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스트 일레븐=목포)
전북 현대에서 앳된 얼굴을 한 채 프로 데뷔를 했던 수문장 이범수가 돌고 돌아 8년 만에 친정팀 전북으로 돌아왔다. 첫 친정팀으로 돌아오는 것도 흔하지 않은 일인데, 친형 이범영 골키퍼가 전북을 떠나 수원 FC로 이적하자마자, 이범수가 전북에 합류해 형이 떠난 자리를 메우게 됐다. 참 기가 막힌 인연이다.
지난 2010년 전북에 입단한 이범수는 서울 이랜드로 떠난 2014년까지 5년간 전북에 머물렀다. 짧지 않은 시간이다. 사실 전북에서 보낸 5년은 이범수에게 좋은 기억보다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다. 5년 동안 3경기 출전에 그치며, 프로 무대의 냉혹한 현실을 몸소 체험해야 했기 때문이다. 매 시즌 K리그 정상을 넘보는 전북이란 팀에 ‘풋내기’ 신인으로 입단했으니, 충분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이범수는 다시 한 번 당당히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제는 K리그 통산 124경기를 소화한 ‘베테랑 골키퍼’가 됐다. 전북이 8년 사이 K리그 최고의 팀으로 성장한 만큼, 이범수도 경남 FC, 강원 FC를 거쳐 성장하며 굳은살이 제법 생겼다. 충분히 가치 있는 도전이란 생각이다.
<베스트일레븐>이 전북의 전지훈련지 목포에서 이범수를 직접 만나, 용감한 도전을 결심한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b11: 돌고 돌아서 프로 데뷔했던 전북으로 8년 만에 돌아왔어요. 기분이 어떤가요?
“전북이라는 팀에 다시는 못 올 거라는 생각으로 떠났었는데, 이렇게 다시 오게 되니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네요. 프로 생활 중 5년을 전북에서 보냈어요. 가장 오래 머물렀던 팀이기도 하고, 워낙 힘든 시간을 보낸 곳이기도 해요. 설레기도 하고, 다시 도전하는 기분이 들어요.”
b11: 신인 시절이 새록새록 떠올랐을 것 같아요.
“네, 그때는 기라성 같은 선배님들이 많았고, 저는 주축 선수가 아니다 보니까 항상 뒤에서 묵묵히 운동하면서 이를 갈아야 했어요. ‘언젠가 기회가 오면 이렇게 해야지’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기회를 얻지 못했죠. 말이 5년이지, 정말 긴 세월이잖아요. 저를 더 간절하게 만든 시간이었어요.”
b11: 8년 동안 전북도, 이범수 선수도 많은 변화가 있었을 텐데, 구체적으로 어떤 차이점이 있는 것 같나요?
“전북은 항상 우승을 목표로 하는 팀이잖아요. 매년 우승하면서 더 강한 팀이 됐고, 전북이란 팀의 위상이 높아진 것 같아요. K리그 최고의 팀이 됐는데, 그런 전북에 다시 오게 되니 인정받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사실 전북에서 제가 살아남기가 쉽지 않았어요. 그때의 저는 많이 부족하고 나약하고, 뒤에서 훈련만 하는 선수였어요. 하지만 이젠 경쟁 구도를 형성하고 언제든지 경기에 투입될 수 있는 선수가 된 것 같아 뿌듯해요. 떠났던 팀에 다시 돌아오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발전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b11: 팀 적응은 잘 하고 있나요?
“(이)승기 형, (최)철순이 형은 워낙 어렸을 때부터 함께했고, 제가 힘들었을 때 많이 챙겨주셨거든요. 어제 본 것처럼 편하더라고요. 덕분에 잘 적응하고 있어요. 승기 형과는 같은 방을 쓰고 있어요. 저도 이제 적지 않은 나이인데, 방의 막내가 됐죠.(웃음)”
b11: 김상식 감독과도 함께 선수 시절을 보냈잖아요. 감독님은 그때 당시 어떤 선배였나요?
