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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일레븐=광양)

지난 주말 광양 축구전용구장에 나부낀 부산 아이파크 팬들의 걸개는 많은 축구팬들의 시선을 끌었다. 하나원큐 K리그 하나원큐 K리그2 2022 28라운드 전남 드래곤즈 원정 경기를 보기 위해 현장을 찾았던 부산 팬들은 놀랍게도 ‘적장’인 이장관 전남 감독을 응원하는 걸개를 내걸었기 때문이다.

현역 시절 부산의 프랜차이즈이자 레전드 스타로 각광받았던 이 감독이었기에 옛 정을 떠올려 격려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유달리 시선을 모으던 걸개가 있었다. 만면에 미소를 가득 머금은 앳된 현역 시절 이 감독의 웨딩 결혼 사진이 바탕으로 새겨진 걸개였다. 무려 20년 전의 기억이라 얼마 전부터 K리그를 지켜 본 팬들에게는 꽤 이색적으로 비쳤을 결혼식 풍경이었을 것이다.

“전반전에는 총각, 후반전에는 유부남이었습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이 감독도 당시 결혼식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결혼식은 2002년 3월 24일 부산 구덕운동장에서 벌어진 2002 아디다스컵 울산 현대를 상대한 개막식 하프타임에 진행됐다. 요즘도 그렇지만 K리그 선수들은 시즌이 모두 끝난 겨울에 결혼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감독은 해를 넘겨 개막전 도중에 웨딩 마치를 올렸다. 이 감독은 구단의 배려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결혼식이라고 웃었다.

“사진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양말은 사실 붉은색 스타킹이었습니다. 양말을 갈아신으면 테이핑부터 다시 해야 할 상황이라 시간이 많이 걸릴 수밖에 없었거든요. 날씨도 정말 안 좋았습니다(웃음). 저보다는 아내가 더 힘들었을 겁니다. 그날 바람이 정말 많이 불었거든요. 화려하게 번쩍번쩍한 이벤트도 할 수 없었습니다. 야간 경기라면 레이저라도 쏘면서 뭘 할 수 있을 텐데 너무 추워서 낮 경기를 통해 결혼식을 해야 했으니까요.”

이 감독은 당시 결혼식이 이색 이벤트가 아니었느냐는 질문에 손사레를 치며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제대로 하객과 축의금도 받고 양가 가족과 지인들의 축하 속에서 진행된 제대로 된 결혼식이었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15분 동안 진행된 결혼식이었는데 그렇게 시간이 길게 느껴진 건 처음이었다”라고 웃으며 당시를 떠올렸다.

이 감독에게는 당시 추억을 통해 현역 시절 가졌던 자부심을 되새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결혼과 관련한 이벤트를 한 선수는 이후에도 있었다. 하지만 엄연히 공식 경기 도중에 제대로 된 결혼식을 한 건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라고 웃었다. 그만큼 사랑받는 선수였기에 가능했다고 결혼식을 떠올렸다. 20년이 넘은 기억이지만, 이 감독은 그때를 떠올리면 즐거운 표정이었다.

당연히 경기 후 팬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러 가야했다. 그런데 상대팀 감독이라는 신분이 문제였다. 때문에 이 감독은 경기가 끝난 뒤 박진섭 부산 아이파크 감독에게 정중하게 팬들에게 인사를 하러 가야겠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흔쾌히 이 감독을 모시고 부산 팬들에게 함께 갔다.

수고한 선수들을 응원할 준비를 했던 부산 팬들은 부산 스태프 및 선수들과 한꺼번에 다가오는 이 감독 때문에 순간 멈칫했다. 그들은 선수들을 격려한 후 이 감독을 위해 따로 한 번 더 응원할 생각이었는데 동시에 다가오니 선후를 놓고 잠깐 고민했던 것이다. 어쨌든 이 감독, 그리고 박 감독과 부산 선수들은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응원을 받았다. 이 감독은 “15년 만에 ‘이장관 송’을 들었다”라고 웃었다.

글=김태석 기자(ktsek77@soccerbest11.co.kr)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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