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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일레븐=카타르)

1998 프랑스 0, 2002 한일 2, 2006 독일 0, 2010 남아공 2, 2014 브라질 0, 2018 러시아 1, 2022 카타르 3. 각 항목의 오른쪽 숫자는 월드컵이 지금과 같은 32개국 형태로 진행된 후 본선 토너먼트 진출에 성공한 AFC(아시아 축구연맹) 회원국의 수이다. 호주는 2006 독일 대회에서 16강에 진출했지만, 그땐 OFC(오세아니아축구연맹) 소속이어서 카운트하지 않았다. 현재는 AFC 가맹국(이하 아시아)임으로 2022 카타르 대회의 3이란 숫자에 포함했다.

특이한 케이스인 호주를 논외로 하면, 현행 포맷 월드컵에서 16강에 진출한 아시아 팀은 대한민국과 일본이 유이하다. 8강 이상의 성적을 거둔 팀은 대한민국(2002 한일 대회 4강)이 유일하며, 일본은 2018 러시아 대회 16강에 오르며 대한민국보다 토너먼트 진출 횟수에서 하나 앞서 있다. 아시아는 지리적으로 동서로 구분한다. 1990년대 후반에서 현재까지,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가시적으로 거둔 아시아의 호성적은 주로 동쪽이 이끌어 왔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곧, 해당 시기 대한민국과 일본이 걸어온 길, 이룩한 업적이 아시아가 월드컵에 남긴 족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다. 

월드컵은 4년 간격으로 열린다. 매 대회 어려움을 겪었고 좌절을 맛 본건 대한민국과 일본이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면서도 중간중간 굵직한 획을 그어 남기는 일 또한 잊지 않았다. 띄엄띄엄한 4년마다의 성적을 연속선상위에서 변화하는 추세로 이해하기엔 무리가 따르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 해도 맥락의 경향성을 완전히 읽어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월드컵 본무대의 경기 내용, 성적, 위상 등을 바탕으로 ‘대한민국과 일본의 축구가 발전하고 있는가, 발전해 왔는가’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이제는 그렇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을 듯싶다.

카타르 월드컵 조별 리그를 거치며 그 주장의 근거는 강화됐다. 20여 년 전만해도, 그리고 비교적 최근까지도 월드컵 본선에 임하는 두 나라의 현실적 전략은 1승 1무 1패 승점 4로 16강 진출의 '원 찬스'를 노리는 것이었다. 승리가 목적인 축구지만, 월드컵이란 최고의 스테이지엔 킥오프도 하기 전에 접고 들어갈 수밖에 없는 축구 강국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1패를 당한다고 상정하는 같은 조 원 탑을 제외하고 나머지 두 팀과 최소 1승 1무의 성적을 거두면 반드시까지는 아니더라도 보통은 16강 진출 확률이 높은 승점 4 이상 획득이 가능하다는 계산이 어김없이 나오곤 했다. 특히 1승 제물로는 주로 아프리카, 유럽 중위권 팀들이 거론됐다.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일본과 ‘평소에는 해 볼만한 하다’고 평가하는 중남미 팀과의 상성은 그리 좋지 못한 흐름을 보이는 까닭이다. 

2002년 홈 개최의 특수했던 환경을 제외하면, 위와 같은 계산법이 정확히 맞아 들어간 대회가 2010 남아공 월드컵이다. 당시 B조 대한민국은 3전 전승으로 조 1위를 차지한 아르헨티나에 패했다. 하지만 나머지 두 팀, 그리스에 승리하고 나이지리아와 비기며 승점 4, 조 2위로 사상 최초 원정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D조 일본은 역시 3전 전승으로 조 1위를 차지한 네덜란드에 졌다. 그러나 덴마크와 카메룬을 잡아내며 승점 6, 조 2위로 토너먼트 표에 이름을 올렸다.

공교롭게도 두 팀의 16강 상대는 상승세를 탄 남미 중상위권 전력의 팀이었다. 대한민국은 우루과이를 맞아 전반 이른 시간 루이스 수아레스에게 선제골을 내주며 불안하게 출발했다. 이내 전력을 추슬렀고 후반 23분 터진 이청용의 동점골을 기점 삼아 전세를 유리하게 가져오며 역전의 기회를 노렸다. 대한민국의 추격은 무위로 돌아갔고, 후반 종료 10분을 남긴 시점 수아레스에게 중거리 슛 일격으로 다시 실점하며 1-2로 패하고 말았다.

