 메시’ 남태희가 대회 전 부상을 입지 않았더라면, 이재성이 훈련 도중 다치지 않았더라면, 손흥민이 에릭센의 옷을 입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재성에 기성용마저 부상으로 다친 마당에 황인범을 위로 올리자니 본래 그의 포지션에도 맞지 않을뿐더러 정우영이 파트너 역할에 고민이 생긴다. 그렇다고 이청용을 가운데 두기도, 2011 대회처럼 구자철을 공격적으로 쓰기도 모호하다. 스페이스키가 빠진 빈 구멍엔 조금 길이가 짧더라도 시프트키가 들어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아이러니하고 웃기는 상황이지만 지금의 손흥민은 스페이스키를 어쩔 수 없이 대신해야 할 시프트키 처지다. 2선 공격형 미드필더 롤을 수행하기에 아쉬운 구석이 없는 건 아니나, 그렇다고 손흥민을 그 자리에 넣지 않고 배길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아이러니한 딜레마를 푸는 게 감독의 역량인데, 손흥민에게 거는 기대치와 그가 대표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있으니 해결책을 찾기도 쉽지 않다. 과격한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치트키도 잘못 쓰면 시트(shit: 쓸모없는 것)키가 된다. 아르헨티나의 메시도, 포르투갈의 호날두도 한때 그런 적이 있었다. 그 비극을 손흥민에게까지 보고 싶진 않다. 벤투 감독이 시프트키 두 개를 끼워 넣는 한이 있더라도 치트키가 가진 힘을 떨어트리지 않길 바란다면 지나친 욕심일까.

글=임기환 기자(lkh3234@soccerbest11.co.kr)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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