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스트 일레븐=안탈리아/터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남자 A대표팀이 10회 연속 월드컵 진출을 위해 터키에서 달아오른다. 이 영광의 '로얄 로드'로 걷는 벤투호를 터키 현지에서 밀착 취재한다. 취재 과정에서 나온 비하인드 스토리를 이 코너에 담는다. 유튜브 예능 '터키즈 온 더 블록'에서 본딴, 조영훈 기자의 '터키즈'다. <편집자 주>
21일 몰도바전이 터키 안탈리아 마르단 스타디움에서 열렸습니다. 전날 밤에 도착해 시차 적응이 되지 않은 채로, A매치 취재를 가야 했습니다. 사족이지만, 제 첫 해외 A매치였습니다. 3년차 햇병아리 기자인데다가, 지난 2년을 꼬박 코로나19로 해외출장이 불가능했거든요.
대표팀 훈련장인 코넬리아 다이아몬드 리조트와 몰도바전이 열린 마르단 스타디움은 17㎞ 거리. 경비를 아끼기로 결심했으나, 행군도 아닌 이상 도저히 걸을 만한 거리는 아니었습니다. 리셉션으로 가서 택시를 불렀죠.
그렇게 만난 터키 기사님은 쾌활했습니다. 우리가 말이 통할 가능성은 “마르단” 한 단어에 있었고, R 발음을 굴리니 다행히도 잘 알아주셨습니다.
코로나19 확산 이전, 해외여행을 가면 늘 택시비에 주의를 기울이는 편이었습니다. 외국인이라고 바가지 쓰기 일쑤고, 그 찝찝함은 해소가 잘 안 됩니다. INFJ라서 그런 걸까요?
우려와 달리 기사님은 바로 미터기를 켰습니다. 리조트에서 나와 대로에 들어가려는 찰나, 총을 든 경찰이 보였고, 택시 기사 면허를 확인했습니다. 저는 잠시 동공을 굴렸으나 이내 돌아오시는 기사님을 보고 가슴을 쓸어내렸죠.

안탈리아는 축구 경기장이 많습니다. 하늘이 내린 전지훈련지죠. 기사님은 마르단 스타디움이 택시를 타고 가기에는 부담스러운 곳이라고 느꼈는지, 중간중간 “이곳은 아니냐”라고 물었습니다. 감사했죠.
일교차가 컸습니다. 완연한 한국의 가을 날씨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비만 오지 않으면, 정오 무렵 햇살이 얼굴을 덥힙니다. 현지 시각으로 오후 2시 경기였으니, 오롯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기분 좋은 운행을 마치고 택시에서 내리며 영수증을 써달라고 요구했습니다. 20분간 완벽한 운행을 제공했던 기사님은 “돌아갈 때도 이 택시 타면 합쳐서 써주겠다”라고 말했습니다. 말을 알아 들었냐고요? 아니요. 그러나 맹세코 언어적 및 비언어적 표현이 이 의미였습니다. 기사님은 언제 일이 끝나는지 물었고, 영어로 대화가 안 되니 핸드폰에 17을 적었습니다. 17시에 끝난다는 의미였죠. 전 그렇게 그분 명함을 받았습니다. 솔직히 좀 별로였습니다.
실제로 취재를 마치고 감독 및 선수 인터뷰 기사를 작성하고 나니 정확히 16시 44분이었습니다. 기사님께 전화를 해야겠다는 생각과 정문을 나서는 찰나, 노란 택시 앞 담배를 피우고 있는 한 기사님이 보였습니다. 바로 그분이었죠.
솔직히 외국에서 그보다 위안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마치 오래된 친구를 만난 것 같은 감정이었죠. 우리는 말이 안 통했지만 “빨리 오셨네요?”, “온다고 했지?” 등의 대화를 주고받았습니다. 돌아가는 길은 빨랐고, 저는 올 때보다 5분 줄어든 15분 만에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기사님과 저는 이해관계로 다져진 인연이었습니다. 기사님은 왕복 택시비면 ‘더블’을 벌고, 저는 택시 부르기 힘든 마르단 스타디움에서 빠르게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이 완벽하게 맞아 떨어진 이해관계는 서로에게 그만큼의 완벽한 행복을 줬습니다.
글=조영훈 기자(younghcho@soccerbest11.co.kr)
사진=조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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