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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jury Time- 김주영, 그에게 불행이 겹쳐서 왔다

2018-01-13 오후 2:05:00 손병하

(베스트 일레븐)

불행은 늘 겹쳐서 온다. 행복은 겹쳐서 올 때가 많지 않지만, 불행은 한두 가지로 끝나지 않는다. 사람을 바닥까지 끌어 내리고도, 아직 부족하다는 듯 쏘아붙일 때가 많다. 그래서 짧은 시간 폭우처럼 내리는 ‘불행비’를 맞고 나면, 온몸이 차갑게 식어 독한 감기에 걸리기 일쑤다. 감기에 걸리면 한참을 앓아야 한다.

대부분이 ‘희망’이나 ‘행복’ 떠올리고, 어제와 다른 내일을 기대하며 시작했을 2018년이지만 김주영에겐 아니다. 3년 전 처음 중국으로 갔을 때, 아니 석 달 전만 하더라도 행복한 희망을 그리던 김주영이었다. 그러나 2017년 10월 7일 마주한 첫 불행은 또 다른 불행을 불렀다. 그 불행은 2018년이 밝아서도 김주영 곁을 떠나지 않고 있다.

우리 시간으로 2017년 10월 7일 늦은 밤,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 위치한 VEB 아레나에서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과 러시아의 평가전이 열렸다. 신태용호 출범 후 처음 갖는 원정 평가전이었다. 당시 신태용호는 ‘거스 히딩크’란 엄청난 외풍을 맞고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는데, 그런 상황에서 치른 평가전이라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이의 시선이 모스크바로 향했다.

그러나 신태용호는 히딩크 전 감독이 몰고 온 외풍보다 훨씬 더 강한 바람에 안면을 강타당했다. 적진이지만 해볼 만한 상대라고 여겼던, 심지어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에서도 우리보다 뒤에 있었던 러시아에 먼저 네 골이나 내주는 졸전을 펼친 끝에 2-4로 완패했기 때문이다. 경기 후 신태용 감독이 내세운 변형 플랫 3는 언론과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았고, 경기에 나선 대부분 선수에게도 비난이 빗발쳤다.

러시아전에서 가장 많은 비판과 비난을 받은 선수는 중앙 수비수 김주영이었다. 김주영은 장현수·권경원과 함께 플랫 3를 형성해 출전했다. 그러나 후반 10분과 그로부터 1분 뒤인 후반 11분 거푸 자책골을 허용하며 0-1이던 스코어를 0-3까지 벌어지게 하는 장본인이 됐다. 경기가 끝난 후 김주영을 향해 비정한 칼날이 날아든 건 당연했다. 김주영은 그 모든 책임을 홀로 덮어쓰며, 자신의 꼭 10번째 A매치에서 피투성이가 됐다.

“그날을…, 제가 그날을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지난 12일 오후, 수화기를 타고 넘어온 김주영의 목소리는 2017년 10월 7일에 머물러 있는 듯 어두웠다. 러시아전에 대한 얘기를 꺼내기 전 중국 슈퍼리그에 대한 이야기와 2018시즌 구상 등 다양한 질문을 두루 던져 환기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전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마자 깜깜한 밤이 된 듯 어두웠다. 물론 전화 인터뷰 처음부터 목소리는 침체해 있었다. 당당하고 거침없던 김주영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러시아전에 대한 얘기를 꺼내자 더 깊은 곳으로 가라앉았다.

“정말 표현이 안 됩니다. 기자님은 1분 만에 두 개의 자책골을 기록한 선수 보신 적 있으세요? 없으시죠? 저도 없어요. 심지어 그런 얘기를 들은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선수가 생겼고, 그게 저예요. 그게 저랍니다.”

“그게 저랍니다”라며 자책하는 김주영의 목소리는 더 힘이 빠졌다. 이어 김주영은 두 개의 자책골보다 더 실망스러운 장면이 있다며 말을 보탰다. 0-3에서 0-4가 되는 네 번째 실점 장면이다.

