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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석의 유럽 축구 유랑기] #30 동베를린의 진정한 주인 유니온 베를린

2019-08-09 오전 10:51:00 김태석

(베스트 일레븐=베를린/독일)

베를린은 독특한 유럽 도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도시가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으로 갈리게 됐던 어두운 역사의 흔적이 지금도 곳곳에 남아 있으며, 그 영향은 현재 독일 사회 전 분야에 크게 남아 있다. 축구 역시 마찬가지다. 이 도시를 연고로 한 팀, 특히 공산 정권의 통치를 받았던 동베를린을 연고로 했던 팀들은 그간 한국 내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던 굴곡진 역사를 가지고 있다.

지금 소개할 유니온 베를린이 바로 그러한 팀 중 하나다. 유니온 베를린은 2018-2019시즌 독일 분데스리가 2(2부리그)에서 3위를 차지한 후, VfB 슈투트가르트와 플레이오프를 거쳐 2019-2020 독일 분데스리가 1(1부리그)로 승격한 클럽이다. 통독 이후 처음으로 1부리그를 경험하게 됐으며, 동독 출신 클럽으로도 디나모 드레스덴·한자 로스토크·VfB 라이프치히·에네르기 코트부스(통일 이후인 2009년 창단한 RB 라이프치히 제외)에 이어 다섯 번째로 1부리그를 경험한 팀이 됐다. 단순히 하부리그를 거쳐 승격한 팀이 아닌, 모질고 분통이 터지는 역경을 모두 딛고 최고의 무대에 선 팀이라는 점에서 주목해야 한다. 게다가 정말 유쾌하고 즐거운 문화를 가진 인기 클럽이라는 점에서 꼭 소개하고 싶다.

디나모 베를린에 짓눌린 민중의 클럽

1906년 창단한 유니온 베를린의 모체는 금속 노동자들이 모체가 된 클럽이다. 지금도 Eisner(註:영어로 iron, 강철)라는 별칭으로 자신들을 지칭하는 이유다. 본래 FC 올림피아 06 오베르쇠네바이데라는 클럽이 모체가 됐는데, 이 클럽은 1923 전 독일 챔피언십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는 등 세계대전 전만 하더라도 나름 베를린을 대표할 만한 강성함을 자랑하던 팀이었다. 하지만 세계대전 이후 공산정권이 들어선 후 동독 내 모든 스포츠 클럽이 정권의 입맛에 맞게 해산 및 재창단이 되면서 역사가 끊겼다. 현재 유니온 베를린의 출발은 1966년 지금의 클럽 이름을 달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유니온 베를린의 존재감이 커진 건, 비상식적으로 체육계에 관여했던 동독 정권의 실책에 있다. 동독 정권이 들어선 후 가장 큰 존재감을 드러낸 클럽은 유니온 베를린이 아닌, 같은 지역을 연고로 한 디나모 베를린이었다. 동독 오베르리가(동독 1부리그)에서 열 차례 우승을 차지한 강호였다. 문제는 그게 온전히 실력의 결과물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에리히 밀케 등 당시 동독의 실권자들은 CSKA 모스크바·파르티잔 베오그라드·스파르타 프라하처럼 이웃 공산국가들이 가지고 있던 수도 연고 명문 축구 클럽을 원했다. 이를 위해 정권 차원에서 부당한 개입을 서슴지 않았다. 동독 내에서 가장 뛰어난 실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되던 디나모 드레스덴의 연고 이전을 추진했으며, 자국 내 우수 선수들을 디나모 베를린에 몰아줬다.

심판을 매수하거나 강하게 압박해 디나모 베를린에게 유리한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공작했으며, 만약 디나모 베를린을 상대로 맹활약을 펼치는 선수들은 정치적 압박까지 당해야 했다. 심지어 디나모 베를린 팬 속에는 슈타지가 심어놓은 ‘프락치’도 있었다. 위 사진 속 작은 동그라미 속의 사람이 바로 슈타지 요원이다. 이를 통해 디나모 베를린은 1979년부터 1988년까지 동독 리그 10연패라는 어마어마한 결과를 달성했다. 동독 비밀 경찰 슈타지의 강압과 공작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같은 동베를린을 연고로 하는 유니온 베를린 처지에서는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물론 정권 차원의 탄압을 우려해 대놓고 말은 못했겠지만 말이다.

동베를린의 설움받는 서자

사실 디나모 베를린의 등장은 유니온 베를린으로서는 굉장히 화나는 일이었다. 동독 내 ‘절대 강자’는 아니었지만, 유니온 베를린은 자생적으로 성장한 팀이라 장기적 측면에서는 장래성이 더 컸던 클럽이었다. 동독 시절 팬층을 다져 평균 관중 2만 명을 달성했다는 기록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동독 정권은 당시 공산국가들이 추구했던 ‘엘리트 체육 정책’에 몰입했고, 이를 통해 정권의 우수함을 증명할 수 있는 수단을 원했다. 디나모 베를린은 선택받은 팀이었고, 본래 동베를린의 주인이 되어야 할 유니온 베를린은 ‘설움 받는 서자’였다.

