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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준의 Here is the glory] 88년생 전가을의 도전

2020-01-24 오후 5:23:00 안영준

(베스트 일레븐)

“어제 저녁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브리스톨이더라고요, 하하.”

그녀의 목소리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피곤함을 넘어서는 행복과 설렘도 분명 가득했다. 그녀는 다시 한 번 유럽 무대에 도전했다. 겨우내 급히 짐을 싸, 새로운 도전지에서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다 인터뷰에 응했다. 브리스톨에서 새로운 출발점에 선 1988년생 여자 축구 선수 전가을의 이야기다.

전가을은 어린 시절부터 연령별 대표팀과 성인 대표팀을 꾸준히 거치며 맹활약을 펼쳤다. 월드컵 무대까지 밟는 등 한국 여자 축구 역사에 족적을 남겼다. 2015년 동아시안컵에서 일본을 상대로 넣은 그녀의 멋진 프리킥골은 지금도 회자되는 한국 축구 최고의 명장면 중 하나다.

그녀는 이와 같은 성공과 상승세를 바탕으로 끊임없이 해외 진출에 도전했고, 실제로 그 결실을 맺기도 했다. 그녀는 2016년 웨스턴 뉴욕 플래시에 입단했다. 한국 여자 축구 선수로는 흔치 않게 여자 축구 세계 최강 미국 무대에 진출한 것이다. 하지만 불운이 겹쳤다. 의욕이 앞선 나머지 이적 초기 치른 연습 경기에서 큰 부상을 당했다. 급한 마음에 서둘러 재활을 했지만, 그럴수록 컨디션은 더욱 안 좋아졌다.

하지만 전가을은 포기하지 않았다. “해외에서 꼭 실력을 증명하고 싶었고, 해외 무대에서 수준 높은 선수들 사이에서도 잘할 수 있다는 걸 느끼고 싶었어요.” 결국 그는 한 번의 좌절을 딛고도 다시 준비해 호주 멜버른 빅토리에서 뛰었다. 멜버른에서의 생활은 나쁘지 않았다. 팀과 감독의 변함없는 신뢰를 받으며 수많은 경기에 나섰다. 경쟁력 있는 실력에 더해 특유의 쾌활한 성격까지 더해 해외 생활에 잘 적응했다.

이후 WK리그로 돌아와 화천 KSPO에서도 변함없는 활약을 보였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다시 해외로 나가 도전하고 싶다는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미국과 호주 무대를 모두 경험한 것 역시 충분히 대단하다. 누군가는 이 커리어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에겐 이 두 번이 오히려 다음 도전을 자극하는 동력이 됐다.

“공허함? 그런 게 있었어요. 미국에서의 아쉬움도 있었고, 해외에서 더 잘 할 수 있다는 마음이 들었죠. 호주에선 많은 경기를 뛰었지만 돌이켜보면 그 때에도 마음 한 쪽엔 계속 공허함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녀는 1988년생이다. 굳이 덧붙이자면 적지 않은 나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멈출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서다. 그녀는 “아무래도 한국은 남녀 축구계 모두 어느 정도 나이가 차면 바라보는 시선이 있잖아요. 저도 처음엔 그 시선에 적응을 했었던 것 같아요. ‘그래, 나는 이제 나이가 찼으니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는 사람이 되어야겠지.’ 하고요. 하지만 곧 생각이 바뀌었어요. 아니, 나도 (나이가 찼다 해도) 한 명의 축구 선수인데 왜 내가 남을 배려해야 하지? 하고요. 충분히 할 수 있는데 이대로 축구 선수 생활을 마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어요. 난 아직 현역이고, 도전할 수 있는 나이이니 다시 한 번 해보자 마음을 먹었어요”라고 설명했다. 특유의 솔직한 화법과 해외 무대를 향한 자신감이 돋보이는, 강렬한 인상을 주는 발언이었다. 그녀는 나이가 주는 편견에 물러설 생각이 없었고, 그래서 오래 전부터 갖고 있던 공허함을 꿈과 열망으로 채우겠노라 다짐했다.

그녀는 그렇게 브리스톨에 와 있다. 영국 현지 시간과 시차가 커 영상과 연락을 주고받는 데도 오래 걸렸고, 필리핀 마닐라에 화산이 폭발해 영국 취업비자를 받는 일도 오래 걸리는 등 힘든 시간이 있었지만, 브리스톨의 허가가 떨어지자마자 곧바로 짐을 싸 영국으로 날아왔다. 그만큼 고대했던 세 번째 해외 진출이었다. 이제 그녀는 미국과 호주에 이어 영국에서 다시 해외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그동안 보여준 특유의 테크닉과 킥력을 바탕으로, 영국 축구 복판에서 마음껏 꿈을 펼쳐볼 계획이다.

브리스톨은 어린 선수가 많은 팀이다. 따라서 월드컵도 나선 베테랑인 전가을의 경험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전가을 역시 “팀에서 지난 리버풀전부터 바로 뛰어달라고 했을 만큼 제게 거는 기대가 큰 것 같아요. 젊은 선수들의 하고자 하는 의지도 좋고, 브리스톨이라는 도시 전체도 마음에 들어요”라며 브리스톨에 온 소감을 전했다.

그녀는 브리스톨의 큰 기대에 힘입어 영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곧바로 데뷔전을 치를 계획이다. 부랴부랴 영국에 날아와 적응할 겨를도 없고 설 명절도 타지에서 보내야 한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 있었다. 여자 축구 팬들에게 명절 인사를 건넬 만큼 여유롭게 데뷔전을 준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데뷔전을 앞둔 소감을 물었다. 그랬더니 흥미로운 답변이 나왔다. 1988년생 그녀가 다시 도전을 한 이유이자, 그 도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잘 읽을 수 있는 울림 있는 답이었다.

“예전에 미국에서 첫 경기를 앞뒀을 땐 ‘내가 진짜 뭔가 보여줘야지 하는 의욕이 강했어요. 이번엔 그냥 마음이 편해요. 그냥 제가 행복하고 싶어요. 여기서 하고 싶은 축구 하며, 행복하게 지낼 거예요. 무엇보다 저 스스로도 미련 없이 떳떳하게 축구 선수 생활을 마치고 싶어요. 한국 여자 축구 선수가 33살에 해외에 나와도 한계가 없다는 걸 알릴 수 있게끔 열심히 해볼게요.”

글=안영준 기자(ahnyj12@soccerbest11.co.kr)
사진=대한축구협회, 전가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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