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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베스트일레븐
  • 국내
  • 입력 2020.03.31 13:08
  • 수정 2020.03.31 13:17

[K리그 타임머신 ㉑ 2003년] 리그 3연패 ‘레알 성남’, 그러나…

(베스트 일레븐)

한창 뜨거워야 할 피치가 아직 차갑게 식어 있다. 코로나19가 이 땅의 모든 축구를 식힌 탓이다. 덩달아 우리들의 가슴도 달궈지지 않아 서늘하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언제고 다시 뜨거워질 K리그를 기다리며, 과거 이 전한 기사와 함께 지난 37번의 시즌을 돌아봤다. 큰 이슈부터 작은 기록까지 가능하면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고, 당시의 생생함을 전달하기 위해 잡지에 실린 내용을 그대로 사진으로 옮겼다. 아직 숨죽이고 있는 K리그를 기다리는 데 ‘K리그 타임머신’이 작은 보탬이 됐으면 싶다. / 편집자 주

2002 FIFA 한·일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이 4강 신화를 썼던 이듬해, 2003 삼성 하우젠 K-리그는 어느 때보다 큰 기대감 속에 출발했다. 세계 강호들 틈바구니에서 한국 축구의 위력과 위상을 확인했으니, 이제 한국 프로 축구계에도 진정한 르네상스가 불어올 거라는 기대감이었다.

그 기대감에 발맞춰 신생 클럽들도 태어났다. 실업에서 프로로 전환한 광주 상무 불사조와 한국 최초의 시민 구단 대구 FC였다. 두 팀이 가세함으로써 리그는 이제 12개 팀이 참여하는 형태로 몸집이 제법 불어났다. 12개 팀이면 현재의 K리그1과 동일한 규모다.

또 다른 긍정적 변화도 있었다. 당시 프로 축구는 워낙 많은 대회가 난립하는 형태였는데, 2003년부터는 리그컵과 슈퍼컵이 깔끔하게 폐지되고 오롯이 리그 하나로만 시즌이 운영됐다. 2003년 3월 23일부터 11월 16일까지, 삼성 하우젠 K-리그 하나만으로 시즌이 돌아간 거다. 권위가 낮았던 대회를 삭제하고, 핵심 리그의 중요성을 더욱 부각하는 ‘의미 있는’ 변화였다.

2003시즌을 앞두고 눈여겨볼 점 또 하나는, ‘대어급 신인’들이 두루 리그에 합류했다는 점이다. 그저 이름만 나열했을 뿐인데도 놀라움이 느껴질 정도다. 정조국·신영록·김진규·백지훈·김정우·이호·유경렬·정성룡·오범석·황진성·정경호·곽희주 등 훗날 각 팀의 스타플레이어로 성장하는 이들이 모두 2003년부터 K-리그에 몸을 담았다.

앞서 언급했듯, 총 12팀이 되었으니 리그의 라운드는 ‘44’까지 늘어났다. 각 팀 당 네 번씩 격돌하는 방식으로 모든 클럽들이 각축전을 벌였다. 덕분에 각 클럽의 팬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양껏 리그 경기를 감상할 수 있었다.

주인공부터 말하자면, 2003 삼성 하우젠 K-리그는 성남 일화 천마(現 성남 FC)의 ‘독주’였다. 김도훈·신태용·데니스·김현수 등 당대 A급 선수들이 모두 운집한 성남 일화 천마는 시즌 초반부터 1위 자리를 놓치지 않고, 그 기세를 마지막까지 쭉 이어가며 조기에 우승을 확정했다. 44경기를 치른 성남 일화 천마의 승점은 91(27승 10무 7패), 2위 울산 현대 호랑이의 승점 73과 거의 20점 차이가 나는 압도적 챔피언이었다. 2003년의 성남 일화 천마는 K리그 역사상 ‘가장 강한 팀’ 중 하나로 기억된다.

성남 일화 천마는 2003년 우승을 차지하면서 또 한 번 ‘리그 3연패’를 달성했다. 1993·1994·1995시즌에 이어 2001·2002·2003시즌을 내리 휩쓴 것이다. 그래서 당시 은 ‘한국판 레알 마드리드’라는 수식어를 성남 일화 천마에 부여했다. 그래도 될 만큼 대업적을 세운 ‘레알 성남’이었다. 요즘으로 치면 ‘리그 1강’ 전북 현대 모터스의 아우라와 동일했다고 보면 된다.

