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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일레븐=거제)

▲ 김태석의 축구 한잔

군자보구 십년불만(君子報仇 十年不晩). 옛 중국의 역사가 사마천이 쓴 사기(史記)에 쓰인 문구다. 한자로 표기해서 와 닿지 않는다면, 군자의 복수는 10년이 걸려도 늦지 않다는 뜻이 담긴 그 격언이라면 바로 납득할 것이다. 우리 사회에도 종종 쓰이는 격언이기 때문이다.

이 격언은 과거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범저라는 인물의 일화에서 유래했다. 가난 때문에 출세길을 밟지 못해 어려움을 겪던 범저는 중대부 수가를 따라 제나라에 사신으로 가게 됐는데, 제나라 왕이 보는 앞에서 숨겨두었던 재주를 뽐냈다. 제나라 왕은 범저를 칭찬하며 환대했고, 이 모습에 시샘이 난 수가가 위나라로 귀국한 후 범저를 모략하여 태형을 받게 했다.

몽둥이로 얻어맞다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한 범저는 기지를 발휘해 죽은체를 해 겨우 살아남았다고 한다. 이 원한을 사무치게 가슴에 품은 범저는 훗날 진나라로 망명해 그곳의 재상이 되어 위나라를 격파했다. 이 일화를 본 사마천이 떠올린 문구가 바로 ‘군자의 복수는 10년이 걸려도 늦지 않다’였다. 즉, 이 문구는 군자 운운에 시선이 몰려서는 안 된다. 문구 하나하나에 지독한 복수심이 깔려 있고, 그 복수는 과정에서 고난이 있더라도 철저해야 한다는 무서운 심리가 깔려있다.

오는 2월 26일 오후 4시 30분 대전 월드컵경기장에서 예정된 하나원큐 K리그1 2023 1라운드 개막전 강원 FC전에 임하는 대전하나 시티즌 팬들, 특히 2년 전 강릉에서 벌어졌던 승강 플레이오프 당시의 아픔을 기억하는 대전하나 팬들은 아마도 이 문구를 가슴에 새기고 경기장으로 가지 않을까 싶다.

물론 대전하나가 군자의 팀이라거나 그런 뜻은 아니다. 하지만 옛 인물인 범저처럼 강원에 복수해야 한다는 마음이 가득할 것이라는 건 분명하다. 지난 16일 거제 삼성호텔에서 만났던 이민성 대전하나 감독은 팬을 언급하며 강원전에 임하는 결연한 마음을 내비쳤다.

이 감독은 “시즌을 치르며 소화해야 할 한 경기”라고 말하면서도, “개인적으로는 별 감정은 없다. 하지만 팬들을 위해서는 우리가 꼭 이겨야 할 경기”라고 말했다. 이유가 있다. 당시 대전하나는 승격 일보직전까지 갔다가 강원에 허탈한 역전패를 당했다. 흐름상 갑자기 팀 밸런스가 깨지면서 강원에 대량 실점해 패배한 경기라 이 감독을 비롯한 당시 경기를 뛴 선수들이 느껴야 할 책임감이 꽤 큰 경기였다.

하지만 그 사안과는 별개로 당시 강원이 배치한 볼보이들이 경기 진행을 방해했던 일은 대전하나와 그들의 팬들에게는 엄청난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다. 대전하나 서포터스는 물론 대전하나 구단 차원에서도 당시 볼보이의 행동을 강력하게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했고, 상벌위원회에 이 사안이 회부되는 일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볼보이가 볼을 가져다주는 풍경은 K리그 피치에서 사라졌다.

지금이야 다른 축구팬들은 그런 일도 있었지 할 수 있는 에피소드가 되어버렸지만, 대전하나 팬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아픔이 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결과적으로 1년 더 승격 도전을 해야 했고, 그 시간 동안 더욱 많은 인내와 고통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팬들은 그 먼 강릉까지 오셔서 응원을 해주셨다. 그리고 함께 눈물을 흘리셨다.”

이 감독은 당시 경기 후 풍경을 여전히 잊지 않고 있었다. 그러면서 “어차피 붙어야 할 팀이면 빨리 하자는 생각도 했다. 아마도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이렇게 대진을 붙여놓을 거라 생각도 했어요. 그래야 팬들이 관심을 가지고 흥행도 될 것이니까. 그 과정에서 감독들은 희생양이 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우리는 팬들을 위해서는 희생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팬들의 눈물을 닦아 줄 기회가 K리그1에 올라오자마자 주어졌다. 팬들을 위해 조금이나마 빨리 그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좋은 경기를 하고 싶다. 팬들에게 개막전부터 선물을 드리고 싶다”라고 승부욕을 내비쳤다.

비단 볼 보이 사건을 떠나, 대전하나 처지에서 이 경기는 여러모로 의미가 크다. 시민구단에서 기업구단으로 전환된 후 첫 K리그1 경기다. 팀을 K리그 최고, 나아가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강호로 만들고자 했던 모기업 하나금융그룹의 의지가 정말 강했다는 걸 떠올리면 이 경기는 구단 역사의 분기점이 될 것이다.

팬들에게는 더 큰 의미를 지닌다. 2015년 K리그1 최하위로 강등당한 후 8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났다. 시민구단 시절의 내부 혼선, 기업구단 전환 후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았던 승격 실패 등 1부리그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팬들이 느꼈던 속상함과 아픔이 많았다. 그래서 이 경기는 그 자체만으로도 팬들에게 의미가 크다. 이런 경기에서 강원전 승리를 통해 볼보이 사건 쇼크까지 씻어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즉, 대전하나는 굉장한 동기 부여 속에서 역사적인 K리그1 복귀전을 준비한다. 새 시즌 K리그1 문을 여는 경기 중 가장 집중해야 할 매치업인 이유다.

글=김태석 기자(ktsek77@soccerbest11.co.kr)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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