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베스트 일레븐)

2002 국제축구연맹(FIFA) ·일 월드컵이 올해로 20주년을 맞았다. <베스트 일레븐>이 한·일 월드컵 20주년을 기념, 6월 호를 통해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감동과 기쁨을 선사했던 2002 월드컵 영웅들과 만났다. 거스 히딩크 당시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비롯해 홍명보·안정환·박지성 등과 20년 전 소중한 추억을 꺼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b11 단독 인터뷰, 다섯 번째 순서는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이다. /편집자 주

당시 대한축구협회 수장이었던 정몽준 회장은 2002 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숨은 주역이다. 월드컵 유치를 위해 발로 뛴 정 회장의 노력이 없었다면, 4강 신화도 탄생할 수 없었다. “축구를 하다 다리가 부러진 적이 있을 정도로 축구를 좋아했다라던 정 회장은 1993년 대한축구협회장을 맡은 후 2002 월드컵 유치에 도전하기로 결심했고, 그 목표를 기어코 달성했다.

월드컵 4강 신화, ‘초석을 마련하다

대한축구협회장을 맡은 뒤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해 무슨 일을 해야 할 지 고민했어요. 그때 몇몇 축구인들이 2002 월드컵을 유치해보자고 의견을 냈습니다. 월드컵 개최지 투표권을 가진 FIFA 집행위원에 도전하는 것을 첫 번째 목표로 삼았죠. 1994FIFA 부회장에 당선되면서 2002 월드컵도 유치할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을 얻게 됐어요.”

그러나 월드컵 유치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실현 가능성이 없는 월드컵 유치를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한다며 손가락질을 받았고, 정부도 그런 정 회장에게 반신반의하는 시선을 보냈다. 설상가상으로 우리보다 한발 먼저 움직인 일본은 당시 FIFA 회장이었던 주앙 아발란제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유력한 후보지로 급부상했다.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사람이 거의 없었지요라던 정 회장은 일본은 월드컵 본선 진출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던 반면, 한국은 4번이나 본선 무대를 밟았었어요. 이 점을 강조했죠. 한국이 실력으로는 아시아를 대표하는데, 단지 돈이 많다는 이유로 (일본이) 월드컵을 개최해선 안 되지 않느냐고 설득했어요. 이홍구 전 국무총리와 세계 각국을 다니며 외롭게 유치활동을 했었는데, 정부에서 나중에 적극 도와줘서 큰 힘이 됐습니다라며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정 회장은 굴하지 않았다. 일본과 치열한 유치경쟁을 펼친 끝에 공동 개최라는 값진 성과를 이끌어냈다. 아발란제 회장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던 유럽과 아프리카 집행위원을 전략적으로 공략해 표심을 얻었고, 한국이 아시아 최고의 팀이란 사실을 어필해 판을 뒤집었다.

“1988 서울 올림픽 유치에 앞장선 아버님을 도우면서 곁에서 많은 걸 배웠어요. 당시 경험이 2002 일 월드컵을 유치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됐죠. 저도 2002 월드컵을 유치해 중요한 역사를 조성하는 데 일조했다는 사실에 큰 보람을 느낍니다.”

월드컵 성공 개최를 위한 정 회장의 집념

월드컵 유치로 임무를 마친 것이 아니었다. 경기장주변 환경 등 월드컵 개최를 위한 인프라 구축이 시급했다. 그야말로 산 넘어 산이었다. 월드컵 역사상 최초로 공동 개최가 성사되면서 개막전은 한국에서, 결승전은 일본에서 열리는 이색 상황이 나오기도 했다. 서울 월드컵경기장을 짓고 성대하게 개막전을 열 계획이었는데, 때마침 IMF 사태가 발생했다. 월드컵경기장 건설에도 비상이 걸렸다.

월드컵 유치에 성공하면서 상암에 경기장을 짓기로 했어요. 그런데 1997IMF 사태가 터진 거예요.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98년 취임하셨는데 경제가 어려워 경기장을 짓지 않는 쪽으로 정부 방침이 정해졌습니다. 동대문운동장에서 개막식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된 거죠. 상암에 새 경기장을 짓지 못하게 되면 축구협회장에서 물러나야겠단 생각까지 했다니까요.”

정 회장은 축구협회장 자리를 내놓겠단 각오로 김 전 대통령과 면담을 가졌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에요라고 회상하던 정 회장은 김 전 대통령께서 만나자마자 안 짓기로 했으니 정 회장이 이해하시죠라고 하며 바로 일어나시더라고요. 제가 김 전 대통령의 손을 잡으며 저도 드릴 말씀이 있으니 잠시 앉아주시죠라고 말한 뒤, 40분 동안 설득을 했죠. ‘국가 상황이 좋지 않은 건 이해하지만, 월드컵은 지금 당장 하는 게 아니라 4년 후에 열린다라고요. 김 전 대통령께서도 결국 오늘 경기장을 짓지 않겠다고 결정내리지 않겠다라며 한 발 물러서주셨어요.” 우여곡절 끝에 서울 월드컵경기장이 첫 삽을 떴고, 월드컵 개최를 위한 준비도 더욱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됐다.

 

2002 월드컵이 가져다준 변화

2002 월드컵 4강 신화가 한국 축구에 가져온 변화는 상당하다. 정 회장은 2002 월드컵의 가장 뚜렷한 효과로 통합선진화를 꼽았다.

“2002 월드컵은 국민들을 하나로 통합시킨 계기가 됐어요. 한국의 역동성을 전 세계에 보여준 행사였죠. 2002 월드컵을 계기로 한국 축구는 질적으로 크게 발전했다고 생각합니다. 선수들이 자신감을 얻었고, 시야가 넓어졌어요.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진 덕분에 교육 시스템과 인프라도 선진화됐습니다.”

우리는 포스트 2002’ 시대에 살고 있다. 2002 한일 월드컵을 보며 성장한 선수들이 유럽 무대를 누비며 활약하고 있고, 최근에는 손흥민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득점왕에 오르는 쾌거도 이뤘다.

정 회장은 “EPL에서 활약 중인 손흥민과 황희찬, 프랑스 무대에서 뛰는 황의조 등 세계적인 선수들이 많이 배출된 것도 2002 월드컵의 성과라고 할 수 있어요라면서 게다가 2002 월드컵에서 뛰었던 선수들이 현재 지도자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지 않습니까. 한국 축구는 앞으로 더 발전할 거라고 확신합니다라며 한국 축구의 미래는 여전히 밝다고 했다.

* <베스트 일레븐> 2022년 6월 호 한·일 월드컵 20주년 특집 ‘BE THE REDS’ 발췌

글=유지선 기자(jisun22811@soccerbest11.co.kr)
사진=대한축구협회, ⓒgettyImages/게티이미지코리아(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축구 미디어 국가대표 - 베스트 일레븐 & 베스트 일레븐 닷컴
저작권자 ⓒ(주)베스트 일레븐.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www.besteleven.com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 2024 Best Eleven. All rights reserved.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