“정말 그땐 정신을 못 차리겠더라고요. ‘이게 뭔가’란 생각만 멍하게 머릿속을 맴돌았어요. 그런데 제가 제게 더 실망한 장면은 두 번의 자책골이 아닙니다. 러시아에 내준 네 번째 실점이에요. 그 실점은 저 스스로를 더 괴롭게 만들었습니다.”

0-1로 뒤지고 있던 후반 10분과 11분 김주영은 두 번이나 거푸 의도치 않게 볼을 터치하며 자책골의 원흉이 됐다. 그리고 0-3으로 끌려가던 후반 38분 한국은 러시아에 또 한 골을 내줬는데, 이때도 김주영은 마크했던 선수를 마지막까지 따라 붙지 못하며 실점의 한 원인을 제공했다. 김주영은 자신의 능력에 실망하고, 스스로에게 절망했다고 한다.

김주영은 백 번, 천 번 다시 생각해도 그 상황이 이해가 안 됐다고 했다. 그런 실수를 연발한 자신을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축구 선수로서 자격이 없다고 했다.

물론 러시아전에서 나온 2-4 참패의 모든 원인을 김주영에게 덧씌울 순 없다. 신태용호는 러시아전에서 변형 플랫 3를 사용한 것은 물론이고, 좌우 측면 윙백 자리에 각각 이청용과 김영권을 세우는 실험을 단행했다. 이 실험은 파격이었다. 플랫 3 구성원은 처음으로 손발을 맞추는 이들이었고, 이청용과 김영권도 측면 윙백이 어울리는 선수들은 아니었다. 실제로 이청용이 자리한 오른쪽 측면에서 총 세 번의 실점 장면이 나왔는데, 때문에 모든 실점을 김주영 탓으로 돌리는 건 가혹하다. 물론 김주영은 그런 변명을 입에 담지 않았다.

“제가 A매치를 많이 뛰어 경험이 많은 선수도 아니고, 기술적으로 뛰어난 선수도 아니고, 그저 상대 공격수를 붙잡아 두기 위해 악착같이 뛰는 선수인데요…. 아무리 그렇다 해도 러시아전에서 나온 제 모습은 정말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그럴 수 있었을까요? 어떻게 하면 그렇게 경기할 수 있었을까요?”

질문은 한 번이었다. ‘러시아전에 대해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느냐’가 질문이었다. 그런데 답이 끝을 모르고 나왔다. 꼬리에 꼬리를 문 자책은 일부러 끊지 않으면, 끊기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이어지는 자책의 꼬리를 애써 잘랐더니, 또 다른 자책의 꼬리가 나왔다. 불행은 김주영을 겹쳐서 덮쳤다.

“러시아전이 끝나고, 모로코전을 벤치에서 지켜본 뒤 소속팀으로 복귀했습니다. 그런데 복귀 후 러시아전에 대한 소문이 돌았는지, 아니면 그 경기를 코칭스태프가 봤는지 한동안 경기에 나서지 못했어요. 시즌 종료 후 2~3경기만 뛰었을 뿐이었죠. 소속팀 경기까지 뛰지 못하게 되면서, 죽을 만큼 괴로웠습니다. 이전에도 경기 중 큰 실수를 한 적은 있었어요. 그런데 그때는 곧장 경기를 뛰면서 만회하고, 또 그러면서 잊을 수 있었어요. 그런데 이건 경기에 나서지 못하니, 도무지 잊힐 기회가 생기지 않는 겁니다. ‘나는 뭔가’란 자책과 원망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김주영에게 닥친 불행은 지난해로 끝나지 않았다. 올해까지 이어졌다. 중국 슈퍼리그는 최근 수년 동안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주창한 ‘축구 굴기’와 맞물려 대대적 투자를 진행했는데, 그 과정에서 카를로스 테베스나 오스카 등 세계적 선수가 많이 유입됐다. 아시아 쿼터로는 기량이 검증된 한국 선수들이 주로 차지했다. 광저우 헝다에서 터줏대감 역을 하던 김영권을 비롯해 많은 한국 선수가 슈퍼리그에서 활약했다.

