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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베스트일레븐
  • 국내
  • 입력 2015.06.05 15:09
  • 수정 2015.06.05 16:29

[여자 월드컵 개막] FIFA 여자 월드컵 역사를 쫓다 上

(베스트 일레븐)

축구는 남자의 스포츠라고 한다. 격렬한 부딪침이 숨 막힐 정도로 이어지는 특성상, 분명 축구는 마초적 이미지를 가득 품고 있다. 그렇다면 여성은? 축구계가 바라보는 여성은 그저 관중석의 들러리였다. 응원하는 팀이 승리하면 환호하는 이미지가 오랫동안 축구계에 자리 잡았다. 그런데 이게 다 그릇된 편견이 만든 모순적 분위기라는 걸 아는가? 똑같이 손발을 쓰는 여성이 축구를 즐기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1921년 FA(잉글랜드축구협회)는 “축구는 여성의 신체로는 할 수 없을뿐더러 유해하다”라는 얼토당토않은 주장을 근거로 여자들이 경기를 벌일 수 없도록 규정까지 만들어 제재를 가했다. 지금 시각에서는 황당무계한 일이다. 여자 축구 역사는 이런 편견과 벌인 싸움으로 점철되어 있다. 지금 각 대회별로 소개할 여자 월드컵 역사의 시작 역시 그만큼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1986년 거친 마초들의 무대에 온 한 노르웨이 여성이 왜 남성처럼 축구를 즐길 수 없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당연한 목소리가 그때만 해도 생각지 못한 대회를 만들었다. 바로 FIFA(국제축구연맹) 여자 월드컵이다.

서막이 오른 축구 여제들의 전쟁

축구는 마초적 이미지가 강한 스포츠다. 남성들만 하는 스포츠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하지만 축구는 본디 여성에게도 문호를 열었던 종목이다. 단지 남자 축구처럼 리그나 대회가 체계화된 시점이 늦었을 뿐이다. 1960년대에는 유럽 각지에서 여성 축구팀이 서서히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1970년에는 프랑스와 네덜란드가 사상 최초로 여자 축구 A매치를 벌이면서 세계화 단초가 되었다. 1980년대부터는 전 세계에서 여성들이 즐기는 종목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극소수만 즐기는 동호인 체육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었는데, 1986 멕시코 월드컵 당시 FIFA 총회가 선입견에서 벗어나는 중요한 걸음을 뗐다.

노르웨이를 대표해 총회에 참석한 엘렌 뷔레라는 인물이 “인류의 절반은 여성이므로 FIFA는 남성과 마찬가지 조건으로 축구를 개방해야 한다”라며 하계 올림픽에 여자 축구를 정식 종목으로 채택함은 물론 여자 월드컵도 만들자고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뷔레의 이 한마디가 이전에는 없던 전 세계 여자 축구 제전을 만들었다. 주앙 아벨랑지 당시 FIFA 회장은 여자 축구 활성화를 위해 곧장 여자 월드컵을 기획하도록 지시했고, 1988년 중국에서 시범 대회를 열면서 성공 가능성을 봤다. 원년인 1991년 중국에서 여자 월드컵이 전 세계 축구팬에게 선보인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중국 여자 월드컵은 미국을 위한, 미국에 의한, 미국의 대회였다고 해도 무방하다. 미국은 ‘트라이앵글 에지 소드(Triangle Edge Sword)’라 불린, 남녀 축구를 통틀어 가장 환상적 호흡을 과시한 조합이라고 평가받는 카린 제닝스·미셸 에이커스·에이프릴 하인리히를 앞세워 시쳇말로 박살 냈다고 말할 수 있을 만치 상대를 무자비하게 꺾었다. 이 세 선수가 기록한 득점만 무려 18골이다. 특히 에이커스는 8강 대만전에서 터뜨린 5골을 비롯해 총 10골을 기록해 대회 득점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유일한 라이벌이자 대회 창설에 크게 기여한 노르웨이를 상대한 결승전에서 고전하긴 했어도 에이커스의 활약에 힘입어 승리했다.

미국은 대회에서 치른 여섯 경기를 전승으로 장식하며 초대 챔피언에 오르는 기쁨을 맛봤다. 미국 여자 축구가 남자 축구의 브라질 같은 위상을 세울 수 있었던 대회가 바로 이 중국 여자 월드컵이다.

