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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 ⑥ 라 봄보네라 (下)

2010-02-12 오후 1:22:00 양정훈

(베스트일레븐 금요칼럼) 양정훈의 성지순례 ⑥
아르헨티나 축구의 보고-라 봄보네라 (下)

1905년 ‘라 보카’ 지역에 살던 다섯 명의 이탈리아 제노아(Genoa) 이주민들이 모여 보카 주니오르스를 창단했다. 브라드센 805번지에 뿌리내리기 전까지는 여러 경기장을 전전한 적도 있다. 1924년 지금의 봄보네라가 위치한 장소에 있던 목조경기장에 터를 잡았다. 1931년 보카는 이곳에서 아마추어 시절을 끝마쳤으며 1938년 2월 새로운 콘크리트 스타디움을 짓기 위해 철거하기 전까지 3번의 프로리그 디비전 우승(1931,34,35)을 차지했던 메인 무대 또한 이 목조경기장이다.

신축공사가 한창이던 1938년부터 1940년 초반까지는 인근의 ‘히카르도 에체베리’ 경기장을 임대해 사용했다. 드디어 1940년 5월25일 산 로렌소팀을 상대로 보카의 전당 ‘봄보네라’의 역사적인 개장경기가 치러졌고 보카 주니오르스는 2-0 승리, 새 경기장과 함께할 영광스런 역사의 시작을 알렸다. 보카 주니오르스가 마지막으로 차지한 리그 타이틀은 2008년 후기리그(Apertura) 챔피언. 다른 두 팀과 승점 동률을 이뤄 챔피언 결정 플레이오프까지 치른 끝에 제패했다. 이를 포함해 국내외의 각종 공식 타이틀을 무려 41개나 보유한 보카, 그 보금자리가 바로 봄보네라다.

봄보네라가 처음 완공됐을 당시에는 2개 층의 관중석 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1953년 처음으로 경기장을 개축했을 때 지금처럼 총 3개 층의 스탠드 구조가 갖춰졌다. 스탠드 1층의 경사는 종합경기장의 그것만큼이나 완만해 별다른 특징이 없지만 2층과 3층은 수원 빅버드의 상단 스탠드보다도 경사가 더욱 가팔라서 좌석 앞에 보호용 난간이 설치되어있다. 봄보네라를 찾는 상대팀 선수들이 한결 같이 내뱉는 ‘그곳의 피치는 지옥’이라는 묘사가 엄살로만 들리지 않는 이유도 짐작해 봄직하다. 피치 위에서 가득 찬 관중을 상상하며 스탠드를 훑어보았더니, 보호난간이 당장이라도 무너져 열광하는 수만 보카인들이 눈을 부릅뜨고 아래로 쓸려 내려올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마치 모든 것을 빨아들여 나락으로 내모는 블랙홀과 같은 지옥 문의 피치. 아군 선수들에게도 자극을 주어 선전을 다짐하게끔 할 만한 충분한 조건이다.

1975년 클럽의 회장자리에 오른 알베르토 아르만도(Alberto J. Armando)는 대대적으로 봄보네라를 개축하려 했으나 아르헨티나의 정치 경제적 사정 탓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래서 처음이자 마지막 개축이 이루어진 후 반세기가 넘는 동안 봄보네라의 외형에는 아무런 변화가 일지 않았다. 다만 1996년에 내부 관중석 구조가 조금 바뀌었다.

현재 봄보네라의 총 수용인원은 4만9천명. 일반 좌석의 수는 3만7500여 개이며 나머지는 2780개의 박스석과 8600여 스탠딩석이다. 하지만 지역 라이벌 리버 플라테와 벌이는 일전, 이른바 수페르클라시코가 열리는 날에는 정원을 훨씬 초과한 6만에 가까운 관중이 운집하기도 한다. 두 팀간의 라이벌 의식은 상상의 범위를 훨씬 뛰어넘는다. 이들의 충돌로 발생하는 경기장 내외의 유혈 폭력사태는 다반사. 심지어 봄보네라에 설치된 다국적 기업 코카콜라의 초대형 광고판에는 회사를 상징하는 CI는 있으되 적과 백으로 채색된 고유의 모습이 아니다. 숙적 리버 플라테의 저지에 대각선으로 강렬하게 새겨진 띠(La Banda Roja)를 연상케 하는 적색은 봄보네라에서 절대 금기시되는 컬러다. 경기장 내 콜라광고판 속 붉은색은 모두 흑색, 더러는 보카 주니오르스를 상징하는 남색이 대신한다.