“저와 나이 차이가 컸기 때문에 마냥 편한 선배는 아니었지만, 선수들과 농담하는 걸 좋아하시고 최대한 편하게 대해주셨어요. 선수단을 아우르는 분위기 메이커셨죠. 제가 전북에 돌아오고 나서 ‘왜 이렇게 살이 빠졌느냐’고 하시더라고요. 감독님이 되셔서 그런지 이제는 할 말만 딱 하시는 것 같아요.(웃음)”
b11: 경남, 강원에서 주전으로 나서기도 했지만 백업 골키퍼로 있던 시간이 적지 않았는데, 그 시간을 어떻게 버텼는지 궁금해요.
“경남, 강원에서는 운 좋게도 경기에 뛸 수 있는 상황이 됐지만, 사실 프로 생활을 하면서 힘들지 않은 시즌이 없었던 것 같아요. 항상 고비를 맞고 벽에 부딪혔죠. 그때마다 어떻게 하면 경기를 뛸 수 있을까, 나를 어필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제 자신을 더 다지려고 노력했어요. 감독님에게 찾아가서 기회를 달라고 이야기도 해보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경기에 뛰려고 노력했죠. 그러다보니 기회가 오지 않았나 싶어요.”
b11: 전북은 송범근 선수가 현재 주전을 확고하게 다진 상태잖아요. 전북행을 결심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네, 쉽지 않았어요. 어떻게 보면 모험이 될 수도 있죠. 두 번째 골키퍼를 생각해두고 (송)범근이랑 경쟁해야 하는 상황인데, 그래도 예전과 비교했을 때 전혀 다른 제가 됐으니까 그 부분을 잘 어필해야겠다 생각했어요. 물론 범근이가 더 많은 기회를 받겠지만, 그 사이에 기회를 노린다면 충분히 경쟁력을 보여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b11: 어떤 부분을 어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요?
“좀 더 공격적이라고 해야 될까요. 빌드업 과정에 도움이 되기 위해 발을 많이 쓰려고 하고 활동 반경을 넓게 가져가려는 편인데, 그런 부분에서는 강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골키퍼로서 선방도 자신 있습니다.”
b11: ‘대선배’ 이운재 코치의 지도를 받게 됐는데, 직접 경험해보니 어떤가요?
“확실히 경험이 많으시다는 게 느껴집니다. 자세나 특징 등 디테일한 포인트를 잘 잡아주세요. 동작만 보고도 문제점을 잘 잡아주시더라고요. ‘아, 내가 이런 동작을 했을 때 공이 뜨는구나’ 등 많은 걸 느끼게 돼요. 많은 것들을 배우면서 더 발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b11: 형 이범영 선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는데요. 형이 전북을 떠나 수원 FC로 이적한 뒤 곧바로 이범수 선수가 전북에 합류했어요.
“강원에서도 형이 팀을 떠나고 1년 뒤 제가 강원으로 이적했는데, 제가 머물던 팀에 형이 가거나 형이 머문 팀에 제가 가는 상황이 자주 생기더라고요. 운명이라고 생각해요.(웃음) 형이 전북에 잘해오면서 좋은 이미지를 쌓아온 덕분에 제가 전북에 다시 올 수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요.”
b11: 이범영 선수가 전북 생활 팁을 많이 줬을 것 같은데요.
“제가 이것 저것 많이 물어봤어요. 집은 어디가 좋은지, 전북의 훈련 스타일 등 사소하지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부분들을 형이 많이 알려줬어요.”
b11: 공교롭게도 형 이범영 선수가 이적하면서 공번이 된 등번호 1번을 달게 됐어요.
