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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석의 유럽 축구 유랑기] #27 ‘괴짜’ 장크트 파울리의 저항, 흑역사, 그리고 속죄

2019-07-13 오후 3:07:00 김태석

(베스트 일레븐=함부르크/독일)

북독일 대표도시 함부르크는 정말 꼭 한 번 방문해보고 싶었던 도시였다. 손흥민의 흔적, 손흥민이 속했던 분데스리가 명가 함부르크 SV 때문이 아니다. 북해로 흘러가는 엘베 강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고자 했던 건 더더욱 아니다. 도리어 지저분하고 어수선한, 그러면서도 독특한 ‘함부르거’의 일면이 궁금했다. 그 면모를 보기 위해서는 꼭 살펴봐야 할 팀이 있다. 장크트 파울리다.

분데스리가 2(2부리그) 클럽 장크트 파울리는 한국에도 제법 잘 알려져 있는 클럽이다. 최경록·박이영 등 한국 선수들이 활약한 바 있는 클럽이기도 하지만, 이 팀이 가진 독특한 팀 컬러 때문이다. 실력이 모자라는 건 장크트 파울리 팬 스스로 인정한다. 하지만 그들은 성적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고 부르짖는다. 바로 그들의 정체성이다. 여기서 말하는 정체성은 문화적 면은 물론이며 정치적 면까지 모두 아우른다. 그저 승리에 반색하는 여타 클럽과 달리 장크트 파울리 팬들은 반(反)나치주의·반인종주의·반파시즘·반자본주의 등을 부르짖는다.

이 때문에 외부로부터 ‘괴짜’라는 평가도 붙는다. 말로만 듣던 그 분위기가 너무 궁금해서 함부르크를 찾지 않을 수 없었다. 솔직히 좀 더 친숙한 함부르크 SV보다 이 장크트 파울리에 더 매력을 느껴 그들의 근거지인 리퍼반 인근에 숙소를 잡았을 정도다.

리퍼반 길거리에만 가도 느낄 수 있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장크트 파울리의 박물관이나 그들의 홈인 밀레른토어 슈타디온 내부를 찾을 수 없었다. 머무는 기간 내에 매치 데이가 없었고, 그들의 박물관은 일주일에 단 한 번 외부에 공개되는 탓에 찾을 수 없었다. ‘오피셜’한 관점에서는 장크트 파울리 방문은 허탕이었다. 기회가 된다면 정식으로 그들을 다시 방문해보고 싶다.

그런데 그렇다고 아쉽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애당초 보고 싶었던 건 그들의 축구가 아닌 성향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었기 때문이다. 이 관점으로 다시 생각한다면 결코 헛걸음이 아니었다. 장크트 파울리가 어떤 사람들이 응원하는 클럽인지는 길거리에서 넘치듯 알 수 있었다.

장크트 파울리의 연고지는 함부르크, 정확히 함부르크의 리퍼반이라는 구역이다. 이곳은 암스테르담과 더불어 유럽에서 가장 소문 난 홍등가다. 하지만 단순히 어두운 밤거리 정도로 마름질할 수 없는 곳이다. 이곳은 록의 전설 비틀즈가 무명 시절을 보낸 곳이며, 이런 배경 덕에 록 음악이 성행하는 곳이기도 하다. 비단 록 음악뿐만 아니라 패션·미술 등 젊은이들의 예술 거리라는 인식도 매우 강하다. 젊은이들이 한데 모이는 곳이다 보니 그릇된 체제에 대한 저항이라는 의식이 매우 강하며, 그 의식이 예술로 표출되고 있다.

장크트 파울리 역시 의식 표출 통로로 활용된다. 리퍼반 지하철역부터 밀레른토어 슈타디온까지 도보로 향하다보면 이를 느낄 수 있다. 약 15분 정도 걷는 거리인데, 이곳은 세 가지로 압축해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온갖 스티커·낙서·그래피티 때문에 성한 곳을 살필 수 없는 건물 벽, 스티커와 낙서로 표출되는 그들의 정치적 성향과 예술, 그리고 그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장크트 파울리에 관한 표식이다. 장크트 파울리 팬들은 내세울 만한 트로피가 없어도, 아니 성적이 바닥을 기어도 자신들의 정치적 성향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클럽이라면 응원할 의미가 넘치듯 충분하다고 여기는 분위기였다.

좌파 클럽 혹은 모든 압제를 거부하는 아나키스트 클럽

장크트 파울리가 본래부터 이런 팀 컬러를 가진 팀은 아니었다 한다. 이런 팀 컬러가 뿌리를 내린 건 1980년대 말 혹은 1990년대부터라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당시 유럽 축구계, 좀 더 정확히 하자면 스탠드의 분위기는 인종차별적 분위기가 만연한 상태였다. 과거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에서 활약하던 아프리카 출신 최초의 분데스리가 득점왕 앤서니 예보아의 경우에는 심각한 인종 차별 행위를 당하기도 했다.

