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스트 일레븐=남해)
대중이 이용래의 이름을 뇌리에 각인한 시기는 대략 11년 전이다. 2011 AFC(아시아축구연맹)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활약한 이용래는 대회 내내 중원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뽐냈다. '진공 청소기'라는 닉네임이 곧바로 생겨날 만큼 대단했는데, 지금은 대구 FC 사장으로 있는 당시 조광래 감독의 페르소나 중 1명이 바로 이용래였다.
찬란한 시기를 보냈던 이용래도 어느덧 30대 중반이 됐다. 지금은 해외 커리어를 마치고 국내에 돌아와 대구에서 황혼기를 보내고 있다. 나이는 찼지만 이용래는 여전하다. 예전만큼 폭발력은 떨어져도, 노련미로 대구 중원에서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실은 플레잉 코치인 줄 알고 왔던 대구에서 지난 시즌 30경기를 넘게 뛰었을 정도다. 오죽하면 ‘취업 사기’라는 말까지 나왔다.
사실 ‘취업 사기’라는 문구조차 이용래에게는 행복이다. 자부심이다. 선수라면 은퇴하는 그 순간까지 달리는 걸 소망할 수밖에 없고, 선수인 이용래에겐 그라운드를 누비는 시간이 그저 감사하고 행복할 따름이다. 30대 중반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피치에서 ‘살아 있다’는 걸 확인한다는 느낌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소중하다.
이용래는 <베스트 일레븐>을 통해 2022시즌도 '단단하게'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태국에서 함께 영광을 만들었던 가마 감독과 운명처럼 재회했고, 이제 익숙한 사령탑 그리고 동료들과 함께 원대한 목표에 도전하려 한다. 베테랑은 지금 느낌이 온다. 우승을 외친 대구가 능히 해낼 수 있다는 믿음에 차 있다.

b11: 궁금해서 다시 한 번 물어봅니다. 진짜 대구에 플레잉 코치로 알고 오신 거 맞죠?
“맞아요. 사실은 플레잉 코치로 왔어요! 처음에는 대구가 워낙 어린 선수도 많으니 제가 뒤에서 서포트하며 훈련을 같이 하는 수준이라고 생각했죠. 그러다가 상황에 따라 부상자가 발생하면 조금이나마 도움을 보태는 정도? 그런데 생각보다는 좀 많이 나왔죠(웃음).”
b11: 2021년 K리그1과 FA컵과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합쳐서 32경기 나오셨더라고요.
“사실 오랜만에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걱정이 됐어요. 태국에서 3년 동안 있다가 왔잖아요. ‘과연 팀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싶었죠. 솔직히 나이가 나이인지라 자신감이 막 넘쳐나진 않았어요. 무엇보다도 ‘K리그 템포에 따라갈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있었죠. 그런데 이게 또 경기 기회를 받고 계속 나서다 보니 되더라고요. 주위 선수들이 워낙 잘 도와준 것도 있고요. 그런 와중에 제가 뛰면서 팀 성적도 좋은 상황이 되니 자신감이 살아났습니다. ‘어, 아직 되네’라는 확신이 생기며 ‘잘 해봐야지’라는 욕심도 조금은 생겼습니다(웃음).”
b11: 2021시즌 K리그1을 뛰며 ‘아직 내가 경쟁력이 있구나’라고 느낀 순간은 언제였을까요?
“아무래도 젊었을 때는 공수를 바쁘게 오가긴 했죠. 그런데 지금은 두 영역에 모두 관여하기 보다는, 수비적으로 비중을 두고 있는 게 사실이에요. 그렇게 수비에 포커스를 맞추니 오히려 내가 필요한 상황에서 ‘빛을 낼 수 있구나’라는 느낌이 오더라고요.”
b11: 아무래도 팀 내 ‘큰형’인 이근호 형과 이야기를 많이 나눌 거 같습니다. 30대 중반 선수들끼리는 어떤 대화가 오가나요?
“그렇죠. 작년의 근호 형은 전 경기 엔트리에 다 들었더라고요. 저는 중간에 부상이나 경고 누적이 있어서 그렇지는 못했지만요. 근호 형과는 평상시에 식당에서도 같은 상에서 밥을 먹고 이런 저런 얘기를 많이 해요. 그러면서 ‘우리는 나이가 있으니까 무리하지는 말자. 관리하면서 해야지. 젊은 선수들이랑 똑같이 하면 탈이 난다’같은 이야기를 주고받죠(웃음). 확실히 몸 상태를 두고 말을 많이 하는 거 같습니다.”

b11: 대구 선수들이 말하길, 형들이 훈련 정말 열심히 받는다고 하더라고요.
