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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레 재팬', 일단 분위기 고양시켰다 … 현장에서 본 일본-온두라스전

2014-11-15 오후 2:35:00 베스트일레븐

(베스트 일레븐=도요타)

도카이도의 중심지는 이 지역 인파가 모여들어 이루는 평소 금요일 열기에 더 먼 곳으로부터도 합세한 축구 정열이 보태져 뜨거운 밤을 맞이했다. 친선 경기 일정이 잡히자 일찌감치 시내 호텔 방들은 예약으로 동났다. 경기일을 꽤 앞둔 시기 일본축구협회는 자랑스레 티켓 매진을 공지했다. 나고야 번화가인 후시미에서 시영 전철 연장선을 타고 40여 분을 달려 종점에 이르자, 익숙한 이름의 마을과 그 마을 이름을 딴 스타디움이 눈앞에 펼쳐졌다. 일본 자동차 산업의 최대 축인 도요타의 본거지, 나고야라는 지명을 팀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홈경기의 반 이상을 치러도 전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 팀 메인 스폰서의 고향 도요타였다.

이곳에서 아시안컵을 대비해 일본이 갖는 최종 평가전 2연전 중 첫 변째 경기인 온두라스전이 지난 14일 펼쳐졌다. 스탠드 경사가 쏟아질 듯 가파르기로 이름난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라 봄보네라 이상으로 아찔한 사면에 축구 관람 최적의 각도와 시야를 보증하는 도요타 스타디움 4만 2,000 관중석은 가득 메워졌다. 어제와는 사뭇 또 다른 완연한 겨울밤의 한기가 범람했지만, 푸른 물결의 인파는 응원의 한목소리로 추위를 잊은 지 오래였다. 1998 프랑스 월드컵 최종 예선 캠페인을 통해 국내 팬들에게도 익숙한 멜로디에 얹힌 ‘니이폰 니폰, 니이폰 니폰 니이폰’의 함성이 메이리쳤다.

아기레 감독이 부임 이후 치른 4경기에서 거둔 성적표는 1승 1무 2패. 중립지 싱가폴에서 대패한 브라질전을 제외하더라도 썩 만족스러운 결과를 낳고 있지 못하는 현 상황을 팬들은 신통치 않게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도 대표팀 소집 기간에 명예의 전당 헌액 행사로 고국 멕시코에 다녀온 아기레 감독은 언론과 팬들의 질타를 피하지 못했다. 아기레 감독은 "평생에 한 번 있는 일 아닌가? 앞으로는 없을 테니 오히려 다행"이라고 넉살 좋게 넘기는 여유마저 보였다. 경기 전날 최종 훈련에서야 모습을 드러낸 감독 앞에서 아시안컵 개막 전 단 두 번의 공식 경기만을 남기고 모인 선수들은 진중한 태도로 임해 대륙 챔피언을 가리는 대회의 무게감을 적어도 감독보다는 잘 이해하고 있다는 인상을 남겼다.

일본의 2015 AFC(아시아축구연맹) 호주 아시안컵 조별 라운드 상대는 모두 중동 팀이다. 최약체로 분류되는 팔레스타인 이외에 언제나 복병인 이라크와 벌일 일전과 2011년 카타르 대회 때 간담을 서늘케 했던 요르단과 치를 리턴 매치가 준비돼 있지만 실전 모의고사에선 중동 상대 카드를 꺼내 들진 않았다. 중동 팀 적응력을 높이기 위해 직접 적지까지 날아가는 우리 시각에선 어찌 보면 상당히 과감한 행보로 비춰진다. 다소 지나친 자신감의 표출로도 볼 수 있지만 개최지가 호주임을 감안한다면 오히려 현실적 안을 모색한 결과로도 읽힌다. 중동 상대 평가전 혹은 중동 원정이 아닌, 우승을 두고 토너먼트에서 겨룰 가능성이 높은 개최국 호주를 홈으로 불러들여 맞붙기를 선택했다. 호주와 펼칠 대결이 마지막 테스트 무대이자 평가전의 진검 승부라면 4일 앞서 치러지는 온두라스전은 대회 실전 맴버로 꾸려 팀의 사기를 고양시키고 완성도도 극대화해야 하는 전초전 성격을 내포했다.

