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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일레븐)

▲ 김태석의 축구 한 잔

아무렴 나랏일이 그리 중요하다는데 어떤 희생도 감수해야 한다는 발상은 당연하게 여기면서도 불편하다.

다른 나라보다 더욱 확고한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들이기에 함께 고민하고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그 방식은 매우 폭력적이고 비이성적이다. 일단 저질러놓고 적당한 보상책을 던지고 없었던 일처럼 잊는 식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는 정말 ‘찍’소리도 못하고 당하는 현실에 갑갑한 건 팬들 뿐이다.

파행으로 점철된 2023 제25회 세계스카우트 잼버리가 던진 폭탄이 전주 월드컵경기장을 거쳐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터졌다. 제대로 된 리허설 절차도 없이 일단 저지르고 본 K-팝 콘서트가 우리 뮤지션들의 실력과 내공 덕에 성황리에 마무리되면서 잼버리가 그래도 마지막은 멋지게 장식했다는 이상한 결론으로 끝나는 분위기다.

어렵게 모신 외부 손님에게 멋지고 친절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마음에서 시작한 발상이었다면 심정적으로 이해는 간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 그 자리를 줄곧 지켜 온 안방 손님들이 마치 거추장스러운 짐짝 취급을 받은 건 굉장히 불편하다.

심지어 한 국회의원은 잼버리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으니 지역 주민은 안방이라도 내어줘야 한다는 비상식적인 주장을 부끄럼없이 당당히도 했다. 잔치는 성대하게 열고 즐거워야 한다지만, 아무래 그래도 안방 주인들이 불편과 굴욕을 감수하면서까지 벌이는 잔치라는 건 없다. 그때부터는 민폐가 된다는 인식은 눈꼽만큼도 없었던 것이다. 이런 일을 벌이고도 긍정적인 반응을 원했다면, 가르치려고 들지말고 먼저 고개부터 숙이고 사죄와 읍소부터 해야했다.

돌고 돌아 서울 월드컵경기장을 내준 FC 서울 관계자들은 그저 벙어리 냉가슴이었다. 그의 반응을 보면 숫제 위기에 빠진 잼버리를 구하겠답시고 밀고 들어온 분위기였다.

물론 문체부와 정부는 망가진 서울 월드컵경기장 잔디를 완벽하게 보수할 수 있도록 보상책을 내놓겠다고 했다. FC 서울이 아닌 서울 FC라는 표현으로 말미암아 발생한 논란을 따지기에는, 프로스포츠에 대한 인지와 이해가 거의 없다시피 한 대상이라는 점을 떠올리니 그럴 만하겠다는 생각에 그저 넘어가자. 기대가 사치다.

다만, 한때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서울 월드컵경기장의 잔디가 가히 세계적인 수준에 오를 수 있도록 수년 간 들였던 FC 서울과 서울시설관리공단의 노력은 그런 돈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좀 거칠게 말해 잔뜩 두들겨 패고 고생했다며 맷값을 던지고 가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이 아닌가? 물론 병주고 약주고라는 근사한 표현이 있지만, 과정을 보면 때리고 맷값 주기라고 봐도 무방하다.

과거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논란 때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지만, 만만하면 스포츠인가 싶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과정은 좌우 정파적 이념을 떠나, 누구 하나할 것없이 전체주의적인 태도라 굉장히 거북하다.

돌이켜 보며 늘 그랬다. 스포츠계에서 곤란하다고 난색을 보이면, 아무 사정도 모르는 그들의 지지자와 함께 “어디 감히 나랏일을 하는데”라는 식으로 윽박지르고 기어이 관철시킨다.

그 난리를 피운 이들은 일이 끝나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사라지고, 남는 건 본래 그 자리에 있었던 상처받은 사람들뿐이다. 과연 이게 옳은 일인가? 우리 사회의 특성상 시쳇말로 까라해서 깠지만, 그렇다고 해서 희생이 당연한 게 아니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여기에도 이걸로 먹고 살며 웃고 즐기는 이들이 있다. 그것도 꽤 많다.

글=김태석 기자(ktsek77@soccerbest11.co.kr)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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