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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일레븐=카타르) 

조별리그는 하루 최대 2경기까지 참관, 취재가 가능했다. 결승 토너먼트부터는 미디어로서 공식적으로 참석할 수 있는 경기가 하루 하나로 제한된다. 컨설팅을 맡고 있는 대한민국과 일본이 각각 벌이는 시합, 그것도 16강전이 같은 날 열리리라곤 사전에 전혀 예상치 못했었기에 곤란함을 맞았다. 다행히 두 경기 모두 업무 관련성을 인정한 FIFA 관계자의 배려로 18시에 시작하는 첫번째 매치업 일본-크로아티아 경기의 일반 관중용 티켓을 손에 넣게 됐다.

하지만 두 스타디움 사이의 교통편이 좋지 않은데다, 첫 경기가 연장전 혹은 승부차기까지 길어질 때엔 다음 킥오프 시간인 22시에 맞춰 도착하지 못할 우려가 컸다. 아쉽지만 관중 경험은 추후로 미루고 미디어석 승인을 받은 브라질과 대한민국의 경쟁에 조금 더 집중하기로 했다. 순서상 두번째 매치업이 열릴 스타디움 974의 미디어 센터에 일찍 자리를 잡았다. 그곳의 실시간 중계 영상 모니터로 일본-크로아티아 대결을 관전했다. 그리곤 스탠드의 미디어 트리뷴으로 자리를 옮겨 브라질 대 대한민국전을 직접 눈에 담았다. 이 두 경기의 짤막한 감상을 공유하고자 한다. 

<B>12월 5일 18시 16강 일본 1-1(승부차기 1-3) 크로아티아 @알 자눕 스타디움</B>

‘일본은 승부차기에 약하다’. 120분간 1-1, 일진일퇴의 공방을 벌이면서도 미세하게나마 우세한 흐름을 잡았던 일본이 승부차기 끝에 크로아티아에 패하자 터져 나온 자국 팬들의 대체적인 반응이었다. 12년전, 2010 남아공 대회에서 일본이 파라과이와 대결한 16강전이 오버랩 됐기에 탄식의 목소리는 더욱 크게 울렸다. 당시 두 팀은 남반구 겨울의 쌀쌀한 기운이 가득한 프리토리아 스타디움에서 120분 혈전 끝에 0-0으로 우열을 가리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밤은 깊어 졌고, 날숨이 이내 연기처럼 변하는 추위 속 승부차기에 들어섰다. 선축의 파라과이는 5명이 나와 모두 골네트를 갈랐다. 반면 일본은 세번째 주자 고마노 유이치의 킥이 크로스바를 맞고 튕긴 등 악재를 극복하지 못했다. 결국 3-5로 무릎을 꿇으며 파라과이에 8강 티켓을 내주고 말았다. 12년 후 카타르 월드컵 16강, 일본의 승부차기는 스타트부터 좋지 않았다. 첫번째 키커 미나미노 타쿠미, 두번째 키커 미토마 카오루가 연이어 골 획득에 성공하지 못하며 초장부터 암운이 드리웠다. 최종적으로 1-3 승부차기 결과를 받아 들고 크로아티아의 8강 진출을 바라만 봐야 했다.

12년 전 고마노 유이치의 경우가 킥 자체가 타겟을 벗어나는 ‘실축’이었다면, 이번 대회 세차례 실패는 모두 볼이 골문 안쪽을 향했으나 상대 골키퍼에게 걸린 장면이었다. 크로아티아 수문장의 활약을 폄하할 의도가 없음을 우선 밝힌다. 다만, 일본 선수들의 킥이 과감하고 예리했다고 하긴 힘들어 보인다. 선수가 스스로 나서서 키커에 지원하는 2022 일본 월드컵 대표팀 시스템의 맹점이 그대로 드러난 사례라고 여겨진다. 감독이 지정했을 때완 달리 결과에 대한 책임이 오로지 키커 자신에게 씌워진다면 도전적인 시도보다는 일단 볼을 골문의 네모 영역 타겟으로 보내는 작업을 가장 우선시할 수밖에 없다. 골키퍼에게 막혔을 땐 어느 정도 면죄부를 얻을 수 있지만, 골문을 벗어나는 완전한 ‘실축’은 평생 개인이 안고가야 할 상처로 남는 까닭이다. 

이 경기를 두곤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이 팀 전술 차원에서 보인 특정 선수 활용법에 커다란 물음표가 제기된다. 4-2-3-1의 왼쪽 윙으로 출전한 미토마 카오루에게 수세시 자기진영 깊숙이 내려와 수비할 것을 지시한 것이다. 미토마 카오루는 2021년 J1 가와사키 프론탈레 소속으로 아시아 챔피언스리그(ACL)에 출전하며 본격적으로 성인 국제 무대에 선을 보였다. 2021년 말~2022년 초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일본 대표팀에 소집돼 활약했으며, 카타르 대회 본선까지 누비게 됐다.