일본은 파라과이와 대결해 연장까지 이어진 120분간의 격전 끝에 0-0으로 우열을 가리지 못했다. 이어진 승부차기에서 3-5으로 밀리며 여정을 종료했다. 영하권까지 내려갔던 추운 남반구의 6월은 돌아서는 대한민국과 일본의 뒷모습을 더욱 쓸쓸하게 했다. 아쉬운 건 분명하나 그런 가운데도 소기의 성과를 거둔만큼 두 팀은 환영인파가 몰려든 입국장으로 당당하게 들어섰다. 

같은 조에서 톱 시드를 받은 나라, 혹은 전력상 최강으로 여겨지는 팀에겐 어쩔 도리 없이 승점 3을 헌납하게 될 것이라는 일종의 축구 사대주의적 발상에 본격적으로 금이 가기 시작한 건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의 일이다. 대한민국은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최선의 전력으로 임한 디펜딩 챔피언 독일을 2-0으로 격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비록 토너먼트 진출엔 실패했지만 꾸릴 수 있는 베스트 진용을 들고나온 전통의 축구명가 전차 군단을 완파하는 결실을 손에 넣었다.

일본은 톱시드 가운데 최약체로 평가받던 폴란드와 한조로 묶이며 행운이 따르는 듯 보였다. 난점은 직전 브라질 대회 8강 진출의 전력을 유지하고 있던 콜롬비아를 상대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전혀 주눅들지 않고 첫판에 콜롬비아를 제압하며 꽤 터프했던 조별리그를 돌파하고 16강에 진출했다. 요컨대 대한민국과 일본은 4년전 러시아 대회를 통해 아프리카 팀, 유럽 중위권 팀이 아닌 탑시드 국, 혹은 세간이 평가하는 같은 조 최강자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는 계기를 가졌다.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은 포르투갈, 우루과이, 가나와 한조에 속했다. 러시아 대회의 경험이 없었더라면 포르투갈과 맞붙기도 전부터 기세에 눌렸을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4년 전 독일을 꺾은 자신감은 1무 1패의 밝지 않는 성적, 복잡한 경우의 수를 논하는 험난한 상황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게 했다. 조별리그 3차전, 포르투갈에 이른 시간대 선제점을 허용한 악조건을 극복하고 2-1 역전승을 일궈내며 사상 두 번째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일본은 독일, 스페인, 코스타리카와 같은 조를 이뤘다. 세상의 예상과는 달리 일본은 독일과 스페인을 제압하고 승점 6을 확보, 토너먼트에 올랐다. 유럽의 거함이자 세계축구를 이끌어온 두 나라 격파는 전술적 미스로 패배를 맛본 코스타리카와의 조별리그 2차전을 완전히 잊게끔 만들만큼 강렬한 임팩트였다. 일본 스스로가 말했듯 4년전 대한민국의 독일전 승리는 그들에게 영감을 던져줬다. 특히 일본은 조별리그 1차전에서 사실상 가용 전력의 베스트를 들고 나온 독일에 2-1 역전승을 거두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환희의 무드 속에 냉정하고 짚고 넘어가야한 부분을 놓쳐서는 안된다. 대한민국과 일본이 이번 대회 조별리그 3차전에서 각각 상대한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해당 경기에 패하더라도 16강 진출이 확정되었거나 매우 유리한 처지였다는 점이다. 두 아시아 맹주의 승리를 폄하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다만, 대한민국과 일본 축구가 과거엔 승점 1 획득조차 쉽게 넘보기 어려웠던 최강국들이 선수 구성이나 멘탈 측면에서 단단히 무장하고 나오지 않는 상황이라면 충분히 ‘해 볼만한’한 수준까지는 올라왔다고는 말할 수 있다. 이는 끊임없이 성장해 왔다는 근거이며, 추세적 발전을 의미한다.

이렇게 대한민국과 일본의 사례를 함께 제시하며 서술한 건 서두에 언급했듯 아시아 축구의 빛나는 월드컵사를 써온 두 팀이기 때문이다. 이런 저력의 형성에는 오래 이어온 대한민국과 일본의 경쟁구도가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아시아 축구가 변방중의 변방이던 시절부터 두 팀은 ‘한일전’이란 정기적 대결을 통해 상호 발전을 자극했다. 라이벌의식은 최강 전력으로 맞붙을 기회가 거의 없었던 최근까지도 변함없이 유지된다. 직간접적으로 이어져온 두 팀의 경쟁은 대한민국과 일본을 아시아 축구의 선봉에 서게 만들었다. 그리곤 월드컵을 무대로 아시아 축구의 새로운 한 페이지를 연 2022년 12월을 맞이했다. 

글=양정훈 칼럼니스트 

편집=임기환 기자(lkh3234@soccerbest11.co.kr)
사진=ⓒgettyImages/게티이미지코리아(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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