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일레븐=울산)

▲ 피치 피플

홍명보 
울산 현대 감독

4강 신화를 연출한 2002 FIFA 한·일 월드컵이 20주년을 맞았다. 한국 축구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업적에 대한 여러 조명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당시 팀의 핵심이었던 이들의 회고를 통해 다시금 20년 전 월드컵을 기억하는 이들이 그때의 뜨거웠던 순간을 되새기고 있다. <베스트 일레븐> 역시 2022년 6월호를 통해 거스 히딩크 감독을 비롯해 당시 캡틴이었던 홍명보 현 울산 현대 감독, 에이스였던 안정환 MBC 해설위원, 신예로서 두각을 나타냈던 박지성 현 전북 현대 어드바이저의 이야기를 담았다.

하지만 지면이라는 한정적인 여건 탓에, <베스트 일레븐>은 전설들의 영웅담을 독자들에게 모두 전하지 못해 아쉬웠다. 특히 위대한 주장이었던 홍명보 울산 감독의 회고가 그랬다. 1시간이 넘는 꽤 긴 인터뷰를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월드컵을 앞둔 백전노장의 간절한 마음, 당시 언론에 의해 잘못 전해진 비하인드 스토리, 그리고 이 월드컵이 한국 축구와 자신의 축구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한 의미 부여 등 여러 이야기를 쏟아냈다. 20년 전 이 땅을 뜨겁게 달아오르게 했던 신화를 추억함에 있어 분명 큰 도움이 될 기억들이었다. 하여 그의 한·일 월드컵에 관련한 인터뷰를 여러 편에 걸쳐 소개한다. 

- ②편에서

Q. 돌이켜 보면 동화 같은 얘기였습니다. 어찌 보면 게임 같기도 했다. 폴란드,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 등 가면 갈수록 강적이 나타났는데 그걸 깨뜨리고 계속 올라갔기 때문이다. 우리가 더 해낼 수 있다는 ‘촉’이 있었을 듯한데
“역시 16강 진출 후죠. 16강 진출 이후부터는 솔직히 부담이 없었어요. 이미 우리가 정했던 목표를 달성한 후였고, 이제부터는 어떻게 보면 ‘보너스 게임’이었으니까요. 그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우리 팀을 보며 즐거웠겠어요. 16강에 진출한 상태지, 대회를 앞두고 훈련을 많이 한 덕에 체력적으로도 여유가 있지, 게다가 홈이었지 우리에게는 더 좋을 수 없는 상황이었죠.”

Q. 16강 이탈리아전이 킥오프하기 직전, 일본이 터키에 0-1로 패해 16강에서 탈락했다. 아무리 좋은 성적을 내도 일본보다 못하면 안 된다는 분위기가 있기도 했다. 그 경기 결과가 신경이 쓰였을 듯한데
“일본의 탈락 소식이 우리에게 도움이 됐죠. 아무래도 늘 일본과 비교를 당하니까요. 경기 직전 히딩크 감독님께서 선수들을 불러 모아 멘탈을 다잡아주셨어요. ‘우리 상대는 일본이 아니며, 우리는 우리의 것들을 해야 한다’라는 미팅을 했습니다.”

Q. 이탈리아전 도중 차두리와 교체되어 나갔다. 0-1로 끌려가던 시점이라 그 경기가 마지막 월드컵 경기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을 듯한데
“일단 멤버 교체당하면 선수들은 별로 기분이 좋지 않죠. 게다가 교체된 경험도 많지도 않고요. 솔직히 제가 교체되는지 몰랐어요. 그래도 다른 선수가 들어가서 득점할 수 있다면 하는 생각에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우리가 진다고 생각해보지도 않았고요. 그래서 빨리 나가서 새로운 선수가 들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지, 나의 마지막 경기가 될 거라 생각하진 않았어요.”

Q. 그래도 좋은 기회가 온 만큼 더 뛰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을 텐데
“아니요. 정말 충분했어요. 제가 16경기를 뛰었죠. 이탈리아전이 열세 번째 경기였는데, 그정도면 만족합니다.”