누가 봐도 명백한 ‘작당’을 통해 연전연승하며 명문의 기틀을 쌓아올리던 디나모 베를린의 성공가도는 유니온 베를린 팬층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동독 시절 동베를린 더비는 독재자의 지지를 받는 수도 클럽과 동베를린의 진정한 민심이 모인 클럽의 충돌이 될 수밖에 없었다. 공산 정권 지지자들이 주류였던, 그리고 지금도 인종차별주의적인데다 폭력적 성향으로 디나모 베를린 팬들은 ‘든든한 배후’를 믿고 유니온 베를린 팬들을 공격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물론 그런 일이 빚어지면 슈타지 등이 적당히 무마해 디나모 베를린 팬들을 보호했다. 유니온 베를린 팬들은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유니온 베를린 팬들은 디나모 베를린 등 뒤에 자리한 동독 정권에 가장 큰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는 클럽이었다. 물론 그만큼 탄압도 받았지만 말이다.

그런 성향 덕에 1990년 통독 후 서베를린을 연고로 하는 헤르타 베를린을 친선 경기를 통해 만났을 때 꽤나 유명한 일화를 남기기도 했다. 스타디움에 집결한 유니온 베를린 팬들이 난데없이 “슈타지 라우스(Stasi Raus, 풀이하자면 슈타지 타도)”라고 외치자, 헤르타 베를린 팬들도 같은 구호를 따라 외쳤다. 장벽 너머에서 악전고투하던 유니온 베를린의 상황을 헤르타 베를린 팬들도 잘 알고 응원을 보내준 것이다.

스스로 당당히 일어서다

어렵고 힘든 길을 걸어오긴 했지만, 슈타지의 비호를 받지 않고 자립해나가려 했던 유니온 베를린의 고집은 옳았다. 통독 이후 디나모 베를린은 시쳇말로 ‘광속’으로 몰락했다. 그들의 뒤를 봐주던 심판과 정권의 비호도 없었고, 재정적인 능력에 있어서도 서독 출신 클럽에 크게 밀리는 탓에 과거 챔피언의 위용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물론 앞서 언급했듯 동독 출신 클럽이 1부리그에 오른 사례가 극히 적다는 점에서, 디나모 베를린뿐만 아니라 모든 동독 출신 클럽들이 이런 힘든 시기를 겪은 것도 맞다. 하지만 더는 불공정한 경쟁은 없었다. 그때부터는 어느 팀이 팬층을 확실히 다졌느냐가 성공의 발판이 될 수밖에 없으며, 팬들의 힘으로 어두운 시기를 견뎌왔던 유니온 베를린이 가장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밖에 없었다.

유니온 베를린은 2000년대 중반 재정 위기에 봉착해 클럽의 문을 닫을 뻔했다. 하지만 동베를린 출신 사업가인 디르크 징글러가 전면에 나서 재정 보증에 나서며 클럽을 구하려 했다. 참고로 징글러는 동독 시절에 꽤나 유명했던 사업가이자 클럽의 지지자였으며, 현재 클럽의 회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징글러뿐만 아니라 수십 년간 결속을 다진 유니온 베를린 팬들이 캠페인을 벌였다.

이른바 ‘Bleed of Union’이라는 캠페인인데, 베를린 내 병원에 헌혈을 한 후 그 병원이 클럽에 후원금을 내는 식으로 클럽 재정에 보탬이 되고자 했다. 이렇게 모인 돈이 까다롭기로 소문 난 분데스리가 클럽 라이센스 획득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그야말로 팬들에게는 유니온 베를린이 자신의 피가 섞인 클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동독 시절 탄압받은 역사에 기인한 반골 기질인지 몰라도 유니온 베를린은 팬과 클럽이 스스로 우뚝 서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현지 팬들의 그러한 모습을 유니온 베를린 홈구장인 슈타디온 안 데르 알텐 푀르스트라이을 찾았을 때 확인할 수 있었다. 한 달 뒤에 예정된 디나모 드레스덴 원정 경기 티켓을 구하기 위해 평일 오전 아침부터 줄을 늘어선 팬들의 모습에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스타디움 앞 광장에 서 있는 동상은 1967-1968 동독 포칼 우승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지금까지 유니온 베를린이 가져온 가장 큰 트로피다. 지금은 사라져버린, 사실 크게 의미를 부여하기 힘든 우승컵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기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디나모 베를린처럼 누군가의 지원 없이 스스로 만들어낸 결과물, 그게 고작 하나 밖에 없는 성과긴 해도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성과이기 때문이다. 낮은 무대에서도 자긍심만은 잃지 않았던 유니온 베를린의 2019-2020시즌 승격은 그래서 특별하다. 먼 길을 돌아왔지만, 그들은 드디어 스스로의 힘으로 최고 무대에 우뚝 일어섰다.

글·사진=김태석 기자(ktsek77@soccerbest1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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