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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jury Time-‘낙인’과 한국 축구, 그리고 ‘용서’

2017-11-10 오후 12:51:00 손병하

(베스트 일레븐)

‘낙인(烙印).’ 쇠붙이로 만든 도장을 불에 뜨겁게 달궈 찍는 걸 가리키는 말이다. 기구나 가축 등에 주로 찍었으며, 과거에는 형벌로 죄인의 몸에 찍는 일도 있었다. 이른바 ‘불도장’이다. 흔히 ‘낙인이 찍히다’는 표현을 쓰는데, 이는 다시 씻기 어려운 불명예스럽고 욕된 판정이나 평판을 얻게 됐음을 이르는 말이다. 조선 시대 등 과거에는 나라나 체제 전복을 꾀한 반역자나 흉측한 살인 등을 저지른 범죄자 몸에 낙인을 찍었다. 한 번 낙인이 찍히면 살을 도려내거나, 백골이 진토 될 때까지 사라지지 않는다.

‘낙인 효과(stigma effect).’ ‘스티그마 이펙트’라 불리는 이 현상은 어떤 사람이 나쁜 사람으로 한 번 낙인이 찍히면, 그 사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이론이다. 아무리 좋았던 사람이라도 한 번 저지른 나쁜 기억은 잘 사라지지 않으며, 오히려 향후 거의 모든 상황에서 부정적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거다. 예컨대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킨 기업이 있다고 하자. 그 기업은 이전에 아무리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었어도, 물의를 일으킨 그 문제가 끊임없이 따라다니며 괴롭히게 된다.

낙인과 낙인 효과. 정리하면 한 번 씻기 어려운 불명예스럽고 욕된 판정이나 평판을 듣게 되면, 이후엔 그 어떤 것으로도 그 낙인을 지울 수 없음을 의미한다. 살을 도려내거나 뼈까지 삭아 없어질 만큼 엄청나게 많은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면 말이다. 혹자는 너무 가혹한 일이라고도 한다. 고의든 실수든 한 번의 잘못을 평생 안고 가야 한다는 건 너무도 큰 형벌이라는 주장이다. 인간은 기계처럼 완벽하지 않은, 늘 흔들리는 불완전한 존재라면서 말이다. 그러나 낙인이 찍힐 만한 잘못을 했다면, 감내해야 한다.

한국 축구에도 참으로 많은 낙인이 있다. 그리고 그 낙인들이 불러온 낙인 효과도 멈춤 없이 흐른다. 요즘 가장 크고 선명한 낙인이 찍힌 곳은 대한축구협회(KFA)다. KFA는 소위 ‘적폐 집단’이란 낙인이 찍혔고, 그로 말미암아 어떤 일을 해도 여론의 호응을 등에 업지 못하는 낙인 효과에 시달리고 있다. 신태용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에게도 낙인이 찍혔다. 신 감독은 스스로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음에도, 단지 그 자리에 앉아 있다는 이유로 거스 히딩크 전 감독과 곳곳에서 비견되는 아픈 낙인이 찍혔다.

2018 국제축구연맹(FIFA)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최종 예선 9차 이란전에 주장 완장을 차고 출전했던 김영권에게도 낙인이 찍혔다. 신태용호 출범 후 첫 경기,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위한 경기, 수년 동안 한 번도 이기지 못한 숙적과의 경기. 그 경기에서 김영권은 경기 종료 후 관중 함성 때문에 소통이 어려웠다는 말 한마디로 낙인이 찍혔다. 물론 김영권의 그 말이 어떤 의도를 갖고 있었는지는 다 안다. 그러나 무승부란 실망스러운 결과는 낙인이 됐고, 이내 낙인 효과가 돼 김영권을 옭아맸다.

2017년 K리그 클래식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며 우승 반열에 오른 전북 현대에도 낙인이 찍혔다. 지난해 5월 불거진 모 스카우트의 심판 매수 사건이 시점이다. 이후 전북은 ‘매수 구단’이란 낙인이 찍혔고, 이는 심판 판정 하나에도 강력한 낙인 효과를 일으키며 전북 구성원을 끊임없이 괴롭히고 있다. 이 낙인은 법원에서 ‘전북 스카우트의 행위는 승부 조작과는 관련이 없다’는 판결이 나왔음에도 대중의 외면을 받고 있는데, 이게 바로 낙인 효과 때문이다. 이 낙인 효과로 전북엔 바람 잘 날 없다.

과거로 눈을 돌려도 낙인은 많은 곳에서 찟혔다. 가장 대표적 인물이 최근 KFA 전무이사를 맡게 된 홍명보 전 감독이다. 홍 감독은 선수 시절엔 허약한 한국 축구 수비를 지탱했다는 찬사를 받았고, 지도자가 되어선 2009 FIFA 이집트 U-20 월드컵 8강과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을 획득 등 많은 공을 세웠다. 그러나 2014 FIFA 브라질 월드컵 이후 ‘인맥 축구’ 논란에 시달렸고, 이는 한국 축구의 조별 라운드 탈락과 더불어 낙인 효과로 이어졌다. 그 낙인 효과는 부동산 같은 사적 영역까지 침범해 괴롭히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곰곰이 생각해야 할 대목이 있다. 낙인이란 단어에 대한 본래 참뜻이다. 서두에 낙인은 체제 전복을 꾀한 반역자나 흉측한 살인 등을 저지른 범죄자 몸에 찍었다고 했다. 반역자나 범죄자, 낙인이 찍힐 만한 큰 죄다. 물론 인권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들에게조차 낙인을 찍지 말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태어나서 저지른 죄보다 태어난 그 자체의 존엄성이 더 크다고 믿으니 말이다. 그러나 사회 전반, 나아가 국민 모두를 혐오케 할 정도로 큰 죄를 저질렀다면 낙인은 응당하지 싶다.

