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11 기자 클럽
손병하의 Injury...
김태석의 축구한잔
임기환의 人sight
안영준의 HERE IS...
조남기의 축크박스
김유미의 ALEGRE...
B11 객원 칼럼
이재형의 축구앨범
박공원의 축구현장
양정훈의 성지순례
Home > K리그 > 김태석의 축구한잔
           
[김태석의 유럽 축구 유랑기] #26 전설이 된 어느 물리치료사 이야기

2019-07-05 오후 3:27:00 김태석

(베스트 일레븐=함부르크/독일)

클럽의 지원 스태프는 조금은 서글픈 위치에 놓여 있다. 경기를 진행하는 선수들은 피치 위의 스타다. 늘 팬들로부터 주목받는다. 그 선수들을 통해 경기를 풀어가는 감독과 코칭스태프 역시 못잖은 존재감을 가진다. 이들이 있어야만 큰 틀에서 경기를 운영해나갈 수 있다. 그러나 물리치료사나 팀 닥터 등 지원 스태프는 그렇지 않다. 선수단 운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존재들이지만, 이들을 향한 세간의 주목은 거의 없다. 어떤 측면에서는 심판이 더 낫다. 만에 하나 오심을 저지를 경우 따가운 눈총이라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지금 소개할 이 인물은 참으로 행복한 삶을 살다 갔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한때 분데스리가 최고 명문 클럽 중 하나로 손꼽혔던 함부르크 SV의 안방 폴크스파르크슈타디온 정문 앞에 익살스러운 미소를 지은 어느 남자의 동상이 서 있다. 이 사나이는 선수도, 감독도 아닌 물리치료사였다. 헤르만 리거, 함부르크 역사상 아니 분데스리가 역사상 가장 크나큰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남자다.

함부르크에서만 26년 경력 물리치료사

폴크스파르크슈타디온 앞 공원에는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는 조형물이 있다. 커다란 발 동상이다. 이 발은 함부르크 올타임 레전드로 평가받는 우베 젤러의 발을 본 뜬 것이다. 젤러의 발 동상 주변에는 함부르크가 팬들과 함께 선정한 레전드들의 풋 프린팅 혹은 핸드 프린팅이 자리하고 있다. 믈라덴 페트리치·만프레드 칼츠·라파엘 판 더 바르트 등 분데스리가를 무척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함부르크의 전설들이다.

손흥민은 없어 아쉬움을 느낄 법한 찰나에 흥미로운 인물을 발견했다. 핸드 프린팅이 되어 있어 골키퍼로 착각했다가 마사지사를 뜻하는 MASSEUR라는 단어에 멈쳤다. 앞서 언급한 리거였다. 도대체 어떤 물리치료사였길래 명예의 전당에 헌액이 될 정도로 대단했는지 의구심이 들던 차에 무심결에 정문을 바라보니, 앞서 언급했듯이 놀랍게도 젤러도 못한 스타디움 앞 정문 동상의 주인공으로 팬들을 반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흥미로웠다. 함부르크가 사랑해마지 않는 물리치료사 리거의 삶이 정말 궁금해졌다.

리거가 함부르크 물리치료사로 일하게 된 건 우연의 연속이었다. 본래 그는 스키 선수를 대상으로 한 물리치료사였다. 1971년부터 5년간 독일스키협회에 소속되어 일하다 독일축구협회(DFB)에서 대표팀 물리치료사로 일하고 있던 한스 위르겐 몬타그와 인연이 닿아 축구계에도 발을 들였고, 독일 A대표팀에서 만난 함부르크 스타 칼츠를 만나면서 1978년 함부르크의 정식 물리치료사가 된 것이다.

그리고 이후 26년간 함부르크를 떠나지 않고 오직 ‘데어 디노(함부르크의 별칭)’만을 위해 활동했다. 함부르크를 거친 어지간한 감독과 선수보다도 ‘함부르크 짬밥’이 많은 인물이었다. 함부르크에 속했던 시간을 따졌을 때 그에게 비길 만한 인물은 선수와 회장으로서 활동하며 클럽에 헌신한 젤러 이외에는 없을 것이다.

26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오직 함부르크에 헌신했다는 점만으로도 레전드 대우를 받을 만한 자격은 충분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그는 진심으로 클럽을 사랑했고, 함부르크라는 도시에 큰 애정을 품은 사람이었다. 리거는 물리치료사의 본분을 다함은 물론, 함부르크 팬들과 서슴없이 어울리는 유쾌한 성격으로 가는 곳마다 큰 인기를 끌었다.

