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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 요즘 경기, 후반 놓치면 ‘루저’ 돼요

2019-06-24 오전 10:12:00 임기환

(베스트 일레븐)

미친 경기가 나왔다. 그것도 K리그에서. 강원 FC가 포항 스틸러스에 기적 같은 역전승을 거뒀다. 맙소사. 또 기적이라니. 상투적 표현이 아니다. 허구한 날 나오는 반전도 아니다. 이 정도는 돼야 기적인 거다.

23일 오후 7시, 강원도 춘천에선 최근 ‘천 만 관객’을 눈앞에 둔 영화 OOO급 대반전이 일어났다. 춘천 송암스포츠타운 주경기장에 모인 강원 홈 팬들은 후반 25분까지 홈 팀의 무기력한 0-4 대패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남은 시간 기껏 해봐야 추가 시간까지 30분. 이 시간 안에 두세 골도 아니고 네 골 이상은 넣어야 기껏 비길 수 있는 팀이 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이 기상천외한 팀은 정말로 ‘무엇’을 ‘했다.’ 반백년에 한 번 일어날까 말까한 축구 경기의 대반전극을 눈앞에서 목격했다.

강원이 기적을 썼다. 그것은 그간 기적이라는 표현을 너무 남발한 것 같이 숙연해지는 ‘진짜 기적’이었다. 리얼 미라클. 강원이 후반 26분 조재완의 추격포를 시작으로, 후반 33분 발렌티노스의 두 번째 골, 그리고 후반 추가 시간 조재완의 두 골과 정조국의 기적(또 기적을 써버렸다) 같은 쐐기 골로 송암스포츠타운에 K리그 역사상 유례없는 아드레날린을 분출했다.

두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할 광경이었다. 은 현장 출장자부터 방구석 편집자까지 여러 눈이 이 경기를 목격했다. 기자는 방구석 편집자였다. 쉬는 날이라 라이브로 못 보고 하이라이트로 돌려봤다(결과는 기사를 통해 알고 있었다). 그런데 하이라이트 말미에 와서도 도무지 골이 나오지 않는 거였다. ‘이거 언제 나오는 거야?’라며 사기를 당한 느낌으로 영상을 보던 중, 조재완의 골이 겨우 등장했고, 조금 이따 발렌티노스의 추가 골이 나타났다. 이제 2-4면 아직 세 골은 더 터져야 되는데 추가 시간에 돌입하고 나서부터도 득점 장면은 나오지 않았다. 뭔가 이상했다. 아주 많이 이상했다.

이때부터 시작이었다. 174㎝ 단신 조재완이 포항 문전에 불쑥 나타나더니 각도만 살짝 튼 헤더 슛으로 세 번째 골을 넣었다. 이때가 후반 45+1분이다. 스코어는 3-4였지만, 이 정도면 강원 선수들은 충분히 대견했고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과 신체 물리력의 상관관계를 안다면(비록 모르더라도) 기적이 일어날 거란 생각은 안 드는 시간대다. 이 숨 막히는 추격전의 헤드라인은 ‘강원의 졌잘싸’ 또는 ‘숨 막히는 난타전’ 정도로 마무리 될 듯했다.

오산이었다. 조재완은 2분 뒤에도 자신의 발쪽으로 떨어지는 볼을 잡지도 않고 왼발 다이렉트 슛으로 때려 넣었다. 0-4에서 4-4라니. 이것 또한 기적이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사기가 오를 대로 오른 강원 선수들은 포항 골문을 향해 불나방처럼 달려들었다. 그 군집이 이루는 일사불란한 파도는 마치 슬램덩크의 주인공들처럼 “이 정도로 끝 낼 거면 시작도 안 했어”라고 외치는 듯했다. 4-4를 만든 지 불과 2분 만에, 조재완이 크로스를 올렸고, 정조국이 북산의 강백호처럼 상대 골문에 ‘버저비터’를 꽂아 버렸다. 손이 아닌 머리로 했다는 사실만이 달랐다.

b11의 현장 기자는 포항의 4-0 승리로 다 만들어 놓은 기사를 마지막에 엎고 다시 써야 했다. 이는 다른 기자도 다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K리그가 출범한 1983년 이후 처음 나온 네 골 차 대역전승을 현장에서 지켜 본 ‘카타르시스’는 그 노고에 충분한 보상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b11의 다른 기자는 “축구에도 스리런이 있냐?”라고 했다. 그걸 듣고 “표현 죽이네요”라며 ‘칼럼 제목으로 쓰면 딱 좋겠네’라는 생각을 했다(그렇지만 처음 생각한 제목을 밀기로 했다). 강원이 후반 추가 시간 4분 동안 만들어 낸 ‘미친 3득점’은 상기 표현대로 야구의 스리런 홈런이었다.

이 칼럼을 쓴 목적은 딱 하나다. 그날의 감동을 고스란히 전하려는 것도, 기적을 억지 기적으로 포장할 생각도 아니다. ‘그래, 이 맛에 축구 보는 거지’ 나아가 ‘이 맛에 현장에서 축구 보는 겁니다, 여러분’이라고 말하고 싶어서다. 이 정도 콘텐츠면 읍소도 아니고 호소도 아니고 정말 볼만하지 않은가(물론 ‘강원의 기적’이 36년 만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경기긴 하지만, 이번 라운드만 해도 해외 토픽에나 나올 이동국의 골킥에 맞는 골, 성남 FC-제주 유나이티드전에서 나온 에델과 이창민과 김현성의 원더 골 스리 콤보 등 대박 매치가 줄을 지었다).

하나 더 팁을 드리자면, 요즘 축구 경기 볼 때는 ‘전반보다는 후반을 노리세요’라고 어드바이스 드리고 싶다. 2018-2019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4강전에선 두 경기 모두 기적이 나왔다. 2-0으로 앞서며 ‘4강 기적’을 눈앞에 뒀던 아약스는 토트넘 홋스퍼 루카스 모우라에게 후반전에만 내리 세 골을 내주며 좌절했다. 리버풀은 4강 1차 원정에서 0-3으로 패하며 사라졌던 결승행 꿈을, 홈 2차전에서 바르셀로나를 4-0으로 대파하고 살려냈다. 2019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8강 한국-세네갈전은 또 어떤가. 정정용호의 아이들은 후반 추가 시간 무려 45+7분에 극적 동점골로 연장까지 돌입한 뒤 연장전에서 한 골씩 치고 받고 승부차기에서 세네갈을 꺾었다. 다음날 출근 때문에 전반만 보고 ‘쓰라린 배신(?)’을 당했던 직장인 축구팬들에게 고한다. 요즘 축구는 후반전 중반부터입니다.

글=임기환 기자(lkh3234@soccerbest11.co.kr)
사진=대한축구협회,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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