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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석의 유럽 축구 유랑기] #32 체코 대표 더비 ‘프라하 S’와 반유대주의

2019-09-25 오후 12:18:00 김태석

(베스트 일레븐=프라하/체코)

체코 수도 프라하는 아름다운 풍경으로 한국 팬들에게 굉장히 유명한 도시다. 직접 찾아보니 과연 죽기 전에 꼭 한 번 찾아봐야 할 도시 중 하나라는 말이 허언이 아니었다. 체코를 대표하는 위인 중 하나인 얀 후스 동상이 자리한 프라하 구도심 프라하 광장에 수많은 인파에 꽤나 진땀 빼긴 했지만 카메라에 담은 도시의 풍경은 가히 절경이었다. 그런데 프라하를 찾은 건 이런 이유 때문은 아니다.

체코를 대표하는 더비 ‘프라하 S’

결국 또 축구 때문이었다. 그 아름다운 프라하에서 왜 또 축구냐라고 할 수 있겠지만, 사실 프라하는 적어도 동유럽에서는 손꼽히는 ‘축구 도시’로 꼽힌다는 점을 알리고 싶다. 2019-2020시즌을 기준으로 소위 프라하 4대 명문 클럽이 자리하고 있다. 스파르타 프라하·슬라비아 프라하가 양강 구도를 이루고 있으며, 지난 편에서 소개한 ‘몰락 명가’ 두클라 프라하, 그리고 녹색 팀 컬러가 꽤나 인상적인 보헤미안스가 프라하 4대 명문 클럽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중 가장 유명한 클럽은 역시 스파르타 프라하일 것이다. ‘필스너의 고향’ 플젠을 연고로 하는 빅토리아 플젠이 최근 신흥 강자가 득세하고 있지만, 수십 년간 체코를 대표하는 클럽으로서 유럽 클럽대항전에 자주 얼굴을 비친 클럽이라는 상징성을 갖고 있는 클럽이다. 그 스파르타 프라하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라이벌이 바로 슬라비아 프라하다. 2019-2020 UEFA 챔피언스리그 32강 본선에 도전하고 있는 이 팀은 스파르타 프라하와 더불어 체코 감부스리가의 지배자로 오랫동안 군림해왔다.

이 두 팀의 라이벌전은 체코를 대표하는 더비다. 보통 프라하 더비로 불리지만, 올드펌처럼 ‘프라하 S’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프라하 S는 스파르타와 슬라비아의 첫 글자인 S를 따서 만든 라이벌전의 이름이다. 그런데 이 프라하 S는 유럽 역사를 어지럽힌 나쁜 이념과 얽혀 있다. 홀로코스트의 이념적 발판이 됐던 반유대주의다.

스파르타의 홈에 적힌 S.K.S

프라하 구도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스파르타 프라하의 홈 제너럴리 스타디움을 찾았다. 일국을 대표하는 명문 클럽이라 꽤나 큰 규모의 안방을 가지고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2만석 규모의 크지 않은 경기장이었고, 그마저도 서유럽 빅 클럽의 홈과 비교하면 초라하다. 대신 스파르타 프라하 팬들이 경기장 주변 곳곳에 장식해놓은 그래패티가 꽤나 볼 만하니 현장을 찾는 축구팬들에게 추천한다.

그런데 그래피티가 아닌 어느 낙서에 시선이 꽂혔다. 유대인을 상징하는 육망성에 SKS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는 것이다. 육망성은 슬라비아 프라하가 토트넘 홋스퍼·아약스 암스테르담처럼 유대인 클럽을 표방한다는 뜻을 의미하며, SKS는 슬라비아 프라하의 풀 네임인 ‘SKS 슬라비아 프라하’의 이니셜을 따온 것이다.

1892년 창단한 슬라비아 프라하는 자산가의 지원 속에 성장한 팀이었다. 반면 스파르타 프라하는 뿌리부터 노동자들의 팀이다. 이런 계층간 갈등이 축구를 통해 발현된 라이벌 관계는 유럽 전역에서 손쉽게 살필 수 있어 색다르진 않았다.

