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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일레븐=영덕)

▲ 피치 피플

월드컵 레전드 FC

지난 7일 경북의 고즈넉한 지방 도시 영덕이 떠들썩했었다. ‘축구 고장’을 자처하는 영덕의 축구팬들이 삼삼오오 모여 영덕군민운동장에 자리해 누군가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주인공이 등장하자 환호와 박수로 환영했다. 이처럼 성대한 분위기 속에서 등장한 이들은 바로 과거 FIFA 월드컵을 누빈 우리 한국 축구의 레전드들이었다.

조병득·박경훈·강득수·구상범·조영증·김주성·이상윤·이태호·최순호·조민국·변병주·홍명보·이영진·최영일·하석주·김병지·이상헌·서동명 등 팬들이 쉽게 만날 수 없었던 열아홉 명의 전설들이 전국 곳곳에서 영덕에 모인 것이다. 그리고 과거 대표팀에서 그랬듯, 이번에는 ‘월드컵 레전드 FC’라는 이름으로 뭉쳤다.

월드컵 레전드 FC는 <베스트 일레븐>과 함께 하는 2023 영덕 풋볼 페스타의 일환으로 마련된 레전드 친선 경기와 클리닉 등 다양한 행사에 임했다. 비록 긴 세월이 흘러 머리가 희끗희끗해지고 군살 없던 몸에서 배가 나온 탓에 전성기 시절이 그 모습은 아니었어도 영덕 축구팬들은 그들의 모습 하나하나에 즐거워하고 집중했다. 그런데 이번에 모인 한국 축구 전설들도 모두가 행복해했다. 축구로 받은 사랑을 축구로 갚으려고 왔다가 무한히 ‘힐링’되는 시간을 가졌었다.

월드컵 레전드 FC가 탄생한 이유

박경훈 부산 아이파크 테크니컬 어드바이저는 <베스트 일레븐>과 만난 자리에서 “지난해 11울 월드컵 레전드 FC를 처음 소집했다”라며, “그간 우리가 축구로 받았던 사랑을 사회에 공헌하고 돌려주자는 취지에서 모였다. 특히 사회적으로 어려운 계층에 계신 분들을 돕기 위해 만들었다. 사실 유럽에서는 이런 레전드 매치나 모임 행사가 많고 거기서 많은 사회 공헌 활동을 하는데, 우리는 그런 움직임이 늦었다고 본다. 그래서 우리도 이걸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라고 ‘월드컵 레전드 FC’가 모인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FIFA 월드컵 본선 10회 연속 출전의 시작점인 1986 FIFA 멕시코 월드컵 멤버들은 월드컵 레전드 FC의 산파 구실을 했다. 여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김주성 대한축구협회 국장은 “한국 축구가 처음 월드컵 본선에 나섰던 대회인 1954 FIFA 스위스 월드컵 당시 뛰었던 선배님들이 모두 돌아가셨다”라는 점을 짚었다.

현재 FIFA 월드컵에 출전한 국가대표 출신 인물 중 가장 어른이 된 지금 축구팬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화려한 커리어를 누린 후배들과 함께 사회적으로 기여하고자 하는 게 바로 월드컵 레전드 FC의 출범 배경이다. 일단 1998 FIFA 프랑스 월드컵 멤버까지는 충실히 참가했는데, 이후 대회 멤버들까지 문호를 넓혀 월드컵 레전드 FC의 덩치를 키우고 사회 공헌 규모도 그만큼 크게 가져간다는 목표를 세웠다. 향후 월드컵 레전드 FC가 더욱 왕성한 활동을 가져갈 것이라고 기대되는 이유다.

한 자리에 모여 더 기쁜 월드컵 레전드 FC

축구로 받은 사랑을 축구로 되갚겠다는 걸 실천하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한자리에 모여 뜻을 모은다는 건 특히 그렇다. 월드컵 레전드들은 축구계 곳곳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지도자는 당연하고 행정가나 해설 위원, 혹은 개인 사업을 하는 이들도 있다. 박경훈 테크니컬 어드바이저의 말로는 “서너 사람이 모이는 것도 힘들다”라고 한다. 그래선지 월드컵 레전드 FC라는 이름으로 한자리에 모인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었다. 참석한 레전드들의 표정도 하나같이 밝았다.

