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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일레븐)

▲ 김태석의 축구 한 잔

1990년 전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 한 축구 유망주가 있었다. 늘 허리춤에 축구공을 끼고 돌아다니며 미래의 축구 스타를 꿈꿨던 어린 선수였다. 학교까지 빼먹으며 거리에서 축구를 즐기며 실력을 무럭무럭 키워나갔다. 이 어린 선수의 꿈은 분명했다. 미래에는 펠레나 지쿠 못잖은 슈퍼스타 축구 선수가 되는 것, 하지만 그렇게 먼 미래까지 내다볼 처지는 아니었다. 속된 말로 뼈 빠지게 가난했기 때문이다.

얼마나 가난했는지 이런 일화도 있다. 어느 날 리우데자네이루 명문 클럽 플라멩구가 이 어린 선수의 무궁무진한 잠재성을 알아보고 연습생 자격으로 유스팀에 불렀다. 플라멩구의 부름을 받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브라질에서도 손꼽힐 정도의 재능을 가진 유망주에게나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 유망주는 가난 때문에 플라멩구가 내민 손을 잡지 못했다. 그에게는 플라멩구 훈련장과 집을 오갈 차비가 없었다. 심지어 어머니 소냐 도스 산투스는 그 가난 때문에 축구를 그만두라고 윽박지르기까지 했다. 축구보다 먹고 사는 문제가 더 중했으니 그럴 수밖에. 그 정도로 가난했다. 어지간한 선수였다면 여기서 그의 꿈을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오갈 데 없던 이 선수는 ‘귀인(貴人)’을 만나게 된다. 제대로 된 훈련을 받지 못했음에도 축구공만 잡으면 독보적인 실력을 뽐내던 이 유망주의 자질을 한눈에 알아본 이가 있었다. 현역 시절 1970 FIFA 멕시코 월드컵서 펠레와 함께 브라질에 우승을 안긴 ‘슈퍼 크랙’ 자이르지뉴였다.

자이르지뉴는 이 선수를 인근 지역의 작은 클럽인 상 크리스토방으로 데려가 정식으로 축구를 가르쳤다. 3년 동안 상 크리스토방에서 부지런히 실력을 연마한 이 선수는, 자이르지뉴의 예상대로 엄청난 성장세를 보이게 된다.

만 16세의 나이로 벨루 오리존치 연고의 명문 크루제이루에 입단하더니 곧바로 1군으로 자리했는데, 캄페오나투 브라질레이루 세리 A(브라질 전국 1부리그)·1994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등 남미 최고 무대를 누비며 공식전 29경기에서 28골을 몰아치며 일약 ‘신데렐라’가 된다. 그리고 만 17세에 1994 FIFA 미국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승선했다.

스물이 갓 넘었던 1998 FIFA 프랑스 월드컵 기점으로는 이미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가 됐고, ‘셀레상’의 일원으로서 두 번의 FIFA 월드컵 우승을 경험했다. 독일 레전드 미로슬라브 클로제에게 깨지긴 했지만 한때 FIFA 월드컵 본선 최다 득점 기록까지도 가지고 있었다.

이쯤이면 축구 팬들은 모두 이 이야기의 주인공을 눈치 챘을 것이다. 이 유망주의 이름은 호나우두 루이스 나자리우 지 리마, 바로 한국에서 영 이미지가 좋지 않은 포르투갈의 그 크리스티아누가 아닌 브라질의 원조 ‘RONALDO’다.

호나우두의 이야기를 굳이 이렇게까지 장황하게 설명한 이유가 있다. 밑바닥에서부터 세계 최고의 경지에 오른, 그리고 데뷔 후 은퇴할 때까지 늘 세계 최고 선수로 꼽힌 호나우두의 동화가 가능했던 건 가장 힘들 때 손을 내밀어 길을 터주고 심지어 에이전트 역할까지 맡았던 ‘참 스승’ 자이르지뉴가 있었다는 걸 최근 우리네 축구계에서 있었던 일에 비추어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최근 두세 달 사이에 축구계가 매우 어수선했다. 이제는 구속 수감되는 이까지 나타났을 정도로 사건이 수면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다음 레벨로 올라가고 싶은 선수들은 있는 돈 없는 돈을 다 끌어다 에이전트와 감독, 그리고 프로팀 관계자들에게 건넸다. 오로지 실력과 잠재성으로 평가받아야 할 이들이 프로 기회를 얻기 위해 돈을 상납한 것이다.

도대체 선수가 프로팀에 입단하는 데 왜 돈이 필요한지도 의문이지만, 그보다 더 추악하고 슬픈 점이 있다. 그 어려운 상황에 놓인 축구 후배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자 길을 열어줘야 할 존재가 되어야 할 축구인들이 당연하다는 듯 금전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들이 성장할 때 그런 관행이 있었다는 이유로 잘못인 줄 몰랐다고 항변할 수도 있겠으나, 한 번만 생각해 보면 그릇된 일이라는 걸 누구나 다 안다. 그 돈은 필요가 없다.

항간에는 검찰이 이 사안을 두고 ‘취업 비리’로 규정하고 접근하고 있다는 말까지 들린다. 그게 아니라고 목소리 높일 일이 아니다. 어린 선수들은 프로의 문을 두드릴 때까지 많은 돈과 시간을 스스로 투자하며 스스로 단련해 왔다. 취업생들에 비춘다면 그 ‘스펙’을 갖추려고 정말 많은 노력을 한 셈이다.

하지만 정작 그 문턱에 왔을 때 적게는 몇백만 원부터 많게는 몇천만 원까지 큰돈이 필요하다는 걸 감히 생각이나 했을까? 그 상실감을 주는 이 중 가장 믿고 따라야 할 축구인이 포함된 건 정말 절망스러운 일이다. 1990년 가난 때문에 길거리를 방황하며 축구 선수의 꿈을 키우던 호나우두가 만약 한국인이었다면 일찌감치 축구를 그만 뒀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건 무엇 때문일까?

글=김태석 기자(ktsek77@soccerbest11.co.kr)
사진=ⓒgettyImages/게티이미지코리아(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브라질 매체 <플래닛 풋볼>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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