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스트 일레븐=베이루트/레바논)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남자 A대표팀이 10회 연속 월드컵 진출을 위해 안탈리아에서 달아오른다. 이 영광의 '로얄 로드'로 걷는 벤투호를 터키 현지에서 밀착 취재한다. 취재 과정에서 나온 비하인드 스토리를 이 코너에 담는다. 유튜브 예능 '터키즈 온 더 블록'에서 본딴, 조영훈 기자의 '터키즈'다. 대표팀 일정에 따라 레바논·아랍에미리트 두바이로 이동하면서 '터키즈’라는 이름을 계속 쓸 수 없었다. 고민 끝에 간단하게 생각했다. 현지 국가에 따라 이름에 변화를 줬다. <편집자 주>
정말 귀중한 승리였습니다. 레바논과 일전을 늘 어려웠습니다. 한국은 지난 3년간 치른 레바논전을 모두 1골차 승리 혹은 무승부로 마무리했습니다. 이번에도 한 골 차 승리였습니다만, 10연속 월드컵 진출을 조기에 확정지을 수 있는 교두보 같은 승점 3이었다는 점에서 매우 만족할만 했습니다.
더군다나 이날은 레바논 홈 관중이 들어선 경기였습니다. 육성 응원 금지 같은 게 있을 리가 만무한 현지 상황입니다. 많은 관중이 찾은 건 아니지만, 그들이 내뿜는 열기는 분명 홈팀에 큰 힘이 됐을 텝니다.
현장 취재를 마치고 기자 선배들과 우버를 잡고 베이루트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선배들과 다른 숙소에 묵고 있어 한 차례 더 우버를 잡았습니다. 택시를 잡고 목적지를 말한 후 “오늘 축구 봤느냐”라고 물었습니다.
멋진 마쓰다 차량을 모는 우버 기사 아이싸는 “그럴 시간이 없었다. 오늘은 매우 바쁜 하루를 보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살짝 미안해졌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지 시각으로 평일 오후 2시에 열리는 경기였고, 레바논은 전력이 부족해 한국전을 낮 경기로 치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생업에 뛰어드는 이들에겐 축구 경기란 사치일지도 모릅니다. 동정이나, 측은함이 담긴 시선을 보내려는 게 아닙니다. 진심으로 물어본 걸 후회했습니다.
잠시 침묵이 흐르다가 아이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국이 1-0으로 이기지 않았나? 역시 강팀이다. 우리는 축구가 희망이다. 나라에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축구는 현장에 가서 ‘직관’하지 않는 이상, 무료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이나 다름없습니다. 현장에서는 레바논 관중이 모여 파도타기를 하며 목 놓아 승리를 바랐습니다. 아마 비슷한 궤일 겁니다.

베이루트에 도착해 네다섯 번 우버를 탔습니다. 비단 아이싸 뿐만 아니라 제가 만난 모든 기사는 레바논의 전력 부족과 경제난을 하나 같이 이야기했습니다. 굳이 베이루트 폭발 사고나 인플레이션에 따른 물가 상승률 등 수치를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이미 이번 레바논전을 앞두고 현장을 찾은 기자들을 통해 수없이 나온 내용을 도돌이표처럼 반복하는 것뿐입니다.
아이싸는 “한국은 정부와 기관의 지원을 받지만, 레바논 대표팀은 그런 걸 기대할 수 없다. 그들은 그냥 스스로 잘해야 한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으려고 한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이반 하섹 레바논 감독은 이날 경기 후 기자회견에 참석해 “축하한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가장 강한 팀 중 하나다. 좋은 경험을 했다. 우리는 좋은 기회를 얻었으나, 결국 득점하지 못했다. 우리에게는 매일이 소중하다. 많은 선수들이 부상과 코로나19로 스쿼드에 들지 못했다. 우리는 4일이 있다. 정신력을 챙기고 승리하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이 발언 중 “우리에게는 매일이 소중하다”라는 대목을 짚고 싶습니다. 현재 레바논은 축구 내적으로는 물론, 외적으로도 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였습니다. 강호 한국을 늘 쩔쩔매게 만들었던 그 경기력, 아마도 ‘매일을 소중하게 사는’ 정신력에서 나온 게 아닐지 싶습니다.
글=조영훈 기자(younghcho@soccerbest11.co.kr)
사진=조영훈 기자, 대한축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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