그렇다면 KFA나 신태용, 혹은 전북이나 홍명보 등은 낙인이 찍힐 만큼 큰 잘못을 했을까? 체제를 전복시키려는 반역자나, 살인 등 흉측한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와 같은 잘못일까? 심지어 낙인이 찍힌 후 생기는 낙인 효과까지 모두 감내야 할 만큼 중대한 잘못을 저지른 걸까? 전 집행부가 법인 카드를 유용하고, 인사 시스템이 투명하지 않고, 구단에서 근무하던 직원이 심판에게 돈을 건네고, 원칙을 깬 선수 선발로 월드컵에 나갔다고 치자. 아니, 이건 사실이니 그랬다. 그렇다고 이게 낙인을 찍을 만큼의 잘못일까?

물론, 앞서 나열한 일들이 전혀 잘못되지 않았다는 건 결코 아니다. 법인 카드의 개인 유용은 엄밀한 사법 처리 대상이고, 투명하지 않은 내부 인사 시스템은 외부의 혹독한 비판을 들어 마땅하다. 아무리 개인적이라 한들 현직 구단 직원이 심판들에게 금품을 건넨 것 역시 명백한 위법이고, 스스로 외친 원칙을 깼다면 이 역시 질타받아야 마땅하다. 이들 모두 공인은 아니나 국민적 관심과 응원을 받는 유명인이고, 이에 대한 사회적·도의적 책임까지 져야 하기에 일반인에 비해 보다 가혹한 벌을 받아야 한다.

그렇다고 이게 평생 가도 지워지지 않는 낙인을 찍을 만큼인지는 찬찬히 생각해야 한다. 과연 반역자나 흉악범에게 적용해야 할 낙인을 찍어야 할 정도로 큰 잘못을 한 것인지, 그래서 과거의 업적은 깡그리 무시하고 미래에 그 어떤 일도 제대로 할 수 없도록 영원히 낙인 효과에 시달리게 해야 하는 것인지는 정말 곰곰이 생각했으면 한다. 왜냐하면 이들이 낙인을 찍어야 할 만큼 큰 잘못을 저지른 게 아니라면, 그 낙인을 스스로의 힘을 지우고 치유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용서’로 말이다.

최근 수년 동안 한국 축구를 괴롭힌 많은 안 좋은 일을 보면서, ‘우리는 참 용서에 인색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잘못을 하면 매와 벌을 받아야 마땅하지만, 그다음엔 낙인을 찍어 낙인 효과를 맛보게 하는 게 아니라 용서하는 게 순리이지 않은가 말이다. 물론 낙인을 찍어야 할 만큼 큰 잘못이라면 할 말 없다. 그러나 그 정도의 잘못이 아니라면 용서를 해야 맞지 않을까? 그래야 과거의 잘못을 만회할 기회도 얻게 되고, 갱생을 넘어 발전의 길로 접어들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용서가 없으면 기회도 없다.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최종 예선 10차 우즈베키스탄전이 끝난 후 태극 전사 중 구자철의 사진을 보고 한동안 마음이 아렸다. 비록 우즈베키스탄을 이기진 못했으나, 신태용호는 그 경기를 잘 견뎌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이란 대업을 달성했다. 그러나 경기 후 관중들에게 인사하는 구자철의 눈가는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표정은 금방이라도 울 듯 괴로웠다. 구자철의 그 눈물을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지금 그 누구의 지지도 받지 못하는 태극 전사들의 괴로움이 단적으로 드러난 것 같아서다.

낙인을 찍어 평생 낙인 효과에서 괴롭게 살아야 할 만큼 잔혹한 잘못이 아니라면, 그다음은 응당 용서가 되어야 한다. 물론 잘못은 범한 당사자의 진심 어린 반성이 먼저 있어야 하겠다. 그 당사자가 진심으로 뉘우치고 반성한다면, 낙인 대신 용서를 하는 게 순리다. 그리고 격려하고 응원해서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하는 게 옳다. 낙인과 낙인 효과는 우리가 만든 거다. 그러니 용서와 격려, 그리고 응원도 우리가 만들 수 있다. 잘못을 끝없이 비난하는 것보단, 정확히 비판하고 그다음엔 용서하는 게 맞다.

글=손병하 기자(bluekorea@soccerbest11.co.kr)
사진=베스트 일레븐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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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경 dbrud10004 (2018-01-09 오후 2:36:01)

아픔을 딛고 이기는 여성인 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