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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일레븐=도하/카타르)

FIFA 아랍컵은 꽤 흥미로운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대회다. FIFA가 주관하는 세계 대회가 아닌, 각 대륙연맹과 지역연맹이 주관하는 대회는 말 그대로 지리적 특성이 반영된다. 이를테면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나설 수 있는 대회는 세계 대회인 월드컵 그리고 AFC 아시안컵과 EAFF 챔피언십으로 지리적으로 구분할 수 있다.

FIFA 아랍컵은 그 구분 기준이 지역이 아니다. 아랍은 지역이 아닌 정체성에 가까운 기준이다. 통상적으로 중동으로 불리는 아라비아 인근과 북아프리카를 아울러 아랍어를 쓰고 이슬람교를 믿으며 공동의 문화를 가지는 민족들이 여러 나라로 나뉘어 살아가는 공간을 아랍 지역이라 하는데, 이런 기준은 단순히 동쪽의 아시아 혹은 서쪽의 아시아로 마름질할 수 없다.

아랍의 이런 기준 때문에 이란은 이 대회에 참가하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간혹 이란 역시 아랍 국가라고 오해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란도 아랍 세계도 그들이 같은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전혀 여기지 않는다. 특히 이란인들은 자신들을 아랍인으로 여기는 걸 매우 싫어하는 걸로 유명하다.

어쨌든 소위 같은 뿌리에서 나고 자란 국가들끼리 축구를 통해 친선을 다지는 대회라 할 수 있다. 카타르 역시 그 점에 착안해 2021 FIFA 아랍컵 개막식을 준비했다. 나름의 플롯은 이러하다.

▲ 아랍컵에 참가하는 모든 국가들이 사막 지역의 오아시스에서 시작해 같은 종교와 같은 뿌리를 가지게 됐지만, ▲ 여러 이슈 때문에 한동안은 반목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 그렇지만 축구, 그리고 아랍컵을 통해 다시금 하나가 되는 통합을 이룬다는 게 개막식 내용이었다. 통합과 화합을 추구하는 국제 스포츠 대회의 취지에 걸맞은, 솔직히 약간은 뻔한 듯한 느낌이 있는 스토리다.

그렇지만 그 스토리를 현란한 하이 테크놀로지 쇼로 꾸미면서 보는 이들을 정말 놀라게 만들었다. 내용 여부를 떠나 이를 표현해내는 수준을 보며 내년 월드컵 개막식이 꽤 기대되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대회 참가팀들의 반응은 그리 좋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한 관계자는 몇몇 국가들이 개막식 내용에 대해 다소 불만을 갖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축구를 통해 하나가 되자는 그 취지 자체는 공감하지만, 그 갈등에 대해서 너무 가볍게 치부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다.

사실 아랍 세계는 단순히 같은 뿌리와 종교를 가지고 있다고 마름질하기에는 꽤나 복잡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당장 카타르만 하더라도 최근 사우디아라비아나 UAE와 단교 사태를 빚는 등 꽤나 마찰을 빚었다. 시리아 사태는 단순히 한 국가 내부의 소요 정도로 마름질할 수 없을 정도로 아랍 세계 내부의 큰 갈등 요소다. 이 밖에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꽤 민감한 이슈가 산재한다. 이를 떠올리면 불만을 가지고 있는 이들의 심정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종교나 문화, 뿌리 등으로 우리는 하나라는 생각을 갖기보다는 그들 나름대로 국가에 대한 정체성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알 투마마 스타디움에서 만난 이집트와 레바논 팬들의 분위기, 그리고 하루 전 알 바이트 스타디움에서 접한 카타르와 바레인 팬들의 분위기는 ‘우리가 남이가’라는 분위기와는 상당히 달랐다.

새삼스럽지만 국가적 정체성은 아무리 같은 문화와 종교를 공유한다고 해도 엄연히 차이가 난다는 걸, 가장 동질감을 느끼는 나라들끼리의 축구 제전인 아랍컵을 통해 느꼈다. 국제적 화합을 추구하는 게 국제 축구 대회의 가장 큰 취지이지만, A매치 축구는 어찌 됐든 국가대항전이다. 아랍컵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 치열하게 시작되는 분위기다.

글=김태석 기자(ktsek77@soccerbest1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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