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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jury Time- 다른 누군가가 ‘얻은 기회’라 괜찮다는 씩씩한 전가을

2019-05-19 오후 2:14:00 손병하

(베스트 일레븐)

▲ 손병하의 Injury Time

‘탈락.’ 언제든, 어디서든, 누구든 맞닥뜨리면 참 아픈 말이다. 그게 아주 중요한, 두 번 다시 오기 힘들 기회를 목전에 두고서라면 더 그렇다. 그때의 탈락은 꿈이 깨어짐을 의미하고, 지금까지 했던 모든 노력의 물거품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그 탈락은 어떤 것으로도 쉬이 위로할 수 없다.

최근 한국 축구계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아픈 탈락을 겪은, 오랜 시간 한국 축구 여자 국가대표팀 일원으로 활약했던 전가을 얘기다.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위로가 필요할 것 같아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위로가 필요 없었다. 연방 “저 괜찮아요. 정말 괜찮아요”라고 말했다. 오히려 하려던 위로가 머쓱해지는 이야기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 왔다. “제가 잃은 기회는 또 다른 누군가가 얻은 기회잖아요. 그거면 됐어요. 그래서 진짜 괜찮아요.”

이틀 전이었던 지난 5월 17일, 한국 여자 축구의 대들보로 10년 이상 활약했던 전가을이 2019 국제축구연맹(FIFA) 프랑스 여자 월드컵에 참가할 수 없게 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윤덕여 감독이 발표한 23명의 최종 엔트리에 전가을의 이름이 없었던 것이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 전가을이 최종 엔트리에서 탈락했다.

17일로부터 열흘 전인 5월 7일. 전가을은 지소연과 조소현 등 해외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을 제외하고 소집된 윤덕여호 훈련 명단에 포함돼 파주 NFC(축구 국가대표팀 트레이닝 센터)에 입소했다. 윤 감독은 최종 엔트리를 확정하기 전 28명의 소집 훈련 명단을 발표했는데, 전가을도 포함됐다.

파주 NFC에서 열린 첫날 훈련을 지켜보며 전가을의 의지 같은 걸 읽을 수 있었다. 지난 10년 동안 한국 여자 축구계의 대표 테크니션으로 불리며 화려한 모습을 보였으나, 서른을 넘기고 나서는 모든 기량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 전가을 본인이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전가을은 소집 첫날 훈련부터 이를 악물고 뛰었다. 윤덕여호 최고령이란 한계를 이겨내기 위해 최선을 다해 경쟁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3명 중 전가을의 자리는 없었다. 윤 감독은 최종 엔트리를 발표하면서 “선택하지 못한 선수들에 대한 질문은 자제해 주시면 좋겠다”라고 말했는데, 전가을의 탈락은 윤 감독으로서도 괴로운 결정이었을 듯하다. 윤 감독이 여자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한 뒤 전가을과 함께 일군 영광이 많기에 더 그랬을 것이다. 그래도 정에 얽매일 순 없었을 터, 윤 감독은 아픈 마음을 애써 외면하며 전가을을 선택하지 않았다.

전가을의 탈락이 결정되고 세 시간가량이 흘렀을 17일 오후 8시 즈음. 전가을과 통화를 시도했다. 상처가 커 전화기가 꺼져 있을 줄 알았으나, 신호음이 갔다. 그러고 머잖아 전가을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냐는 질문에 “집에 거의 다 왔어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걱정만큼 크게 위축되거나 슬퍼하는 것 같진 않았다. 목소리가 꽤 밝았다.

특별한 질문 없이 한숨을 내쉬었더니, 곧장 “저 괜찮아요. 정말 괜찮아요. 저는 괜찮은데, 주변에서 더 걱정하시는 것 같아 제가 더 죄송하네요. 저희 부모님도 차라리 잘 됐다고 크게 마음 쓰지 않으세요. 월드컵에 가면 얼마나 힘든지 아시니까요. 그런데 주변에서 더 걱정하세요. 저 진짜 괜찮은데….”

전화 건 사람을 걱정해 기계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었다. 전가을의 말에는 힘이 있었고, 큰 슬픔 같은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당연히 하나도 없진 않았을 것이다. 선수들에게 월드컵은 꿈 그 이상의 무대고, 그 무대에 오르기 직전 탈락했다는 건 누구라도 쉽게 이겨낼 수 있는 아픔인 까닭에서다. 그래도 전가을은 자신을 걱정하는 사람들을 더 걱정하며 연신 “괜찮아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가을이 한마디 했다. 전가을의 그 한마디를 들이니, 그래도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싶었다. 곧 털고 일어나겠구나 싶었다. 진심이 묻어 있었기 때문이다.

“제가 잃은 기회는 또 다른 누군가가 얻은 기회잖아요. 그거면 됐어요. 저는 월드컵도 한 번 경험 했고요. 후배들이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하면 그만이에요. 그래서 정말 괜찮아요.”

그 누구보다 아픈 탈락을 경험하고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 기회가 됐기에 괜찮다는 전가을의 마음이 참 고마웠다. 그리고 적지 않은 나이와 싸우며 여전히 ‘축구 선수 전가을’로 뛰고 있는 그녀의 노력과 도전도 참 많이 고마웠다.

아직 끝나지 않은 전가을의 축구가 다시 피치 위에서 멋지게 비상할 날을 바라고 또 바란다.

글=손병하 기자(bluekorea@soccerbest11.co.kr)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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