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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석의 유럽 축구 유랑기] #29 제국주의의 흉터가 남은 축구 성지

2019-08-05 오후 12:07:00 김태석

(베스트 일레븐=베를린/독일)

베를린 올림피아슈타디온은 우리 축구팬들에게 친숙하고 꽤나 유명한 경기장이다. 여러 이유가 있다. 독일 내 UEFA 5성급 경기장 중 하나이며, 그중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스타디움이다. UEFA 5성급 경기장이다 보니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이라는 큰 무대를 개최한 경력도 있다. 2006 FIFA 독일 월드컵 결승전이 개최된 장소기도 하다. 이곳에서 지네딘 지단은 마르코 마테라치의 가슴에 박치기를 했고, ‘아주리 군단’ 이탈리아는 세계 정상에 올랐다.

게다가 현재 분데스리가를 즐기는 팬들에게는 독일 내 축구 성지로 통한다. 헤르타 베를린의 홈구장이기도 하지만, 독일 내에서는 DFB 포칼 결승전을 개최하는 ‘독일의 웸블리’로 불린다. ‘축구 천국’ 독일 내에 유명한 스타디움이 참 많지만, 상징성 측면에서는 가히 최고라 할 만한 경기장이 바로 베를린 올림피아슈타디온이다.

발단은 일본축구박물관 속 김용식 선생

하지만 이 경기장을 방문한 이유는 따로 있다. 위 사진은 지난해 겨울 일본 도쿄에 자리한 일본 축구박물관에서 발견한 1938 베를린 올림픽 당시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의 베스트 라인업이다. 일본 선수 사이에 묘하게 한국인인 듯한 이름이 자리한 것 같다고 느꼈다면, 정확하다. 원으로 표시된 선수는, ‘한국 축구 아버지’로 후세 축구인들에게 길이 추앙받는 김용식 선생이다.

당시 김용식은 태극기를 가슴에 붙이지 못하고 일본 국가대표로서 대회에 나서, 일본 축구의 사상 첫 올림픽 본선 승리(대 스웨덴전, 3-2승)에 힘을 보탰다. 그 덕분에 김용식은 한·일 축구 명예의 전당에 모두 이름을 올리는 영광을 맛봤지만, 사실 일제강점기라 불리는 시대의 아픔이 낳은 결과물이라는 점을 떠올리면 매우 씁쓸한 일이기도 하다.

그때는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식민지 쟁탈을 벌이던 제국주의에 물들었던 시절이었다. 그 제국주의의 마수가 잠식하려 했던 스포츠 대회가 바로 이 경기장에서 개최된 베를린 올림픽이었다. 그때 시대상은 어땠을지 흔적이라도 직접 보고 싶었다. 이를 통해 역사의 교훈을 배우고 싶었다. 베를린 올림피아슈타디온으로 발걸음을 옮긴 이유다.

나치의 건축 상징물이라는 오명

1934년에 문을 열었으니 머잖아 개장 100주년을 맞이하는 오래된 경기장이지만, 베를린 올림피아슈타디온의 위용을 실제로 접하니 정말 대단했다. 보는 이가 압도가 될 정도로 규모도 매우 큰데다, 경기장 정문 앞에 자리한 거대한 오륜기 게이트, 대회 개최를 알린 거대 종(鐘) 등 갖가지 관련 장식물은 이제는 독일의 대표 문화재가 될 만치 그 가치가 매우 크게 인정받고 있다.

무엇보다 독일의 어두웠던 시기인 ‘나치 시절’의 상징이 담긴 건축물이라는 점에서, 그릇된 역사를 통해 반성하고 성찰하려는 독일의 노력을 확인할 수 있다. 베를린 올림피아슈타디온은 나치 독일 시절 군수장관이었던 ‘천재 건축가’ 알베르트 슈페어가 직접 설계한 것으로, 슈페어는 유럽을 넘어 전 세계의 지배자가 되겠다는 아돌프 히틀러의 야심을 경기장 곳곳에 불어넣으며 충성했다.

비단 슈페어 뿐만 아니라, 나치 인사들은 이 대회를 통해 체제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려 했다. 하지만 대회 기간 내내 평화와 단합을 주장하던 이들은 대회가 끝난 지 1년도 안 되어 체코슬로바키아를 병합함으로써 세계대전 재발이라는 불을 질렀다. 이 때문에 베를린 올림픽은 역사상 가장 더러운 올림픽, 혹은 세계를 기만한 올림픽으로 불린다.

