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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jury Time- 프랑스 여자 월드컵, 보상이자 축제이길

2019-05-22 오후 4:09:00 손병하

(베스트 일레븐)

▲ 손병하의 Injury Time

22일 새벽 인천 국제공항. 그곳에 태극 낭자들이 모였다. 2019 FIFA 프랑스 월드컵 본선에 도전하기 위한 출발이었다. 수장 윤덕여 감독부터 막내 강채림까지 같은 디자인과 패턴의 정장을 입었다. 말끔하게 갖춰 입은 그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과한 넥타이 대신 깔끔한 스카프를 한 것도 보기 좋았고, 같은 복장을 맞춰 입으니 단결감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대한민국을 대표해 국제 대회에 나서는 국가대표다웠다.

언뜻 당연한 복장 같지만 그렇지 않다. 말끔한 그녀들을 보니, 말끔할 수 없었던 과거가 떠올랐다. 그래 오래되지 않은 과거, 여자 전용 유니폼이 없어 남자 유니폼 중 가장 작은 사이즈를 입었던 때다. 전가을 등 체구가 작은 선수들은 유니폼 소매에 구멍을 뚫어 손가락에 꼈다. 안 그러면 소매가 흘러내려 경기할 때 불편했다. 키가 좀 큰 선수들도 다르지 않았다. 기장만 맞을 뿐, 남자 어깨에 맞춰 제작한 재봉선 탓에 도무지 맵시가 안 났다.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모든 선수가 사용할 수 있다는 파주 NFC도 제대로 쓰지 못했다. 그때는 남자 A대표팀이 파주 NFC에 입소하면, 다른 대표팀은 모두 자리를 비워야 했다. 그녀들도 여자 축구를 대표하는 A대표팀이었으나 예외가 아니었다. 그래서 동시에 소집될 때면 인근 호텔에서 자며 원정 훈련을 다녀야 했다. 훈련장도 가까운 청룡이나 백호가 아닌 멀리 떨어진 곳을 사용해야 했다. 당시 어린 지소연은 그 설움을 이기지 못하고 왈칵 눈물을 쏟았다.

그보다 오래전, 그러니까 십수년 전으로 시계를 돌리면 더 심각했다. 불합리한 처우 수준이 아니었다. 여자 축구 대회 현장에선 차마 볼 수 없는 장면이 흔하게 펼쳐졌다. 경기 중 선수를 불러 입에 담기 힘든 욕을 하는 감독도 있었고, 어떤 지도자는 아예 폭력까지 행사했다. 여자라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참기 힘든 치욕과 모욕이 횡행했다. 세상이 관심을 주지 않았던 여자 축구는 그렇게 나쁜 것들로 얼룩져 있었다.

그런 한국 여자 축구가 이젠 세상의 크고 따뜻한 관심을 받고 있다. 말끔하게 입은 정장, 당당하게 파주 NFC를 사용할 수 있는 것, 멀리 있는 훈련장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 신세계 그룹에서 한국 여자 축구를 위해 100억 원을 쾌척한 것 등이 전과는 달라진 관심의 방증이다. 지난 4월 있었던 여자 축구 A매치 때 1만 명이 훨씬 넘는 관중이 운집한 것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우리들이 바꿔준 것이 아니다. 그녀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바꾼 것들이다. 참으로 미안한 일이다. 이제는 어엿한 여자 A대표팀의 캡틴이 된 조소현은 입버릇처럼 늘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잘해야 해요. 그래야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져 주시니까요.” 전가을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잘하지 않으면 안 돼요. 그러면 팬들의 마음을 돌릴 수 없어요.” 지소연 등 다른 선수들이라고 다르지 않다. 그녀들이 지금껏 피치 위에 몸을 던진 건, 세상의 관심을 받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더 밝은 곳으로 여자 축구를 꺼내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지난 10년 동안 한국 여자 축구 선수들은 최선을 다해 세상에 외쳤다. 프로와 학원 팀들이 줄줄이 해체하고, 여자 축구를 하는 인구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와중에도 그녀들은 한 번도 포기한 적이 없다. 외려 더 크게 울부짖으며 자신들을 봐달라고 소리쳤다. 그 결과 2015년엔 FIFA 캐나다 여자 월드컵 16강에 올랐고, 이번 프랑스 여자 월드컵 본선 티켓도 따냈다. 그렇게 그녀들은 끊임없이 세상의 관심과 사랑을 받기 위해 애썼다.