시기상 봄보네라가 완공된 후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A대표급 메이저 축구대회는 모두 두 번(코파 아메리카의 전신인 ‘남미선수권대회 Campeonato Sudamericano de Selecciones’는 제외)이 이었다. 1978년 월드컵이 하나요 1987년 코파 아메리카가 둘이다. 물론 수도인 부에노스아이레스는 두 대회 모두 개최도시로 사용됐으나, 도시를 대표해 경기장소로 선택된 곳은 봄보네라가 아닌 앙숙 리버 플라테의 홈구장이자 아르헨티나의 내셔널 스타디움인 ‘엘 모뉴멘탈’이었다. 2011년 아르헨티나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다시 코파아메리카 대회가 펼쳐지지만 역시 결전의 무대로 뽑힌 장소는 변치 않는다. ‘엘 모뉴멘탈’이 국제적으로 유명세를 떨치는 동안, 봄보네라는 신비감이란 감투를 썼다. 또한 ‘오직 보카만을 위한 봄보네라’가 되어 연고클럽과 스타디움간의 상성 고리를 더욱 튼튼하게 다졌다. 아르헨티나의 대표클럽은 보카요, 보카하면 봄보네라가 자연스럽게 떠오르게끔 팀과 스타디움의 이미지 합성도가 100%에 가깝다.

봄보네라에는 2001년 개장한 보카 주니오르스의 역사박물관이 딸려있다. 그리 큰 규모는 아니지만 클럽의 역사와 관련된 자료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전시해 놓았다. 기념할 만한 경기의 동영상이 상영될 뿐만 아니라 클럽 저지도 그 변천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끔 진열 되어 있었다. 클럽을 거쳐 간 선수들의 사진 및 자료들을 세밀히 살피다 보면 보카의 자랑을 넘어 아르헨티나 축구의 영웅이며 세계축구의 한가운데 서 있는 커다란 이름들을 목격할 수 있다. 디에고 마라도나를 위시하여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클라우디오 카니자, 후안 로만 리켈메 그리고 카를로스 테베스까지. 봄보네라의 피치는 선수들에게 축구의 요람이자 성장의 발판이고 기량을 뽐내는 터전이다. 팬들에게는 선수들과 기쁨을 함께 누리고 오욕의 씁쓸함을 함께 곱씹는 역사의 무대이다. 그리고 조국 아르헨티나에게는 자국 축구의 위용을 세계 만방에 과시하는데 앞장 설 용맹한 축구인재들의 보고다.

‘라 보카’에는 5대5 정도의 미니게임을 할 만한 크기의 공터가 몇몇 있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 정도로는 그들의 축구열정을 식힐 순 없었던 듯 한 공터에서 동네아이들이 편을 나누어 공을 차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미 놀이의 수준은 넘어섰다. 리켈메를 연상시키는 외모의 한 소년의 드리블링은 프로에 버금갔다. 그러나 비 오는 낮, 공을 찰 만큼의 여유를 갖는 아이들은 유복한 편이다. 도시외곽 슬럼에는 더욱 모자란 삶을 살고 있는 아이들도 있다. 이들은 적어도 해가 떠있어 앞길이 분간 가능할 동안에는 개의 뼈를 주워야 한다. 끼니를 잇기 위해 비누의 원료가 되는 개의 뼈를 팔아 한 푼이라도 집에 보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땅거미가 지면 암흑의 시야를 뚫고 축구를 한다. 프로선수가 되는 길이 가난을 벗어날 수 있는 최선책이기에. 이 때문에 ‘아르헨티나 대표팀은 시대를 불문하고 처절한 빈민가 출신의 맹렬한 선수들에 의해 유지됐다’고 단언하는 축구평론가도 있을 정도다.

아이들은 꿋꿋하게 공을 몰고 달린다. 밤으로 낮으로 봄보네라를 향해 달린다. ‘라 보카’의 너른 마당에서 나고 자란 오늘의 마라도나 후예들이 내일의 리켈메가 되길 꿈꾸며 달리고 또 달린다.

글,사진=양정훈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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