이들의 라이벌리를 격화시킨 건 유대인들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다. 두 팀의 관계에 유대주의 문제가 끼어든 건 1920년대부터라고 한다. 1920년대 체코를 비롯한 중부 유럽의 자산가층은 주로 유대인들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유대인 색채가 슬라비아 프라하에 스며들어서다. 게다가 당시 체코를 뒤흔든 보험사기 사건이 있었다는데, 이때 유대인 자본이 낀 보험사에 대한 노동자들의 분노가 매우 컸다고 한다. 이 때문에 스파르타 프라하 팬들은 슬라비아 프라하를 단순히 ‘부자들의 클럽’이 아니라 ‘유대인 부자들의 클럽’으로 규정한다. 질 낮고 돈만 밝히는 속물이라는 얘기다.

슬라비아 프라하의 홈 에덴 아레나 주변에도 이와 비슷한 성향의 낙서가 새겨져 있다. 바로 ‘JUDE SLAVIA’, 스파르타 프라하 팬들이 슬라비아 프라하 팬들을 얕잡아볼 때 쓰는 말이다. 유대인을 뜻하는 JUDE에는 모욕의 뜻을 담은 선을 그어 더욱 명확하게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스파르타 프라하 팬들이 슬라비아 프라하를 모욕하기 위해 부르는 노래의 제목 역시 ‘JUDE SLAVIA’다. 이 노래는 무려 1920년대부터 울려 퍼졌다고 하니, 질 나쁜 응원가치고는 그 역사가 정말 유구하다.

프라하의 유대인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

체코는 폴란드와 더불어 나치 독일에 가장 먼저 병탄당한 국가다. 또한 폴란드와 마찬가지로 유럽에서 유대인들이 가장 많이 살던 나라 중 하나였다. 홀로코스트 때 프라하에서만 5만 여명의 유대인들이 수용소에 끌려가 죽거나 고초를 겪어야 했다고 한다. 나치 독일, 홀로코스트, 그리고 반유대주의는 역사적인 아픔 때문에 감히 언급해서는 안 될 이슈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코에서는 현재진행형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스파르타 프라하 팬들은 슬라비아 프라하를 싫어하다 유대인마저 증오하게 된 정체성을 가지게 됐다. 2015년 CSKA 모스크바와 맞대결에서 나치 독일식 경례를 하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2007년 스파르타 프라하 주장이었던 파벨 호르바스는 반유대주의적 구호를 외치던 팬들에 동조한다는 의미에서 파시스트 경례를 하다 징계를 받기도 했다. 2017-2018시즌부터 스파르타 프라하에서 활약하고 있는 이스라엘 국가대표 공격수 탈 벤 하임(註: 과거 첼시에서 뛰었던 이스라엘 수비수와 동명이인)이 팀에 입단했을 때도 반유대주의 구호가 나오기도 했다.

스파르타 프라하 팬들은 단지 짓궂은 방식이었을 뿐 탈 벤 하임의 입단을 환영한다는 의미에서 이런 퍼포먼스를 했다고 하지만, 이 주장을 순순히 받아들일 이는 없다. 스파르타 프라하 클럽 차원에서는 성명까지 내며 이러한 행위에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긴 하다. 진정한 스파르타 프라하 팬들은 유대인에 관한 어떠한 의견도 내놓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내놓았으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체코 언론들도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 체코 매체 <이로즐라스>는 지난해 11월 스파르타 프라하 팬들이 슬라비아 프라하전에서 부르는 ‘JUDE SLAVIA’를 두고 미치광이의 목구멍에서 나오는 외침이라고 규정했다. <이로즐라스>는 “JUDE는 체코어가 아닌 독일어인데다, 이런 식으로 육망성 낙인이 찍힌 체코 유대인들이 강제 수용소로 가야 했다”라며 역사적 사실까지 짚어 그릇된 행동임을 강조했다.

축구계에서는 필드 위에서는 종교·인종 등 어떠한 차별도 없어야 한다는 게 이제 상식으로 자리하고 있다. 체코도 그런 흐름에 함께 하고 있다. 하지만 유럽 사회에 오래도록 뿌리를 내린 반유대주의는 쉽사리 걷어내지 못하고 있다. 의식 있는 이들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잘못된 사상에 경도된 사람들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글·사진=김태석 기자(ktsek77@soccerbest1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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