익살스러운 표정과 함께 팬들에게 ‘엄지 척’을 내세우는 포즈는 그의 트레이드마크로 팬들에게 인식되었고, 팬들은 경기장에서 흥을 돋우는 리거를 위해 ‘헤르만, 헤르만’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응원을 보내주기도 했다. 가는 곳마다 팬들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그 모습에 클럽의 마스코트인 ‘공룡’의 이름마저 리거를 지칭하는 헤르만으로 땄을 정도다. 심지어 팬클럽까지 거느린 물리치료사였다. 그야말로 함부르크의 컬트 히어로였던 것이다.

진정한 함부르크人

그런데 함부르크를 떠난 이후의 삶이 더 팬들의 심금을 울렸다. 2004년 리거는 원치 않게 클럽을 떠나야 했다. 암을 앓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건강을 위해 자리를 내놓아야 했다. 1971년 독일스키협회에서 물리치료사 경력을 시작한 후 33년 만에 은퇴하게 된 그의 심경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괴로웠을 것이다. 하지만 리거는 클럽을 떠났을지언정 함부르크를 떠나지 않았다.

리거는 사랑을 받을 줄 알았던 인물이었으며, 반대로 사랑을 베풀 줄도 아는 사람이었다. 리거는 팬들에게 받았던 뜨거운 사랑을 되돌려주길 원했다. 함부르크 내에서 유명인사였던 리거는 자신의 유명세를 통해 여러 자선 사업을 벌였다. 클럽은 당연하고 지역 내 대학병원과 연계해 심장병을 앓고 있는 아동들을 돕기 위한 기금 마련에 나선 것이다. 덕분에 클럽을 떠났어도 리거는 여전히 함부르크 팬들의 눈에서 떠나지 않을 수 있었고, 변함없는 사랑을 받으며 지역의 명사로 이름을 날리게 됐다. 리거가 물리치료사로 일하는 모습을 보지 못한 젊은 팬들도 모두 리거를 알고 존경했다. 2011년에는 올해의 함부르크인으로 선정되는 영광을 맛볼 수 있었던 이유다.


그랬기에 그의 장례식은 어지간한 슈퍼스타 못잖게 성대하게 열렸다. 리거가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2014년 2월 18일 사망하자, 함부르크 선수들은 2월 22일 벌어졌던 홈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전에서 모두 검은 완장을 차고 경기에 나섰다. 분데스리가 공식 유튜브를 통해 당시 소개한 영상을 보면 그때의 추모 열기를 지금도 확인할 수 있는데, 함부르크 팬들은 “아무도 대신할 수 없는 우리들의 영원한 최고의 남자”라는 거대한 걸개를 내걸며 추모 카드섹션까지 벌였다. 일부 팬들은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슬퍼하기도 했다. 일회성이 아니라 클럽 차원에서 세상을 떠난 리거를 위한 추모 기념식까지 열며 챙기고 있다. 리거의 동상이 폴크스파르크슈타디온 정문에 자리한 것도 바로 이때부터다.

뒤늦게나마 알게 됐지만, 리거의 생애는 여러모로 많은 울림을 준다. 앞서 언급했듯 물리치료사는 사람들의 시선을 거의 받지 못하는 보직이다. 지원스태프는 팀의 구성원이라기보다는, 그냥 주변에서 뒤치다꺼리나 하는 사람들이라는 느낌을 주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진정 자신의 직업을 사랑하고 사명으로 여기며 헌신한다면, 그리고 고하를 막론하고 주변 사람들과 거리낌 없이 어울리며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인생을 산다면 얼마든지 ‘전설’이 될 수 있다는 걸 리거가 알려주고 있다. 리거의 동상을 쉽게 지나치지 않아 다행이었다. 그의 동상을 통해 또 한 번 인생을 배웠다.

글·사진=김태석 기자(ktsek77@soccerbest11.co.kr)
사진=ⓒgettyImages/게티이미지코리아(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영상=분데스리가 공식 유튜브 계정

축구 미디어 국가대표 - 베스트 일레븐 & 베스트 일레븐 닷컴
저작권자 ⓒ(주)베스트 일레븐.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www.besteleven.com

스팸확인
댓글 남기기 | 로그인 후 이용가능 합니다.(한글100자 영문200자 이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