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 기자명 베스트일레븐
  • 국내
  • 입력 2021.04.26 11:05
  • 수정 2021.04.26 11:06

‘급발진’ 페레즈 감독과 전경준 감독, 무슨 일이 있었나?

(베스트 일레븐=부산)

히카르도 페레즈 부산 아이파크 감독은 24일 저녁 6시 30분 부산 구덕운동장에서 벌어진 하나원큐 K리그2 2021 8라운드 전남 드래곤즈전에서 0-1로 패한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요새 누리꾼들 말로 ‘급발진’했다.

“(한동안 침묵한 후…) 오늘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한다. 우리는 서로 희생하면서 전체적으로 경기를 지배할 수 있었다. 리그에서 2위를 달리고 있는 팀은 전반전에 열한 명 모두가 수비에 치중했고, 우리는 전술 변화를 꾀해 공격적인 축구를 해 골문 앞에서 찬스를 많이 만들었다. 우리는 상대보다 더 좋은 경기를 했다. 상대는 2위인 팀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찬스를 만들지 못했다.더 할 말이 없다.”

“상대의 전술을 언제나 존중한다. 상대가 수비적이든 공격적이든 그건 그들의 전술이고, 우리 역시 우리의 전술을 수립한다. 난 그저 느낀 부분을 함께 나누려는 것일 뿐이지, 경기가 끝난 후 누군가에게 죄를 묻거나 비판하려는 게 아니다. 그리고 상대 전술 때문이라는 핑계를 대고 싶지 않다. 다만 우리가 더 좋은 경기를 했다. 우리가 공격할 때 어려움이 있었던 건 맞다. 열한 명의 선수가 수비했던 상대를 공략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그런 상황을 극복하고, 전술 변화를 통해 후반전에 더 좋은 모습을 보였다. 상대를 존중하지만, 상대 전술 때문에 졌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페레즈 감독은 수비에 치중했던 전남의 경기 운영에 관해 거론하고 나선 것이다. 이후 주어진 “‘안티 풋볼’을 지적하는 것이냐”라는 말에는 “공격적이든 수비적이든 존중한다”라고 한발 빼긴 했다. 하지만, 어찌 됐든 근래 K리그 경기장에서는 접하기 힘든 강도 높은 발언이었다는 점에서 꽤나 인상 깊었다.

아니나 다를까 페레즈 감독의 이 발언은 각종 축구 커뮤니티에서 꽤나 화제가 됐다. 일부 팬들은 경기에 지고 이런 말을 하는 것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물론 팬들의 이런 반응은 당연하다. 비단 페레즈 감독뿐만 아니라 상대의 수비 지향 전술을 거론하며 비판했다가 ‘역풍’을 맞는 케이스를 유럽 축구 소식을 통해서도 접할 수 있다. 한때 ‘안티 풋볼’ 논란에 휩싸였던, 페레즈 감독과 동향 출신인 명장 조제 모리뉴 전 토트넘 감독이 좋은 사례다.

그런데 TV 중계에 나온 장면 혹은 기자회견장에서 쏟아진 페레즈 감독의 이 발언 이면에는 전남의 수비 지향적 전술과는 상관없는 숨겨진 에피소드가 있다. 이 사실을 현장에서 상황을 지켜 본 부산과 전남 관계자들의 증언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사실 양 팀 벤치가 경기 도중 날선 대립을 벌였다. 계기는 후반 32분 이래준의 퇴장 상황 이후였다. 이래준은 하프라인 인근에서 전남의 공격형 미드필더 김현욱을 막으려다 즉시 퇴장을 명령받았다. 볼을 받는 과정에서 터치가 좋지 못해 볼이 길게 튀자, 이를 잡으려고 발을 뻗다 김현욱의 종아리 부근을 걷어차는 모양새였다. 이래준은 볼을 터치했다고 정회수 주심에게 어필했으나, 다소 무리했던 도전이었던 건 맞다. 어쨌든 이래준에게 가격당한 김현욱이 피치 위에 누워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는데, 여기서부터 증언에 따라 사건을 재구성하겠다.

그 모습을 먼발치에서 지켜보고 있던 부산 수비수 발렌티노스가 다가가 김현욱의 상태를 체크하고 일으켜 세우려고 했다. 발렌티노스는 강원 시절 김현욱과 친한 동료였기에 곁에 다가간 것인데, 이 모습을 본 전경준 전남 감독이 발렌티노스에게 “내 선수를 건드리지 마(Don't touch my player)”라고 소리쳤다.

당황한 발렌티노스가 전 감독에게 김현욱과 자신은 친구라며 오해하지 말라고 답했다.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전남 벤치를 향해 답하는 발렌티노스의 모습이 중계 장면에서 살짝 스치듯 지나가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전 감독 처지에서는 거친 태클을 당해 쓰러진 김현욱에게 부산 선수가 다가서려하자 행여 쓸데없는 해꼬지를 당할까 싶어 조금 흥분하며 노파심을 드러낸 것이다. 물론 한창 승부가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었기에 기 싸움 의도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모습을 본 페레즈 감독도 덩달아 폭발했다. 난데없이 발렌티노스에게 화를 내는 전 감독을 향해 “내 선수에게 말하지 마(Don't speak my player)”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페레즈 감독 처지에선 발렌티노스가 상대 감독에게 난데없이 혼쭐이 나는 상황처럼 비쳤기에 이런 반응을 내놓은 것이다.

그러자 전 감독은 페레즈 감독에게 단 두 어절의 영단어로 조용히 하라고 되받아친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확실히 해야 할 건 흔히 생각하는 욕설은 절대 아니니 오해해선 안 된다는 점이다. 그저 조용히 하라는 뜻이 명확히 담긴 영어 표현이다. 어쨌든 페레즈 감독은 그 말을 접한 후 전 감독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분노했다.

이후 후반 43분 발로텔리의 득점으로 전남이 승리했다. 양 팀 벤치는 경기 후 주먹 인사를 교환했는데, 페레즈 감독이 살짝 아프게 전남 코칭스태프의 주먹을 치며 자신의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전했다고 한다. 정리하자면 두 팀 감독 모두 자신의 선수를 보호하기 위해 살벌한 기 싸움을 벌인 것이며, 수비 축구 논란은 페레즈 감독의 속을 끓이긴 했어도 사건의 본질이 아닌 것이다.

선수간 충돌은 피치 위에서 벌어지며, 중계 카메라가 잡고 있어 팬들이 쉽게 접할 수 있다. 온통 세간의 관심이 피치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반면 벤치간 감정 싸움은 직접적인 충돌이 없다면 조명되기 힘들다. 이는 현장을 찾은 관중이나 취재진도 쉽게 파악하기 힘들다. TV로 경기를 지켜 본 이들은 더욱 알기 힘들다.

그렇지만, 이처럼 전쟁은 피치뿐만 아니라 시선이 잘 닿지 않는 벤치에서도 진행된다. 자기 선수를 보호하고, 기 싸움에서 밀리지 않으려는 두 감독의 이번 설전은 향후 두 팀의 맞대결에 열기를 북돋을 ‘매콤한 양념’이 될 거라 예상된다. 부산과 전남은 오는 5월 23일 광양 축구전용구장에서 리턴 매치를 벌인다.

글=김태석 기자(ktsek77@soccerbest11.co.kr)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축구 미디어 국가대표 - 베스트 일레븐 &베스트 일레븐 닷컴
저작권자 ⓒ(주)베스트 일레븐.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www.besteleven.com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 2024 Best Eleven. All rights reserved.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