새로운 얼굴의 시험 가동은 더는 없었다. 당장의 성과가 요구됐다. 일본은 선발로 나선 11명 중 수비수 모리시게, 미드필더 엔도, 공격수 무토를 제외한 나머지를 해외파로 구성했다. 곧 마흔을 바라보는 엔도를 비롯해 풍부한 경험을 지닌 베테랑들을 다시 불러 모았다. 이들의 평균 연령이 30세 중반에 이르는 것만으로도 오늘의 선발을 이룬 팀이 4년 후 월드컵을 향한 목적성을 띄고 있지 않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만큼 시급했고 비록 평가전일지언정 무언가 가시적 성과를 내야만 하는 시점에 다다른 절박한 아기레 신감독 체제의 일본 축구 현실이 아닐까 했다. 스코어까지는 예측할 수 없었겠지만 대전 상대를 선정함에 있어 대승을 의도했을지 모른다는 의심은 경기를 지켜보는 내내 가시지 않았다. 결과는 사실상 모든 관중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렀고 일본은 온두라스를 6-0이라는 큰 점수 차로 넉아웃시켰다.

온두라스 감독은 "믿을 수 없는 경기 내용으로 패했다"라며 자책했지만, 애초부터 공격 의지와 적극성이 결여된 플레이로 일관했었기에 믿을 수 없지만은 않았다. 주도권과 흐름을 빼앗기면 높은 레벨의 그 어떤 팀이라도 순간적으로 대량 실점을 허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불과 몇 달 전 브라질이 증명하지 않았었는가. 다소 변동이 있을지 모르지만 아기레 감독 머릿속에 그려진 아시안컵 본선 정예 선발 리스트에 가장 가까울 것임은 부인할 수 없다. 4년 후 러시아 월드컵을 내다보고 선임한 아기레 감독에게 기대하는 바는 이런 모습이 아닐 것이다. 월드컵 직후부터 발빠르게 움직여 젊은 팀을 꾸려 이끌고 나가 아시안컵에서 우승까지 넘보는 좋은 모습을 바랐을 터이다.

경기 후 기자회견장에 아기레 감독이 입장하자 배석한 일부 기자들이 박수로 환영했다. 승리를 향한 상대의 의지가 얼마나 강했는지 약했는지를 떠나 결과만 놓고 보면 박수를 못 받을 일도 아니었다. "감독에게는 늘 심리적 부담이 따른다. 이겨도 져도 마찬가지다. 그럴 바엔 차라이 이기고 고민하겠다"라고 기자들을 향해 의미심장한 발언을 당당하게 외친 아기레 감독은 교체 명단에 든 선수들의 이름과 나이를 차례로 읽어 내려갔다. 20대 초반의 선수들이 대부분이었다. 당장의 성과를 위해 불가피하게 자케로니 전 감독 시절과 구성상 흡사한 선발진을 꾸렸지만 어린 선수들도 항시 주목하고 있고 서서히 이뤄 갈 조화와 세대교체도 염두에 있음을 우회적으로 강조한 것이리라. 적어도 본인의 임무는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몇 경기의 부진만으로 자질 부족을 논할 레벨의 감독은 아니었다.