오스트리아가 아닌 오스트마르크의 라피드 빈

나치 시기가 끝난 후 독일 정부는 베를린 올림피아슈타디온에 선전 선동에 대한 장식물을 대거 철거시켰다고 한다. 하지만 그래도 그 시절의 상흔을 쉽게 볼 수 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두 가지다.

먼저 올림피아슈타디온 측이 독일축구협회(DFB)와 함께 조성해 놓은 DFB 포칼 거리를 소개하고 싶다. 앞서 언급했듯 이곳에서 대회 결승전이 벌어진다. 하여 경기장 바로 옆에 매년 대회 결승전 스코어보드와 풋 프린트로 꾸며진 DFB 포칼 명예의 전당이 자리하고 있다. 이중 가장 시선을 끄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1938-1939 DFB 포칼 결승전 스코어보드다. 이 당시에는 전국을 아우르는 분데스리가가 없었기 때문에 DFB 포칼이 독일 내 최고 권위 축구 대회였다. 그런데 1938-1939 DFB 포칼 결승에선 색다른 클럽이 황금빛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바로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명문 클럽 라피드 빈이었다. 라피드 빈은 1938-1939 DFB 포칼에서 FSV 프랑크푸르트를 3-1로 꺾고 정상에 올랐다. 오스트리아 클럽이 DFB 포칼에 오른 첫 사례이며, 라피드 빈은 1941년 분데스리가의 전신인 전 독일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는 등 최강의 전력을 뽐냈었다.

라피드 빈이 DFB 포칼에 족적을 남길 수 있었던 이유는 1938년 나치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병합했던, 이른바 ‘안슐루스’라 불리는 사건 때문이다. 한때 제국으로 불렸을 정도로 강국으로 꼽혔던 오스트리아는, 안슐루스 이후 ‘오스트마르크(Ostmark)’라는 독일 내 한 지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한국 내에서 전국적인 반발을 불렀던 한일합방과 달리, 안슐루스는 오스트리아인들이 뜨겁게 환영했었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긴 하다. 하지만 특정 국가가 야욕을 드러내며 다른 국가를 집어 삼켰다는 점, 먹혀버린 국가에 속한 축구 클럽이 병합된 국가의 축구 대회에서 우승했다는 점은 그때의 어두웠던 시대상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사건 중 하나라는 점에서 쉽게 지나칠 수 없었다.

참고로 한국 축구계도 이와 비슷한 일을 겪기도 했다. 1935년, 지금은 ‘일왕배’라 불리는 전일본 축구 선수권대회에서 서울을 연고로 한 전경성 축구단이 도쿄 문리대학을 6-1로 대파하고 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일왕배 역사 속에서 유일하게 외국팀이 챔피언으로 등록된 사례다.

MARATHONLAUF 42.195m SON JAPAN

비단 축구를 떠나서도, 제국주의 국가들이 자행한 침략의 역사를 살필 수 있다. 베를린 올림피아슈타디온 서측 마라톤 게이트 외벽에는 이 대회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금메달리스트의 명단이 새겨져 있다. 흑인을 사람 취급하지 않았다는 히틀러 앞에서 무려 네 개의 금메달을 휩쓸어가버린 미국 육상 레전드 제시 오웬스를 비롯한 수많은 영웅들의 이름이 석판에 새겨져 있다. 당시 국제 스포츠계에서 누가 ‘지존’이었는지를 알 수 있는 굉장히 소중한 기록이다. 그 기록에서 가슴 아픈 흔적을 발견했다.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손기정 선생의 이름이, 너무도 와닿지 않는 국명과 함께 새겨 있었다. 당시 동메달을 딴 남승룡 선생과 함께 포디움에 올라 금메달을 목에 걸고도 기뻐하지 않았던 모습은 민족적 울분을 자아냈고, 동아일보가 사진 속 일장기를 지워버린 이른바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손기정 선생의 우승은 일제강점기 시절 스포츠계의 큰 경사이기도 했지만 그만큼 큰 아픔이기도 했다.

IOC는 여전히 홈페이지에 일본식 이름 표기인 손 키테이(Son Kitei)와 일본이라는 국적으로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리스트인 손기정 선생을 소개하고 있다. IOC는 식민지 국가 출신 선수들이 독립 후 국적으로 바꾸는 걸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잣대는 베를린 올림피아슈타디온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손기정 선생 이외에도 식민지 국가 출신 메달리스트의 국적 변경을 해주지 않는다는 기준을 모르는 바 아니나, 그래도 한국의 스포츠 영웅이 일본 국적으로 소개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쭉 그럴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가슴에 먹먹해질 수밖에 없었다.

글·사진=김태석 기자(ktsek77@soccerbest1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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