그러나 슈퍼리그의 정책이 바뀌면서 한국 선수들의 대탈출이 시작됐다. 최근 슈퍼리그는 자국 선수들을 육성하기 위해 아시아 쿼터를 폐지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23세 이하 선수들의 의무 출전 규정까지 만들며 미래를 위한 본격 육성이 돌입했다. 이 과정에서 가장 피해를 보고 있는 건 한국 선수들이다. 그간 슈퍼리그에 속한 팀들은 아시아 쿼터 한 장으로 한국 선수들을 영입하는 데 썼는데, 그 규정이 사라지면서 이들을 데리고 있을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여전히 세계적 슈퍼스타들을 영입하는 기조는 사라지지 않은 가운데, 바뀐 규정의 화살이 한국 선수들에게 날아들고 있는 것이다.

“아직 결정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팀에 남아 새로운 시즌을 시작할지, 아니면 다른 리그나 팀을 찾아 떠날지 결정되지 않았어요. 만약 K리그로 복귀한다면 FC 서울이어야 할 텐데, 그것조차도 정해지진 않았어요. 그래서 하루하루가 더디고 힘듭니다. 다시 신나고 치열하게 축구하고 싶은데, 지금 저를 둘러싸고 있는 거의 모든 여건은 그 작은 바람조차 방해하고 있네요.”

김주영은 지금 오직 축구하는 일만 신경 쓰고 있다. 그런데 많은 게 여의치 않다. 어떤 선수는 오는 6월 러시아에서 개막하는 2018 FIFA 월드컵 출전을 목표로 삼고, 또 어떤 선수는 유럽 무대 진출을 꿈꾸고 있고, 또 다른 선수는 새로 이적한 팀 적응을 우선 과제로 삼았지만, 김주영은 자신에게는 먼 얘기라며 깊게 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그저 신나고 재미있게 축구했던 2012년처럼만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만큼 2017년 10월부터 3개월 남짓한 시간들은 김주영의 모든 것을 바닥까지 추락시켰다.

1988년생, 김주영은 우리나라 나이로 이제 서른하나다. 만으로 하면 꼭 서른, 앞으로 축구할 날이 많다. 2009년 경남 FC를 통해 프로에 데뷔했으니, 올해로 프로 경험도 이제 꼭 10년이다. 이는 앞으로 김주영이 스스로를 위해, 한국 축구를 위해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았음을 의미한다.

김주영은 경남에서 당찬 신인으로 두각을 나타냈으며, 서울에서 정상급 수비수로 발돋움했다. 그리고 그 활약을 인정받아 중국 슈퍼리그의 러브콜 받았다. 비록 지금은 2017년 10월 7일 밤 일어난 일로 모든 게 엉망이 됐지만, 그렇다고 지난 9년이란 시간의 눈부심과 미래의 발전 가능성이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지금 김주영에게 가장 필요한 건, 한 시라도 바삐 털고 다시 일어나 뛰는 것이다.

2009년 여름으로 기억한다. 혹서기라 K리그가 짧은 휴식기를 맞았을 때였는데, 그때 경상남도 함양에 위치한 경남의 클럽 하우스를 방문했다. 당시 조광래 전 감독(現 대구 FC 대표이사)은 연방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수비수들을 집중 훈련시키고 있었다. 훈련이 끝난 후 다가온 조 전 감독이 한 선수를 가리키며 이렇게 얘기했다. 그 선수는 경남에 막 입단한 신인 김주영이었다.

“저쭈 뛰가는 쟈 보이제? 단디 바라이. 제대로 클끼다.”

불행은 늘 겹쳐서 온다. 그래서 더 힘들다. 그래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 겹쳐서 온 불행 뒤엔, 다음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행복이 있음을 말이다. 이건 진리에 가까운 참이다. 물론 그 행복을 만나기 위해서는 지금의 불행을 잘 이겨내야 한다. 그래야 행복할 자격도 얻을 수 있다.

아직 축구할 날이 남이 남은 김주영, 부디 그가 지금 겹쳐서 온 불행을 이겨 곧 다가올 행복을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면 행복도 겹쳐서 올지 모른다.

글=손병하 기자(bluekorea@soccerbest11.co.kr)
사진=베스트 일레븐 DB, 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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