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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ree Domes in World Cup-上편

2010-04-14 오전 2:37:00 양정훈

(베스트일레븐)

◆ 양정훈의 성지순례
▲ Three Domes in World Cup-上편


1930년 우루과이에서 제1회 대회가 개최된 이래, 금번 남아공 대회까지 80여 년을 이어온 월드컵 축구대회의 역사는 참으로 유구하다. 길었던 시대 흐름을 따라 ‘월드컵의 풍경’도 많이 변했다. 대회가 극단적인 상업화의 길로 들어선지 이미 오래고 첨단을 치닫는 테크놀로지는 회를 거듭하며 축구와 융합했다.

4년을 주기로 볼을 포함해 선수들이 사용하는 각종 킷트들 또한 초기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개량돼갔으며 시합 무대인 경기장도 ‘혁신’에 가깝도록 우아하고 현대적으로 변모했다. 특히 눈여겨볼 만한 점은 1994년 미국에서 열린 대회부터 돔구장이 월드컵 경기가 치러지는 본무대로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주류는 아니었으나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을 제외한 차후의 대회들에서도 살포시 그리고 줄기차게 얼굴을 들이민 돔구장. 월드컵에서 실내경기공간을 제공한적 있는 모두 세 개의 '돔(미국의 폰티악 실버돔, 일본의 삿포로 돔, 독일의 아레나 아우프 샬케)'에 얽힌 꽤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있다.

1994년 미국대회, 폰티악 실버돔

흔히 말하길 야구는 미국인들의 일상이란다. 일상이라 함은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을 의미하는데 역설적이게도 날씨의 제약이 심한, 이를테면 비가 그라운드를 조금 추적이게 할만큼만 내려도 순연되기 십상인 야구가 매일 삶의 일부라는 뜻이다.

마땅히 미국인들은 야구가 큰 축인 일상을 보지하고 혹이나 생길지도 모르는 패턴화된 삶의 공백마저 회피하려 적극적으로 노력을 기울였을 터이니 어떤 방향으로든 그 결실이 야구의 고향 미국에서 맨 처음 맺혀 나옴은 자연스러운 일인 듯하다. 모험심의 발로를 따라 테크놀로지가 결합하고 돈이 뒤를 받친 결과 휴스턴에 ‘인류최초의 돔구장’이 세워졌다.

때는 1965년, 이로써 지역연고 팀 애스트로스는 날씨(주로 우천)와는 무관하게 팬들의 일상을 담보하는 거대한 덩치의 보험에 가입하게 된다. 이후 야구를, 미식축구를 필요의 주요 근원으로 삼아 미국 곳곳에 돔구장이 모습을 드러냈고 급기야 이 거대한 시설은 야구가 성행하던 일본으로까지 필요를 따라 옮아 들었다.

유럽이나 남미사람들의 일상은 축구다. 매일 경기가 열리는 야구와 대비해 축구는 시합 사이의 간격이 거의 한 주에 이르는 게 일반적이다. ‘일상(日常)’보다는 ‘주상(週常)’에 가깝다. 한 주를 대체하는 일은 하루를 때우는 것 보다 훨씬 난해하다.

축구는 종목 특성상 야구처럼 쉽사리 더블헤더를 벌일 수도 없고 적어도 ‘프로리그’라고 불리는 무대에서는 시합 사이의 충분한 시간간격이 보장되며, 리그 경기 사이사이에 국내외의 컵대회 일정이 정교하게 잡혀있는 등 관습화되어 내려오는 선량한 스케줄이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상황이니 축구시즌 전체를 놓고 보아 경기일의 결손이 발생한다면 그 보상체계에 상당한 무리가 따를지도 모른다.

다행인지 축구는 천후를 두고 그다지 까다롭게 구는 스포츠가 아니다. ‘천재지변’급의 기상조건을 맞닥뜨리지 않는 한 경기는 계속되고 축구는 이어진다. 고작해야 관람석 전체 혹은 일부만 덮는 지붕을 설치하고, 경기장에 배수시설을 확충하며, 천연잔디 밑 땅속에 지면 위 쌓인 눈을 녹일 만큼의 열선을 까는 방법으로 축구는 천후에 적응해나갔다.

필요성에 흥미를 갖지 못하면 공백마저 느껴지지 않기에 축구를 지지하는 배후에 모험심과 테크놀로지, 그리고 돈이 차지하는 영역이 부족하다 탓할 수 없다. 주어진 하늘 아래서 목표를 향해 차고 뛰는 본능의 스포츠 축구, 자연에 순응하는 듯 맞서는 낭만적인 이 운동의 특장이 천연잔디가 자라지 않는 거대한 실내경기장의 필요성과 굳이 결부돼야 할 이유는 없(었)으므로 근래 이르기까지 돔구장과 축구가 맞물리는 사건이 많지는 않았다.