“저는 그동안 25번을 주로 달았는데, 전북에서는 (최)철순이 형이 오랫동안 25번을 달고 뛰었잖아요. 그래서 25번은 차마 건드리지 못하겠더라고요.(웃음) 마침 1번이 공번이기도 했고, 형이 달았던 번호를 이어받아서 달면 좋겠다 싶어 1번을 선택했어요.”
b11: 형제가 축구선수로 활약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형제 골키퍼’는 전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경우잖아요.
“형제가 모두 골키퍼로 활약하는 건 전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선수는 거의 없는 걸로 알고 있어요. 사실 저는 필드 플레이어를 하고 싶었어요. 테스트를 보는 와중에 골키퍼 코치님께서 신체조건 등을 이유로 저를 마음에 들어 하시더라고요. 필드 플레이어를 하고 싶긴 했지만, 축구를 하고 싶단 마음이 더 커서 ‘알겠다’라고 답하면서 골키퍼에 발을 들이게 됐어요.”
b11: 공교롭게도 형 이범영 선수가 있는 수원 FC와 K리그 개막전이 성사됐어요. 형제가 맞대결을 펼치는 모습도 기대해볼 수 있는 상황이 됐네요.
“감독님께서 어떤 선택을 하실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형과 함께 선발 출전해서 맞대결을 꼭 한 번 펼치고 싶어요. 아직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거든요. 형이 뛰면 제가 벤치에 있고, 제가 뛰게 되면 형이 벤치에 있었어요. 부모님의 꿈이기도 해요. 언젠가는 꼭, 그리고 최대한 빨리 이뤄졌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되면 부모님은 어떻게 응원하시냐고요? 어머니, 아버지가 유니폼을 반반씩 나눠 입고 응원하시지 않을까요.(웃음)”
b11: ‘돌마 커플’이라는 유튜브 채널도 개설해서 운영하고 있는데, 미래를 고민한 흔적이 보이더라고요. 어떤 계기로 유튜브를 시작했나요?
“경기에 뛰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사실 축구를 그만두려고 했던 적도 있었어요. 경기 출전을 위해 노력하는데도 마음먹은 대로 풀리지 않다보니, 경남으로 가기 전에는 가족들에게 축구를 그만두겠다고 했죠. 그런데 아버지께서 ‘딱 1년만 더 해보자. 1년만 더 해보고 그만둬도 늦지 않는다’라며 만류하셨어요. 꿈이 잡힐 듯 계속 잡히지 않다보니 이범수라는 사람이 불쌍해지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때부터 은퇴 후 진로에 대한 준비를 해놓지 않으면 나중에 막막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중 한 가지 방법으로 유튜브를 시작하게 됐어요.”
b11: 이번 겨울에는 지도자 교육도 받았다고 들었어요.
“네, 지난 시즌을 마치고 3급 지도자 자격증을 땄어요. 미래에 어떤 길로 가야할지 아직 결정한 건 아니지만, 뭐든 준비해놓자는 생각으로 하나씩 다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축구만큼 행복한 게 없더라고요.”
b11: 올 시즌 개인적인 목표는 무엇인가요?
“전북에 다시 돌아왔기 때문에 ‘제가 그동안 이만큼 성장했고, 그때의 나약하고 부족했던 이범수가 아니에요’라는 걸 보여드리고 싶어요. 전북 팬 분들 앞에서 제 실력을 증명해보이고, 팬들의 환호도 받아보고 싶어요.”
b11: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려요.
“저를 기억해주시는 팬들이 계실지 잘 모르겠어요.(웃음) 전북은 첫 친정팀이고 제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반겨주신 팬 분들도 있었는데, 제 역량을 발휘해서 전북에 걸맞은 선수로 거듭나겠습니다. 전북에서 경기에 나서지 못했던 신인 시절부터 저를 응원해준 전북 팬도 있는데, 그저 그런 선수였던 저를 묵묵하게 응원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글=유지선 기자(jisun22811@soccerbest11.co.kr)
사진=베스트일레븐, 한국프로축구연맹, 전북 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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