“이번 행사를 통해 영덕 지역의 어린 골키퍼를 만나 약간이나마 가르칠 수 있었다는 것에 기뻤다”라며 행사 참가 소감을 밝힌 김병지 강원 FC 대표이사는 “의미 있는 일들을 위해 선배님들께서 시간을 내주셔서 한자리에 모였다는 것에 즐거웠다. 모두가 축구로 받은 사랑을 되돌려줘야 한다는 뜻이 모였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라고 말했다.

이어 “저 역시 은퇴를 한 덕에 자연스럽게 OB 모임으로 가게 된 건데, 여기서는 막내다. 그런데 선수 시절 때 은사님들도 많고, 경기를 같이 뛴 선배님들도 많아 그저 친숙하다. 아마 시대가 변했기 때문에 ‘빠따’는 치시지 못할 것”이라고 웃으며 농담을 남기기도 했다.

이상윤 축구 해설위원은 도리어 월드컵 레전드 FC가 참가한 레전드들에게 힐링이 된다고 봤다. 이상윤 해설위원은 “월드컵에 나갔던 선배님들, 어찌 보면 사람들의 뇌리에 잊혀져가는 분들이지 않느냐”라고 운을 뗀 후, “그래도 이 월드컵 레전드 FC를 통해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팬들을 위해, 그리고 큰 사랑을 주신 사회에 하나로 뭉쳐서 뭔가 하나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그리고 후배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이런 활동을 통해 잊히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행사가 열린 영덕군 관계자들은 이 위원의 이런 견해를 사전에 접하고 적극 공감하는 모습이었다. 영덕군은 참여한 레전드들을 ‘은퇴한 축구인’이 아닌 ‘선수’로서 예우했다.

전설들을 잊지 않은 팬들, 그 팬들 덕에 힐링을 얻었던 월드컵 레전드 FC

그런데 행사가 걱정되었던 부분이 있었다. 바로 이 위원이 짚은 지점이다. 가장 막내가 1998 FIFA 프랑스 월드컵 멤버다.

무려 25년이 흘렀다. 이 25년 동안 한국 축구계에 어떤 일이 있었을까? 수원공고에서 뛰다 명지대로 진학한 ‘흙속의 진주’ 박지성이 프로에서 데뷔해 국가대표팀과 유럽에서 맹활약하고 은퇴까지 하고 전북 현대의 테크니컬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다. 그 정도로 긴 시간이다. 이 위원이 잊히고 있다고 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그런데 ‘축구 고장’ 영덕의 분위기는 달랐다. 클리닉을 받는 어린 축구 선수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수많은 영덕군민들이 어렸을 적 TV에서나 보던 레전드들을 보기 위해 영덕군민운동장에 모였다. 나이 지긋한 한 ‘올드팬’은 “사인을 받으려고 했는데 마땅한 종이가 없다. 옷에다 받아야 하나”라고 말했을 정도다.

그런가 하면 한 팬은 레전드들의 현역 시절 모습이 담긴 사진을 인화해 사진첩을 가지고 왔다. 이 팬은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쉽게 만날 수 없었던 레전드들의 친필 사인을 받으려 했다. 이런 분위기 덕에 영덕은 레전드들이 한창 현역으로 활동하던 그 시절에서 시간이 멈춘 듯했다.

하석주 아주대 감독은 그 모습에 즐거워했다. 하 감독은 “어린 친구들은 잘 모르겠지만, 이곳에 이 지역의 ‘골수팬’ 혹은 ‘올드팬’들은 다 알고 있더라. 그 정도로 이번 행사에 참여한 분들은 모두 유명했던 레전드”라며 “그런 모습을 어린 선수들도 보고 있다. 그래서 이런 행사를 통해 이 지역의 축구 저변 확대에도 도움이 되니 뿌듯하다. 이렇게 한 자리에 모여서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 기쁘다. 1년에 한두 번 정도는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지고 싶다”라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월드컵 레전드들은 모두 잠깐 시간을 내어 영덕에 모인 후 축구로 보답하겠다는 정도로 행사에 임했을 수 있다. 하지만 떠나는 순간에는 모두가 행복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월드컵 레전드들도 힐링한 분위기였다. 월드컵 레전드 FC는 팬은 물론 그 시절의 축구 영웅에게도 즐거운 자리였다.

글=김태석 기자(ktsek77@soccerbest11.co.kr)
사진=김정욱 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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