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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석의 유럽 축구 유랑기] #31 한때 체코 최고 명문의 몰락, 이유는?

2019-08-23 오후 12:51:00 김태석

(베스트 일레븐)

보통 축구 여행을 떠날 때 사람들은 동유럽은 잘 찾지 않는다. 유명한 선수와 클럽이 몰려 있는 서유럽에 비해 볼거리가 많지 않다는 이유가 가장 클 것이지만, 동유럽 축구에 대한 왠지 모를 낙후된 이미지 때문에 쉽사리 눈길이 가지 않는 듯하다. 하지만 동유럽 축구는 축구사에서 오랫동안 중요한 축을 담당해왔다. 독일을 벗어나 동쪽으로 끊임없이 발걸음을 옮긴 이유다.

첫 관문이었던 체코의 수도 프라하 하면 많은 이들이 유럽 클럽대항전에 얼굴을 비추는 스파르타 프라하나 슬라비아 프라하를 떠올린다. 이 두 클럽은 체코의 양대 명문으로 손꼽히는데, 사실 프라하에는 이 두 팀 이외에도 보헤미안스와 두클라 프라하라는 또 다른 축이 존재하고 있다. 이중 두클라 프라하는 사람들의 뇌리에 잊힌 강호라 꼭 소개하고 싶었다. 지금은 너무도 남루한 현실을 살아가는 클럽이지만, 한때 유럽 최고 선수까지 배출하며 기세등등했던 적도 있었다.

체코 최초의 발롱도르 수상자를 배출한 최강 클럽

두클라 프라하에 대한 소개부터 먼저 해야 할 듯하다. 지금의 체코가 아닌, 체코슬로바키아가 공산화된 1948년에 창단된 이 클럽은 앞서 언급한 체코 양대 명문 클럽인 스파르타나 슬라비아보다 화려한 과거를 지녔다. 체코슬로바키아 리그에서 열한 차례 우승을 차지했으며, 컵에서도 여덟 번이나 정상에 오른 강호였다. 이 우승 기록은 1990년대 초반까지 체코 리그 최다 우승팀이라는 타이틀을 유지하게끔 했다.

국제무대에서도 꽤나 힘을 썼던 클럽이었다. 1966-1967시즌 유로피언컵(UEFA 챔피언스리그의 전신) 준결승, 1986-1987시즌 UEFA 컵위너스컵 준결승 등 유럽 클럽대항전에서 돌풍을 일으킨 적도 있다. 당연히 수많은 체코슬로바키아 출신 축구 스타들이 이 팀을 요람 삼아 탄생했다. 지금은 유벤투스의 단장으로 유명한 파벨 네드베드의 프로 데뷔팀이 바로 이 두클라 프라하다.

이 두클라 프라하에 관심을 두게 된 가장 큰 이유는 1960년대를 주름잡았던 한 스타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요제프 마소푸스트, 1962년 발롱도르 수상자다. 동유럽 클럽 출신으로는 최초로 유럽 최고의 선수로 공인받은 선수다.

훌륭한 패스 능력과 뛰어난 드리블 실력을 고루 갖춘 당대의 공격형 미드필더였으며, 무엇보다 한 수 앞을 내다보는 지능적 플레이가 굉장히 뛰어났다고 전해진다. 이런 그의 능력은 1962 FIFA 칠레 월드컵에서 체코가 준우승을 거두는 데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했다. 마소푸스트 이외에도 앞서 언급한 네드베드를 비롯한 여러 체코 출신 스타를 배출한 두클라 프라하의 오늘은 어떠할까?

프로축구 경기장이 맞아?

그들의 홈구장인 스타디온 율리스카를 찾았다. 프라하 6지구에 자리한 이 경기장을 찾으러 얼마나 많이 걸었는지 모른다. 주변에는 제법 두클라 프라하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고, 심지어 휴대폰 속 지도에서도 인근에 있다는 점을 확인했는데도 도통 경기장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알고 보니 스타디온 율리스카는 족히 백수십 계단은 되어 보이는 곳을 걸어 올라야 하는 자그마한 산 정상에 있었다. 보통 프로축구 경기장은 접근성이 용이한 곳에 자리하는 법인데, 스타디온 율리스카는 그렇지 않았다. 주변에 제법 주택가가 있긴 해도 이처럼 가기 힘든 곳에 과연 팬들이 찾아갈까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시설도 좋지 않았다. 이처럼 우승 이력이 화려한 팀, 그리고 축구 스타의 산실로 자리한 팀은 다소 몰락했더라도 과거를 최대한 치장해 어필한다. 이를테면 ‘일 그란데 토리노’로 유명한 토리노 FC만 하더라도 지금은 정상과 거리가 먼 팀이지만 자신들의 빛나는 과거를 자랑스레 내놓고 있다. 하지만 두클라 프라하에게는 그런 게 없었다.