소속팀에서나 대표팀에서나 미토마 카오루가 줄곧 보여준 확실한 공격 무기가 있다. 예측하기 힘든 타이밍의 무게 중심 이동을 동반해 독특한 템포로 돌파하는 드리블이다. 이어 페널티 에어리어 안쪽에서 폭발하는 슈팅은 높은 확률로 골을 만들어 냈다. 하나의 경기에서 여러 번 통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반드시 한 골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집중적으로 활용해 볼만한 카드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수비 부담이 가중된 미토마 카오루는 그 특징적 플레이를 성공적으로 발산하지 못했다. 그의 수비 역할 분담을 완전히 면제할 수 없다면, 적어도 4-2-3-1의 ‘3’ 정중앙에서 수비 가담 임무가 비교적 적게 주어져던 미나미노 타쿠미와 위치, 역할을 바꾸는 대응 전술 정도는 충분히 구사해볼만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된다. 시도했더라면, 성공으로 이어졌더라면, 필드골로 경기 결과가 바뀌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B>12월 5일 22시 16강 브라질 4-1 대한민국 @스타디움 974</B>

‘월드컵은 증명하는 무대’. 일리 있는 말이다. 지난 4년간 갈고 닦아온 대표팀의 기량이 세계 기준에 부합한다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 한 나라의 축구가 발전하면서 국제적 트렌드를 충실히 따른다는 사실을 만방에 드러낼 절호의 찬스가 다름아닌 월드컵이다. ‘월드컵은 경험하는 무대’. 역시 납득이 가는 말이다. 월드컵을 통해 쌓게되는 경험, 월드컵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경험 그 어느 쪽도 소중하긴 마찬가지다. 물론 증명의 실패를 경험의 축적이라고 억지스럽게 미화하는 병폐는 경계해야한다. ‘실패’라고 공감대가 형성되는 결과에 대해서 철저한 반성을 통해 장래 발전의 계기로 삼는 편이 옳다.

그렇다고 ‘월드컵에서의 경험’이란 문구에 지나치게 부정적 이미지를 덧씌울 필요는 없다. 대한민국은 2022 카타르 월드컵 16강을 치르면서 월드컵이기에 일종의 ‘공인’을 받을 수 있는 진귀한 이벤트를 몸소 겪었다. 다름아닌 ‘진짜’ 브라질과의 대전이다. 영원한 월드컵 우승 후보 브라질이 언제나 세계 최강권에 머무를 수 있도록 하는 기반은 넓은 저변이다. 수많은 선수들, 그 미세한 기량 차이 가운데 셀레상(브라질 대표팀의 별칭) 명단을 가려낸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브라질 선수들을 모아 브라질 대표팀 ’급’의 팀을 꾸린다면 동시에 몇 개라도 나올 수 있을 듯싶다. 여기서 난점이 생긴다. ‘진정한 브라질 1군의 면면은?’이란 질문에 명확히 답을 내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대표팀 ‘급’의 선수 구성에 네이마르와 같은 스타플레이어 한 두명이 더해진다면 진정한 셀레상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아니라고 하기도 어렵지 않을까? 대한민국은 ‘진짜’ 브라질과 붙어본 적이 있는가?

대한민국은 16강 브라질전을 통해 앞선 물음표들을 말끔히 해소했다. 월드컵 녹아웃 스테이지, 지면 떨어지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최선의 맴버가 최고의 기량을 펼친 ‘진짜 브라질’, 그런 셀레상에 맞선 대한민국은 승패를 떠나 장래의 축구발전에 비옥한 자양분으로 삼을 경험을 획득했다. 스쿼드 뿐만 아니라 멘탈 무장에 진지한 자세까지, 친선경기는 물론, 어쩌면 대륙선수권 레벨에서도 완전히 갖추기는 어려운 요소들이다. ‘월드컵은 경험하는 무대’. 이 상황에서는 가장 적합한 말이 아닐 수 없다.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월드컵의 초창기, 브라질은 압도적 개인 전술을 앞세워 세계 축구를 호령했다. 실제 유기성, 조직력 강조되는 전체 전술, 부분 전술은 개인전술의 브라질을 따라잡고 견제하기 위해 유럽이 고안해내고 발전시킨 수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의 축구는 한 팀이 개인과 조직가운데 한가지 유형을 골라 일변도로 구사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설사 그런 팀이 있다고 하더라도 월드컵 본선에 진출할 만한 완성도를 갖췄을 가능성은 낮다. 우리의 축구는 서로가 서로의 장점을 흡수해 전체의 조직력, 유기성 위에 개인의 창조성이 꽃피우는 축구로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

네이마르와 히샬리송의 개인 전술이 부각되고 또 기능한 바탕에는 브라질이라는 편견에 의해 무시되기 십상인 셀레상의 조직적 짜임새가 굳건하게 자리잡고 있다. 간과하면 안 될 뿐더러 오히려 강조돼야 할 대목이다. 대한민국이 얻는 소중한 경험, 16강 패배의 기억, 어찌 보면 이번 카타르 월드컵의 최대 수확인 ‘진짜 브라질’과의 대전으로부터 끌어내야 할 교훈은 분명하다. 언젠가 반짝하고 등장할 천재가 활짝 꽃필 수 있는 기반을 부지런히 닦아야 한다. 

글=양정훈 칼럼니스트 

편집=임기환 기자(lkh3234@soccerbest11.co.kr)
사진=ⓒgettyImages/게티이미지코리아(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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