공격의 질과 양 모두에서 박약했던 온두라스를 상대했기에 일본의 수비 조직을 언급하기엔 섣부른 감도 있다. 하지만 온두라스가 컷백 플레이를 의도한 상황에서 공과 사람을 모두 놓치지 않는데 성공해 위기를 모면한 장면, 최종 수비들이 좌우 폭을 유지해 피치를 커버하는 모습, 또 라인의 높이를 조절하며 골키퍼와 사이에 공간을 허용치 않았다는 점 등을 미루어 보면 수비 조직은 완성도를 상당 수준까지 끌어올렸다고 평가할 수 있다. 특히 센터벡 요시다 마야는 넓은 시야로 공간을 이해하고 지배하며 수비 라인을 주도적으로 조율하는 높은 레벨의 축구를 선보였다. 다만, 일본이 본선에서 우승을 놓고 겨루어야 할 상대들은 공격 속도에 있어 온두라스를 상회할 것이므로 ‘빠르기’에 어떻게 적응하고 얼마나 막아 낼지가 수비 성공의 관건이 될 것이다. 새 팀의 기초 공사가 수비라면 '아기레 재팬'은 정석대로 집을 짓기 시작한 것은 인정해야 할 부분이다.

최종 순간의 슈팅은 개인 전술에 맡겨지지만 볼 소유권 확보로부터 최종 순간 바로 직전까지 흐름은 공격 조직에 이끌린다. 패스 & 무브를 기반으로 공과 사람이 끊임없이 움직여 그 조직력을 극대화하면 포지션 체인지라는 현상으로 드러난다. 온두라스는 첫 실점 이후 리드당하고 있는 팀의 일반적 패턴과 같이 최종 수비 라인을 올리고 팀이 공유하는 공격 이미지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전반 41분 일본 진영 하프라인 부근에서 볼 경합 중에 수비가 슬라이딩으로 걷어 낸 볼이 때마침 혼다에게 이어졌고 드리블 후 최종 슈팅으로 마무리한 공격이 골로 연결됐다. 이후 전의를 상실한 온두라스의 불성실한 플레이에 가가와와 혼다 간의 포지션 체인지 위주로 탄력을 받은 일본 공격 조직의 극대화가 맞물리자 온두라스는 맥없이 무너졌다.

하프타임에 교체돼 들어간 이누이가 후반 2분 골을 터트리는 장면은 오늘 경기의 압권이었다. 경기 MVP를 차지할 만큼 활발한 움직임을 보인 혼다가 페널티 지역 우측면을 돌파해 들어가 반대쪽으로 뛰어들어오는 이누이에게 크로스를 연결했고, 이누이는 골키퍼 옆을 통과하는 슈팅으로 마무리해 골을 완성시켰다. 이 과정에서 혼다가 고를 수 있었던 패스 선택지는 이누이를 제외하고도 세 개나 더 있었다. 패널티 지역 내부 중앙과 우측에 각각 하나씩, 그리고 페널티 지역 바깥 아크 부근에서 패스를 받는다면 미들슛이 가능한 위치에 또 하나였다. 좋은 공격의 본보기로 선택받지 못하더라도 하나의 후보가 되려는 헌신적 움직임이 골의 가능성을 연 것이나 다름없다. 맥빠진 온두라스를 상대로 했지만 공격 조직 플레이의 가능성을 엿본 장면이었다. 그것이 골과 직접 연계됐는지 여부는 차치하고서라도 정석 이상의 콤비네이션 플레이였다.

일단 부진으로 가라앉았던 아기레 재팬의 팀 분위기가 대승을 발판 삼아 한껏 고양됐다. 본선에서 상대할 팀들의 수준은 분명 저속 템포와 의지 부족의 온두라스보다 위이기 때문에 낙관적 전망은 이르다. 일본 선수들은 온두라스 전에서 그랬던 것처럼 사흘 후(18일)에도 아기레 감독으로부터 같은 말을 듣고 피치 위에 오를 것이다. "여기는 홈이고, 경기장을 가득 메운 팬들 앞에서 승리를 쟁취하는 것은 의무다." 뒤이은 진검 승부는 내년 1월 호주 아시안컵에서 이어진다.

글·사진=양정훈 칼럼니스트(derutan@officelf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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