스타디온 율리스카 외곽은 마치 군 병영과 같은 딱딱한 느낌이 들었다. 스타디움 앞 작은 광장에 자리한 마소푸스트 동상이 아니었더라면, 외지인들은 이곳에 축구 클럽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 심지어 성적도 나빴다. 2018-2019시즌 체코 감부스리가에서 바닥을 전전하고 있었고, 2019-2020시즌인 지금은 아예 2부로 추락했다. 명문의 기척은 온데간데없는, 굉장히 몰락한 클럽이라는 느낌을 주는 장소가 바로 스타디온 율리스카였다.

몰락한 이유는 어두운 역사

그렇다면 이 클럽이 몰락한 이유는 무엇일까? 1980년대 말 체코를 뒤흔들었던 ‘벨벳 혁명’, 즉 동유럽 혁명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전까지 이 클럽은 체코 정부군의 후원을 받은 팀이었다. 당시 동유럽 공산권 국가에는 정부, 군, 혹은 정보국의 후원을 받아 최강 클럽으로 거듭난 팀들이 상당히 많았다. 동독 슈타지의 전폭적 지원을 받았던 디나모 베를린, 유고슬라비아 인민군의 지원을 받았던 FK 파르티잔 베오그라드가 좋은 사례다. 두클라 프라하도 마찬가지였다. 전국의 우수한 인재들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여 자생하고 있던 스파르타 프라하 등 나머지 클럽들을 압도했다.

하지만 동유럽 혁명의 여파로 체코 공산 정권이 무너졌다. 최대 80만 명에 달하는 민중들이 프라하 바츨라프 광장에 모여 정권 퇴진을 외쳤고, 끝까지 저항하던 공산 정권은 끝내 무력화되고 말았다. 당연히 정권의 비호와 지원을 받고 있던 두클라 프라하에도 타격이 극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시장 경제 체제를 도입한 체코의 각 클럽은 재정적 생존을 위해 자국 내 기업 스폰서 유치에 혈안을 올렸다는데, 당시를 기점으로 최다 우승 기록을 가지고 있던 두클라 프라하는 공산 정권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이유로 기업들이 후원에 나서지 않은 것이다. 더 정확히는 기업들이 공산 정권 시절을 터부시하는 시민들의 눈치를 보고 두클라 프라하 스폰서로 나서지 않았다고 표현함이 옳겠다.

이 여파는 즉각적이었다. 재정 위기에 시달리던 두클라 프라하는 1993-1994시즌 2부리그로 강등을 당하더니, 이듬해 3부리그까지 추락했다. 그리고 1996년에 재정 악화를 견디지 못하고 파산, FK 프리브람이라는 클럽에 흡수 합병당하며 문을 닫았다. 최강을 자처하던 팀이 2부리그 강등 시점부터 단 3년 만에 추락을 거듭하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두클라 프라하는 역사적 정체성에서 다소 모호함을 가진 팀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클럽을 흡수합병한 FK 프리브람 내부에서 빚어진 논쟁에 따라 갈라져 나온 유스 팀과 두클라 프라하에 가려 조명받지 못하던 같은 연고지 클럽이던 두클라 데이비체가 다시 합쳐져 만들어진 팀이 지금의 두클라 프라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후계자 논쟁이 있다. 법적으로 정당하게 흡수 합병한 FK 프리브람이 적통이라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과거 명가의 근거지에서 새롭게 재탄생한 지금의 두클라 프라하가 후계자라는 주장도 있다. 어느 쪽이든 이건 확실하다. 한때 체코 최고 명가였던 이 팀은 그저 이름만 남았을 뿐, 형체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찢겨졌다는 점이다.

글·사진=김태석 기자(ktsek77@soccerbest1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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