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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일레븐)

▲ 김태석의 축구 한잔

어떻게 이런 발상을 했는지 기묘할 따름이다. 더 황당한 건, ‘막장 정치극’에서나 볼 법한 날치기로 내려진 결정이라는 것이다. 이번 결정을 통해 대한축구협회는 축구계에서 퇴출됐던 ‘전과 가진 전직 축구인’들까지 품은 단체로 거듭났다. 하지만 가장 챙겨야 할 팬들은 잃었다.

협회는 28일 보도자료를 통해 이날 오후 서울 월드컵경기장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열어 징계 중인 축구인 100인에 대한 사면 조치를 의결했다. 협회의 설명에 의하면 FIFA 월드컵 10회 연속 본선 진출, 2022 FIFA 카타르 월드컵 16강 진출을 자축하고 축구계 화합을 위해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면 명단에는 전직 선수는 물론이며 지도자·임원·심판 등 축구계 내 다양한 계층의 이름이 오른 것으로 전해졌는데, 최성국 등 2011년 당시 K리그 승부조작 사건에 연루됐던 선수 출신 48명도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큰 충격을 줬다. 사실상 승부조작 사건 연루자들을 위한 사면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협회는 보도자료를 통해 “기본적으로 승부조작에 대한 협회의 입장은 달라진 게 없다” 혹은 “승부조작에서 비위 정도가 큰 인물들은 뺐다”라며 나름의 합리적 결정이었음을 강조하긴 했다. 하지만 이 결정은, 아무리 해명하고 의미를 부여한다고 한들 ‘영구 퇴출’이 기준이었던 승부조작 혐의자에게 세월이 흐르면 잊히고 재기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줬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2011년 K리그 승부조작 사건뿐만 아니라 이후 몇 차례 빚어졌던 심판 매수 사건 등에 연루된 이들에게 협회와 언론, 팬들이 일심하여 일벌백계를 했던 이유는, 단순히 감정상 미움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이 땅의 축구계에서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는 본을 세운다는 의미였다. 승부조작이나 불법도박에 얼룩진 나라의 축구계가 어떻게 망가졌는지를 모두가 잘 알기에, 이들에게 아예 설 자리를 주지 않는 가혹한 징계를 내려야만 한다는 커다란 공감대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승부조작 선수에 대한 사면 얘기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2013년에도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승부조작 선수에 대한 사면이 논의된 적이 있었다. 이때 팬들이 전국 곳곳에서 경기장 내 시위를 벌이는 등 들불처럼 일어서서 반발했고, 대한축구협회도 결국 프로연맹의 뜻을 받아주지 않았다.

사건이 벌어진지 2년 밖에 되지 않은 시점이었기에 그 충격의 여파가 컸을 수도 있겠지만,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변하지 않아야 할 가치에 대해 인식을 모든 구성원들이 강하게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엄중한 자세로 가장 무게 중심을 잡고 있어야 할 협회가 변했다. 이번 결정을 통해 승부조작은 10년 정도 지나면 용서받을 수 있는 수준의 죄가 됐다.

더 황당한 건, 마치 ‘막장 정치극’에서나 볼 법한 날치기로 통과됐다는 점이다. 차라리 10년 전 사면 추진 논란 때는 그래도 결정 직전에 부랴부랴 크게 논란이 되어 여러 의견이 수렴되는 과정을 거쳤었다. 팬들의 시위도 그 의견의 표현이었다. 시위라는 거친 표현을 통해서였지만 적어도 공론화 과정은 거쳤다.

그런데 이번에는 불 보듯 뻔하게 거세게 반대할 팬들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려는 듯한 의사 결정 과정을 보였다. 28일 저녁 8시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우루과이전 직전에 전격전을 치르듯 발표한 건, 협회의 해명이 어떠하든 ‘날치기’라는 평가를 피하기 힘들다.

그 날치기 때문에 축구계 내부의 화합을 위해 사면령을 내렸다는 취지는 무색하게 됐다. 아니, 외려 더 큰 분란을 낳고 있다. 대한축구협회는 단순히 축구인들만의 이익단체가 아니다. 협회는 이 결정을 통해 가장 고귀하게 여겨야 할 팬들을 배신했다. 그들은 ‘대한축구인협회’으로 전락했다.

글=김태석 기자(ktsek77@soccerbest11.co.kr)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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