“20년 지났는데도 불만? 그들의 시선이 불편하다”

Q. 이탈리아나 스페인에서는 20년이 되도록 당시 판정 얘기를 하고 있다. 화가 날 법도 한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우리가 홈팀이라 다른 사람들이 ‘너희들 너무 잘 봐주는 게 아니냐’라고 의혹을 가지는 거 같습니다. 그건 어느 대회든 다 있는 심리죠. 그런데 그날 이탈리아 선수들은 정말 거칠었어요. 제가 이탈리아전에서 주심에게 적극 항의했던 이유고요. 그때 프란체스코 토티가 두 번째 옐로카드를 받고 퇴장당했는데, 첫 옐로 카드 때 제가 나와서 어필했습니다. 옐로카드를 받을 수 있는 파울이라고 생각했거든요.

“ 그래서 그들이 이렇게 의혹을 제기하는 게 별로 기분이 좋진 않았습니다. 우리도 그 대회를 얼마나 열심히 준비했는데, 그들이 그런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에 대해 조금 불편하기도 합니다.”

Q. 준결승 독일전 때 여기서 이기면 월드컵 결승에 갈 수도 있다는 기대감도 컸을 듯한데
“일단 그때 우리 선수들이 정말 힘들었어요. 독일전이 여섯 번째 경기였는데, 월드컵 본선에서 한꺼번에 여섯 경기를 치러본 선수는 그 누구도 없었어요. 늘 세 경기만 치르고 되돌아와야 했으니까요. 그래도 준결승까지 왔으니 욕심이 났습니다. 감독님께서 ‘세계를 놀라게 하겠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마음을 우리도 가지고 있었거든요.”

“이 경기만 이긴다면, 월드컵 결승을 갈 수 있다고 기대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한국 축구가 월드컵 결승에 갈 수 있다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요? 하지만 독일전 전후로 우리 선수들이 정말 힘들어했습니다. 너무 많이 다쳤습니다.”

“2002년 4강 신화 멤버들, 책임감 느껴야 한다”

Q. 멋지게 국가대표 커리어를 마무리했습니다. 박수받고 대표팀을 떠나는 선수가 됐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저와 (황)선홍이는 30대 중반이었죠. 어떻게 보면 그 자리에 낄 수 없는 연령대이기도 했는데, 마지막을 아주 영광스럽게 마치고 떠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제게 큰 교훈이 된 대회기도 했습니다. 왜 제가 축구를 통해 사회나 주변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이유를 알게 해준 대회였거든요. 과연 그 정도의 성원을 한 몸에 받고 경기하는 선수가 몇이나 있을까요? 이런 측면에서 2002년 멤버들은 정말 커다란 영광을 누린 겁니다.”

“그래서 그 시절을 떠올리면 자연스레 겸손해지기도 합니다. 저 같은 경우는 특히 그랬죠. 열 번째 월드컵 경기에서 1승을 했으니 말이죠. 그래서 대회 이후 좀 더 주변을 돌아보게 됐습니다. 개인적으로 장학 재단을 만들었던 것도 그래서였습니다. 감사하게 됐고, 겸손해야 한다는 것도 깨달은 대회가 바로 2002년 월드컵이었습니다.”

Q. 마지막으로 2002년 월드컵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말한다면?
“우리 축구는 2002년 전후로 나뉘게 됐습니다. 그런데 우리 2002년이라는 아름다운 추억을 소중하게 간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래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소중하게 간직하되 미래를 위해 더욱 노력하고 발전해야 한다고 봐요. 2002년 멤버들은 이런 측면에서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고 봅니다.”

“훗날 우리만큼 성적을 낼 수 있는 세대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만큼 해낼 수 있도록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고 봅니다. 돌이켜 보면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성과라 정말 꿈만 같던 시간을 지나온 것 같은데, 그것만 품에 안고 있기에는 요즘 시대는 정말 빨리 흘러가죠. 우리 한국 축구도 발전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글·사진=김태석 기자(ktsek77@soccerbest1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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