신세계 그룹이 한국 여자 축구에 100억 원을 쾌척한다는 소식이 전해진 지난 15일, 파주 NFC에서 훈련하던 윤덕여호에 두 유럽파가 합류했다. 지소연과 조소현이다. 지소연은 그 이야기를 전하자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기사를 찾아봤어요”라며 놀라움을 표현했고, 조소현은 “우리가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라며 감격스러워했다. 이렇게 되기까지 참 고생 많았다고 격려하자, 조소현이 이렇게 답했다.

“후배들이 지금보다 좀 더 좋은 환경에서 뛸 수 있게 된 것 같아 정말 다행입니다. 지난 10년 동안의 노력을 보상받은 기분이에요. 그런데 우리들도 선배들 덕에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었어요. 그분들이 없었더라면, 우리들도 정말 힘들었을 겁니다. 그래서 한국 여자 축구 초창기 때 희생하신 선배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하고 싶어요. 그나저나 이번 프랑스 여자 월드컵에서 우리가 더 잘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추가됐어요. 정말 잘해야겠어요.”

머잖아 오롯이 자신들의 힘으로 세상의 관심을 얻어낸 태극 낭자들은 더 큰 사랑을 얻기 위한, 더 밝은 곳으로 가기 위한 도전을 시작한다. 물론 FIFA 여자 월드컵이란 거대한 무대를 향한 도전이라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척박했던 이 땅의 여자 축구를 이만큼 바꾸고, 늘 불가능하리라 생각했던 도전을 성공으로 매듭지었기에 이번에도 기대가 꺾이지 않는다. 그녀들은 또 한 번 우리들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능력과 자격을 갖췄다.

돌이켜 보면, 국제 대회에 도전했던 그녀들이 성공하기 어렵다고 생각한 건 늘 우리들이었다. 그녀들은 늘 성공을 자신했고, 이길 수 있다고 외쳤다. 그러나 우리가 듣지 않았을 뿐이다. 2010년 U-17 여자 월드컵 우승과 U-20 여자 월드컵 3위 때도 그랬고, 2015년 여자 월드컵 16강 진출 때도 그랬다. 근자에 있었던 평양 원정 경기와 2018 여자 아시안컵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들이 믿지 않았을 뿐 그녀들은 스스로를 믿었고, 끝내 성공했다.

이번 대회에선 태극 낭자들의 도전에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도록, 지금부터 믿고 응원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척박한 환경에서 지금껏 외로이 싸운 그녀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보답은 아낌없는 박수와 응원이다. 물론 이번 도전이 성공으로 귀결되지 않더라도 박수와 응원은 멈추지 말아야 한다. 그녀들이 음지에 있던 여자 축구를 양지로 끌어낸 그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박수받을 자격이 있으니 말이다.

이번 프랑스 여자 월드컵은 그녀들이 16강이나 8강에 진출해야 하는 성공을 위한 도전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저 지난 10년 동안 그녀들이 보인 노력과 헌신에 대한 일종의 보상이자 축제였으면 좋겠다. 그래야 그간의 외면이 좀 덜 미안할 것 같다. 비로소 양지로 나온 한국 여자 축구를 위한 그녀들의 멈춤 없었던 노력에 고개 숙인 고마움과 존경을 표한다.

글=손병하 기자(bluekorea@soccerbest11.co.kr)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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