축구 본향에 온 여자 월드컵

중국 여자 월드컵서 2만 명에 육박한 평균 관중을 보고 여자 월드컵의 상업적 가치를 확인한 FIFA는 축구 산업이 가장 발달한 유럽에서도 여자 월드컵이 인기를 끌 수 있을지를 실험했다. 오래전부터 여자 축구 리그가 체계화된 여자 축구 선진국 스웨덴이 두 번째 개최국으로 선정된 배경이기도 하다. 스웨덴은 1958 월드컵 이후 처음으로 유치하는 FIFA 주관 대회였다는 점에서 대단히 공들였는데, 결과적으로 흥행적 면에서 엄청난 참패를 맛봤다.

경기 내용은 참가 팀 간 실력 차가 워낙 컸던 원년 대회에 비해 나았다. 여전히 미국·노르웨이 같은 강호들은 압도적 점수 차를 내며 승리하긴 했어도 이전 대회에 비해 제법 적은 스코어 차로 진행되는 격전이 펼쳐져, 재미는 훨씬 더 나았다는 평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대회 총 관중은 불과 11만 2,313명에 불과했다. 무려 51만 관중을 동원한 중국 대회의 약 1/5 수준이었고, 평균 관중은 5,000명을 넘기지 못했다. 물론 스웨덴이 중국처럼 많은 인구를 가진 국가가 아님을 감안해야 한다.

그러나 축구팬들의 관심이 극히 미미했다. 여자 축구가 활성화됐다는 스웨덴에서도 여자 축구는 비인기 종목에 불과했고, 남자 축구 월드컵처럼 전 세계에서 축구팬이 몰려드는 빅 이벤트가 아니다 보니 흥행 참패를 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 스웨덴 여자 월드컵은 여자 축구가 남성적 성향을 가득 품은 축구계에서 비주류임을 확인시켜 준 대회라 할 수 있다.

경기력적 면에서 접근할 때, 이 대회는 중국 대회서 미국에 짓밟혔던 노르웨이를 비롯한 유럽 여자 축구가 자존심을 회복했다고 마름질할 수 있다. 미국과 더불어 양강으로 꼽히던 노르웨이가 지난 대회에서 경쟁자가 보인 압도적 경기력을 뛰어넘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조별 라운드 세 경기에서 무려 17골을 터뜨리며 전승을 기록했고, 덴마크·미국·독일을 상대했던 토너먼트에서도 연거푸 승리를 따내며 6전 전승 23득점 1실점이라는 놀라운 성적으로 정상에 올랐다.

특히 준결승 미국전에서는 노르웨이 선수들의 투지가 실로 남달랐다. 미국이 자랑하는 세 개의 명검과 맞붙어도 밀리지 않는다는 안-크리스틴 오뢰네스·헬예 리세 투 톱을 앞세워 일진일퇴 공방을 벌였고, 전반 10분에 터진 오뢰네스의 선제골을 끝까지 잘 지켜 승리를 따냈다. 전 대회 결승전 패배를 설욕하는 승리였다. 여세를 몰아 신흥 강국으로 부상하던 독일마저 2-0으로 완파하고 2대 챔피언에 등극했다.

대회 2연패를 노렸던 미국은 간판 에이커스가 부상으로 빠진 공백을 극복하지 못하고 라이벌에 무기력하게 패하고 말았다.

여자 축구 열풍, 미국을 뒤흔들다

스웨덴 대회가 혹독한 흥행 실패를 맛봤다면, 1999 미국 여자 월드컵은 흥행적으로나 경기력적으로나 역사상 가장 환상적이었다고 기억되는 대회다. 축구 불모지 미국은 1994 월드컵 개최를 계기로 인기가 서서히 불타오르기 시작했고, 남자 축구보다 먼저 세계를 정복한 여자 축구에 대한 관심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홈팬들의 전폭적 응원을 등에 업은 미국은 기대에 부응하듯 노르웨이에 빼앗겼던 우승컵을 되찾아오며 통산 두 번째 정상에 올랐다.

여자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골잡이 중 하나로 거론되는 쑨원을 앞세운 중국과 벌인 결승전은 0의 균형이 끝까지 이어지면서도 손에 땀을 쥘 듯한 공방전을 펼쳐 지금도 대회 역사상 최고의 명승부로 꼽힌다. 승부차기 마지막 키커로 나서 미국의 우승을 확정 지었던 브랜디 체스테인의 세리머니는 여자 월드컵을 소개함에 있어 반드시 소개되는 명장면으로 회자되고 있다.

글=김태석 기자(ktsek77@soccerbest11.co.kr)
사진=FIFA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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