성남 일화 천마의 아이콘이자 전설이었던 신태용은 2003년 개인적으로 기념비적 기록을 수립하기도 했다. K리그 최초로 60-60 클럽에 가입하며 자신의 다재다능함을 마음껏 자랑했다. 선수로서는 이미 황혼기에 접어들었지만, 그의 기량은 황혼기가 아닌 전성기의 그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흔들림이 없었다. 33세의 노장이 38경기에 출전해 8골 7도움을 기록한다는 것, 지금 생각해도 대단한 일이다.

한편 성남 일화 천마 말고 주목해 볼 만한 또 다른 팀이 있다면 대전 시티즌이었다. 대전 시티즌의 시즌 최종 순위는 6위였지만, 연예인 뺨치는 외모를 지닌 스타플레이어 이관우를 앞세워 한때 리그 상위권에 진입할 만큼 맹렬한 기세를 뿜어내기도 했다. 덕분에 팀은 그해 홈경기 22번에서 419,794명이라는 엄청난 수의 관중몰이에 성공했고, 평균 관중은 19,082명으로 집계됐다. 숫자로 보나, 분위기로 보나, 2003시즌 K리그 최고의 인기 팀은 분명 대전 시티즌이었다. 대전 시티즌에 지금까지도 ‘축구특별시’라는 별칭이 따라붙는 이유다.

그러나 2003시즌 프로 축구에 불어 닥친 바람은 마냥 따뜻하진 않았다. 2002 월드컵 이듬해였음에도 불구하고, 평균 관중은 오히려 줄어들고 말았다. 광주 상무 불사조와 대구 FC가 생겨난 덕에 총 관중은 늘었지만, 평균 관중은 2002년 14,366명에 비해 2003년 9,064명으로 뚝 떨어졌다. 아쉬운, 너무나 아쉬운 결과였다. 물이 들어올 때 제대로 노를 젓지 못한 듯했다. 초대형 스타 안정환과 함께할 땐 리그 흥행을 주도했던 부산 아이콘스(現 부산 아이파크)는 2003년 평균 관중 2,753명이라는 저조한 수치를 남기며 고개를 숙여야 했다.

그래서 2003시즌이 끝난 뒤, 축구계 이곳저곳에서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았다. 2003년 12월 호에서는 “난맥상을 풀어라”라는 외침과 함께, 2003 삼성 하우젠 K-리그가 “괄목할 만한 소득은 없었다”라고 냉평했다. 참가팀이 두 곳 늘어난 것 외엔 딱히 발전한 지점이 없었다는 이유에서였다. 뜻밖에도 월드컵 훈풍을 잇지 못한 K리그는 그제서야 리그 발전과 모객을 위한 본질적이고 심도 있는 고민을 시작하게 된다.

득점왕 경쟁은 마지막까지 치열했다. 성남 일화 천마의 김도훈, 울산 현대 호랑이의 도도, 전북 현대 모터스의 마그노가 끝까지 경합했다. 승자는 김도훈이었다. 김도훈은 도합 28골을 넣으며 27골에 머물렀던 도도와 마그노를 한 끗 차로 제압하고 시즌 탑 스코어러가 됐다. 도도와 마그노는 한때 브라질 국가대표팀에 뽑힌 적이 있을 정도로 걸출한 공격수들이었는데, 그런 모두를 전성기의 김도훈이 넘어선 것이다.

챔프가 성남 일화 천마였던 만큼, 개인상과 베스트 11 부문에서도 대부분 성남 일화 천마의 이름이 보였다. 김도훈은 득점왕에 이어 MVP까지 거머쥐었고, 자연스럽게 리그 베스트 11에도 이름을 올렸다. 감독상은 역시나 故 차경복 감독에게 돌아갔고, 차 감독은 과거 일화 천마(現 성남 FC)의 박종환 감독이 그랬듯 감독상 3연패에 성공했다. 이밖에도 도움왕은 전북 현대 모터스의 에드밀손, 신인상은 안양 LG 치타스(現 FC 서울)에서 시즌 내내 대범한 플레이를 펼친 정조국이 거머쥐었다.

베스트 11에 성남 일화 천마를 제외하면, 대전 시티즌의 이관우, 전남 드래곤즈의 김남일과 김태영, 전북 현대 모터스의 최진철, 포항 스틸러스의 산토스. 울산 현대 호랑이의 서동명이 눈에 띈다.

글=조남기 기자(jonamu@soccerbest11.co.kr)
사진=베스트 일레븐 DB
그래픽=박꽃송이·김주희(www.bestelev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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