순혈 혹은 독일에 의한 결과물을 강조하는 극단적으로 우경화된 팬층이 상당수 존재했고, 지역 라이벌인 함부르크 SV를 포함해 많은 클럽의 팬들이 이런 분위기에 휩쓸렸다. 지금도 한자 로스토크·디나모 베를린과 같은 팀이 이런 성향의 팬들이 중심이 된 클럽으로 평가받는다. 장크트 파울리의 팬덤은 이런 우경화된 분위기에 대한 반발 작용으로 생겨났다. 장크트 파울리는 독일 내에서 가장 그 색채가 뚜렷한 ‘좌파’ 클럽으로 통하며, 무엇보다 주변의 전체주의적 접근과 압박을 매우 경계한다.

그리고 변질된 좌파 역시 그들의 적이다. 밀레른토어 슈타디온에서 접한 한 스티커가 이를 말해주고 있었다. 이오시프 스탈린·마오쩌둥·김정은의 얼굴이 새겨진 이 스티커에는 “그건 공산주의가 아니다”라는 글귀가 크게 새겨져 있다. 아래에는 나치 독일 시절 나라를 망하게 할 뻔한 반유대주의에 대한 명백한 반대 의사도 적혀 있다. 요컨대 모든 형식의 탄압을 그들은 거부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장크트 파울리 팬들을 좌파적 그룹이 아닌 무정부주의자를 뜻하는 아나키스트라 보는 이들도 많다.

나치에 대한 아픔과 어두운 역사

리퍼반에는 유달리 나치즘에 반대하는 장크트 파울리 팬들의 민심을 많이 확인할 수 있다. 어느 펍에서는 대놓고 “나치에게 줄 맥주는 없다(Kein Bier Fur Nazis)”라는 출력물이 떡하니 붙여 놓은 경우도 있었다. 손님이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이상 어떻게 그의 정치적 성향을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들지만, 이 동네 사람들이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는지를 이를 통해 잘 느낄 수 있었다.

나치 치하 독일 시절에 악독한 국가전체주의에 탄압받은 독일 클럽이 한두 개가 아니긴 하지만, 장크트 파울리는 진정 나치즘에 대한 혐오 정서가 강한 클럽이다. 밀레른토어 슈타디온 정문 앞에 바로 그 흔적을 살필 수 있다. 아돌프 히틀러가 집권했던 1933년부터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한 1945년까지 희생된 장크트 파울리 식구와 팬들을 추모하는 비는 물론 가묘까지 만들어 기리고 있다.

축구와 관련있는 인물은 아니지만, 장크트 파울리 럭비팀에 속해 있던 폴 랑이라는 인물은 폴란드 테레친에 자리한 나치 강제수용소에 끌려가는 일도 있었다. 그들의 엠블럼에도 유대인을 뜻하는 육망성이 존재하며, 장크트 파울리 경기가 열릴 때 그들의 울트라스는 나치즘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낸다. 장크트 파울리는 나치에 정말 상처를 많이 입은 클럽이다.

그런데 외부 세계 사람들에게 덜 알려졌지만, 어두운 면도 존재한다는 점이다. 1933년부터 1945년까지 클럽을 책임졌던 빌헬름 코흐 전 장크트 파울리 회장은 나치 지지자였으며, 나치당 당원이기도 했다. 코흐 전 회장의 이름은 1998년까지 장크트 파울리의 홈 경기장에 이름이 헌액까지 됐을 정도로 클럽 내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던 인물이었다.

1930년대 말 장크트 파울리 최고의 스타였으며 선수 경력으로 보면 클럽의 레전드라 할 만한 오토 볼프는 악명 높은 나치 친위대인 슈츠스타펠로 활동했다. 함부르크 내에 설치된 노이에감메 강제수용소에서 유대인들을 학대하는 일도 저질렀던 사람이다. 이 때문에 장크트 파울리는 ‘반나치 클럽’이라는 찬사를 받으면서도, 정작 나치 시절에는 부역했던 클럽이라는 비판도 동시에 받고 있다.

다행스러운 점은 지금의 장크트 파울리는 이 ‘흑역사’에 대해서도 숨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승컵을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다른 클럽 박물관과 달리 장크트 파울리 박물관은 그들의 정체성과 역사를 다룬다고 한다. 앞서 말했지만 방문하지 못해 매우 아쉬운데, 훗날 살펴보니 지난 2013년 이런 관련한 전시회도 여는 등 어두운 과거도 가감 없이 후세에 전했다고 한다.

사람들이 몰랐으면 할 법한 나쁜 이야기, 어쩌면 반나치 클럽이라는 클럽의 정체성마저 깨뜨릴 수 있는 위험한 역사에 대해서도 서슴없이 드러내는 그들의 자세에는 속죄의 마음이 담겨 있을 것이다. 숨기지 않으며 모진 비판도 기꺼이 받겠다는 자세다. 괴짜라 불릴 지언정 바른 길을 걸으려는 장크트 파울리의 의지를 알 수 있다.

글·사진=김태석 기자(ktsek77@soccerbest1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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