막상 축구와 소원해 보이기만 하던 돔구장이 월드컵 본선대회에 최초로 사용되는 경이로운 일이 지금으로부터 16년 전 ‘돔의 발상지’에서 벌어졌다. 오대호에 연접한 미국 북부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인근의 작은 마을 폰티악에 위치하며 테플론(Teflon)코팅이 된 흰색 조각의 유리섬유가 지붕역할을 도맡아 뒤덮고 있는 8만 명 규모의 돔구장에서 일어난 전대미문의 사건이었다.

햇빛에 반사된 지붕의 컬러가 외부에 놓인 눈동자에 은빛으로 찬란하게 맺히니 ‘실버돔’이라 불리는 것은 으레 지당한 명명이었다. 1975년 개장이래 지역연고 프로 미식축구팀 디트로이트 라이온즈의 홈으로서 제 역할을 충실히 이행해온 이곳 인조잔디 돔이 월드컵 본무대를 품은 첫 실내경기장이다.

하지만 ‘폰티악 실버돔’ 역시 채광과 통풍이 원활하지 않은 돔구장의 고질적인 단점을 고스란히 지닌 고로 월드컵 경기를 치를만한, 즉 잔디가 생육하기에 알맞은 그 이름처럼이나 빛나는 조건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호스트 미국이 스위스를 상대로 갖는 대회 1차전을 비롯해 모두 조별예선 4경기를 치르며 월드컵의 영광스러운 스테이지로 이름 올리기 위해서는 돔 내부에 천연잔디를 이식해야만 하는 까다로운 선결과제가 있었다. 당시까지 디트로이트를 중심 하여 고도로 발달한 자동차 공업이 대변하듯 미국 테크놀로지의 발전을 표상하는 개최 도시답게 상당히 기술적인 수단의 해결책을 고안해냈다.

미식축구에 사용되던 인공잔디 전면에 나무판자를 깔고 그 위에 천연잔디를 길러 흠 잡을 데 없는 ‘인스턴트’ 아레나를 구현, 별 탈없이 대회를 치른 것이다. 인공조명과 대형통풍시설 등이 동원된 ‘천연잔디 키우기’ 대작전은 고비용을 지출해야만 하는 수단이었기에 어디까지나 월드컵을 대비한 일시적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월드컵 직후, 다시 이곳에서 축구 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하게 항변하듯 이내 미식축구에 적합한 인공잔디로 환원됐다.

월드컵을 개최한 적이 있는 경기장 치고 ‘폰티악 실버돔’만큼이나 비참한 말로를 걷고 있는 경우도 참 드물다. 다목적성이라는 존재의 필수 기반을 딛고 서있는 돔구장이라지만 주된 쓰임새를 잃고 나니 천덕꾸러기로 전락할 수 밖에 없었다.

이곳을 홈구장으로 사용하고 있던 프로 미식축구팀 디트로이트 라이온즈가 2002년 NFL시즌 개막과 동시에 그 보금자리를 디트로이트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포드 필드’로 옮겨가면서부터 비극은 시작됐다. 인구가 채 7만 명도 되지 않는 작은 마을 폰티악시에 떡하니 웅크리고 있는 용도가 명확하지 않은, 더군다나 시민들을 모두 수용하고도 남을만한 어마어마한 크기의 돔은 시 예산을 통째로 집어삼키는 괴물이었으며 밑 빠진 독 격이었다.

엄청난 시설 유지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고 재정위기에 봉착한 폰티악시는 ‘실버돔’을 팔아치우려고 여러 번 시도했으나 번번히 실패했다. 잇따른 미국 부동산 가격의 붕괴와 국제 금융위기의 정세 속에 새 주인을 자처하는 이가 나타나기 쉽지 않은 형국이었다. 결국 2009년 한 캐나다 부동산 업자가 폰티악 ‘월드컵의 성지’를 메이저리그 뉴욕양키스 박찬호 선수의 2010년 연봉(120만 달러) 절반에도 못 미치는 58만3천 달러(약 7억원)라는 헐값에 경매를 통해 사들였는데 1975년 신축 당시의 건설비용 5570만 달러(현재 가치로 따지면 약 2억2천만 달러)와 비교한다면 터무니 없이 낮은 가격이다.

하지만 유지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지금처럼 명확한 쓰임을 찾지 못하고 헤맨다면 건물주와 서른 살을 훌쩍 넘긴 ‘폰티악 실버돔’이 함께 꿈꾸는 미래도 밝지만은 않을 터이다.

글,사진=양정훈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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