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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일레븐=고양)

화상으로 진행된 기자회견인데도 언짢음이 훤히 드러났다. 잔뜩 찌푸린 채 앉아있던 그는 입을 열자마자 한국어로 분노를 표현했다. 솔직히 놀라웠다.

콜린 벨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여자 국가대표팀은 30일 고양 종합운동장에서 열린 뉴질랜드와 친선 경기 2차전에서 0-2로 졌다. 후반 38분 뉴질랜드가 역습 상황에서 올리비아 챈스의 패스를 받은 페이지 사첼이 득점했다. 후반 40분에는 가비 레니가 추가골을 넣었다.

한국은 전반전 상대를 압도했다. 그런데 후반전 들어 기류가 바뀌었다. 한국은 여전히 경기를 주도했으나, 점유율이 떨어졌다. 결국 후반전 상대 역습 두 차례에 두 골을 허망하게 내줬다. 좋은 경기력이 아쉬울 만큼 허무하게 당한 패배였다.

벨 감독은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전반전이 끝났을 때 4-0으로 이기고 있을 정도로 잘했으나, 후반전에는 어떤 이유인지 경기력이 하락했다. 포지셔닝에도 문제가 있었다”라고 잔뜩 찌푸린 얼굴로 분노를 표현했다.

현장에서 보는 벨 감독은 소위 좋은 사람이었다. 말투는 교양 있고, 현장에서 진행하는 기자회견에 들어와서도 기자들에게 “안녕하세요”라고 한국어로 인사를 건넬 정도였다. 그런데 이번에 나온 한국어는 달랐다. “정말 많이 아쉽다. 오늘 경기 전반전은 좋았으나, 후반전에는 못 했다.”

외국인 화자이기에 표현의 완곡함을 크게 기대하기는 어려운 게 분명하다. 하나 벨 감독은 이번만큼은 분명한 의도를 갖고 직설적으로 후반전 한국이 보인 경기력을 평가했다.

이런 이례적 분노 표출이 더 놀라운 건 이 경기가 친선 경기였기 때문이다. 한국은 뉴질랜드와 지난 27일 치른 평가 1차전에서 2-1로 승리했다. 2차전에서 패배했다고는 하나 결과만 놓고 보면 1승 1패였다. 게다가 2차전에서는 전반전 완벽하다고 할 수 있는 경기력을 보였다. 문제가 있다면 득점이 없었다는 점뿐이었다.

벨 감독은 지난 4월 열린 2020 도쿄 올림픽 여자축구 아시아 최종예선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중국과 2-2로 비겨 본선 진출이 무산됐을 때도 분노와는 거리가 먼 반응이었다. 오히려 “고강도 축구를 하고, 자신감을 심어주고자 했다”라며 “인성적으로도 훌륭하고, 훈련도 열심히 하는 선수들이다. 자신감을 더 가져야 하고, 더 성숙하고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아쉬움을 드러내면서도 격려했다.

4월에는 강호 중국을 상대로 모든 걸 쏟았으나 결국 티켓를 쟁취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한 수 아래인 뉴질랜드를 상대로는 오히려 압도했으나,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다. 경기에 걸린 무게가 다르더라도 오히려 후자를 용납할 수 없는 벨 감독이다.

한국은 내년 2월 2022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본선이라는 중요한 무대를 앞두고 미국, 그리고 뉴질랜드와 평가전을 치렀다. 이 대회는 실전이다. 한국은 대회 5위 안에 들어야 2023 국제축구연맹(FIFA) 호주·뉴질랜드 여자 월드컵에 나갈 수 있다.

이 중요한 대회를 앞두고 상대를 압도하면서도 패배한 한국, 벨 감독의 분노는 오히려 적절한 순간에 터졌다. 이 솔직한 분노는 분명 내년 열릴 대회를 준비하는 우리 선수들에게 좋은 자극이 될 테다.

글=조영훈 기자(younghcho@soccerbest11.co.kr)
사진=대한축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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