“근호 형도, 저도, 훈련장에서는 어린 선수들을 비롯해 보는 눈이 많으니까 기본적으로 ‘해야 할 것’은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가마 감독님이 오시고 훈련 강도가 높아지기는 했는데, 선수들이 힘들어 하는 와중에 우리가 처진 분위기를 만들 수는 없잖아요. 그러면 안 좋은 게 전파가 될 수 있습니다. 때문에 힘들어도 티 안내려고 노력합니다. 어떻게든 100%를 쏟아내려고 해요.”
b11: ‘트로피 헌터’였던 가마 감독님과 태국에서 함께 있었습니다.
“태국에서도 훈련량이 엄청 많았어요. 한번은 제가 경기도 아닌데 훈련하다가 근육을 다친 적이 있었을 정도니까요. 그런데 지금도 변함없으시더라고요. 처음에 오셔서 ‘잘 지냈냐’라고 인사하며 제 가족 이야기를 좀 나누긴 했는데, 훈련에서는 여전히 배려가 없었습니다(웃음).”
b11: 치앙라이 유나이티드에서 뛸 때 가마 감독님과 트로피를 3개나 삼켰다고 들었습니다.
“2018년에 3개를 챙겼죠. 태국에서는 부리람 유나이티드나 무앙통 유나이티드가 강호인데, 가마 감독님이 치앙라이에 오시고 나서는 달라졌어요. 그렇게 트로피를 딱 몇 번 들고 나니까, 치앙라이가 명문으로 자리를 잡아가더라고요. 사실 태국 선수들이 전술적인 측면에서 약한 점이 있긴 해요. 하지만 가마 감독님의 120%를 쏟아 붓는 훈련으로 그런 단점을 극복했습니다. 감독님은 훈련하면 경기장에서 무조건 나온다는 신념을 가지고 계세요.”
b11: 중위권 클럽이 최상위권으로 도약할 시기의 내부자로서 느낀 게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가마 감독님과는 경남 FC에서도 함께 있었습니다. 일단은 앞서 이야기 드린 120%의 훈련이 정말 중요합니다. 그러면서 가마 감독님을 잘 따라가야죠. 그러다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목표에 닿을 수 있습니다. 지금 대구는 그때의 치앙라이보다는 리그 내부의 위치로 봤을 때 훨씬 좋아요. 이번에 잘 다진다면 또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b11: 베테랑의 감을 물어보고 싶습니다. 대구, 진짜 우승할 수 있을까요?
“‘우승을 한다’라…. 전북 현대와 울산 현대 같은 팀들은 우승을 생각하고 있으니, 이들을 이기는 게 우승이 되겠죠. 지난해를 보면 우리가 6연승을 달릴 때도 있었어요. 리그 2위까지 올라갔었는데, 그때 승점 관리를 더 잘했다면 선두권 경쟁도 가능했을 겁니다. 운도 따라야겠지만, 올해엔 그런 고비만 잘 넘긴다면 우승 경쟁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b11: 전북이나 울산과 직접 대결하면 어떤 느낌인가요?
“음… 전력에서는 전북이나 울산이 강할 수는 있겠죠. 그러나 대구는, 대구만의 색깔이 있습니다. 전원이 딱 수비를 한 뒤 역습으로 치고 나가는 강력함이 무기인데, 이런 장점을 집중적으로 살리면서 이번 시즌 발전을 꾀한다면 상대가 어느 팀이라도 이길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가 작년에 전북이랑 울산도 이겨봤어요. 제가 봤을 때 올해 대구 충분합니다. 더군다나 전북이나 울산과 붙을 때는 선수들의 동기부여도 상당합니다.”
b11: K리그에서 최고라고 불리는 세징야와 에드가 같은 외국인이랑 하고 있습니다. 이런 선수들 곁에서 보면 좀 어떤가요?
“대구 오기 전부터 외국인 선수들 이야기 많이 들었죠. 막상 와서 해보니 더 대단하더라고요. 정말 경기장에서 해결해 줄 수 있는 선수들입니다. 우리가 꼬여도, 어떻게든 풀어줄 거라는 믿음이 있어요. 제가 한국에 있을 때 겪어본 용병들 중에서는 세징야와 에드가가 최고입니다. 둘이 워낙 경기장에서 호흡도 잘 맞고요.”
b11: 플레잉 코치 보직도 받았던 만큼, 은퇴에 대한 생각도 개인적으로 많이 할 듯합니다.
“몸이 안 되면 떠나자고 준비는 합니다. 아직까지는 괜찮아요. 그런 고민에 빠지기보다는, 코앞에 닥친 훈련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시즌 들어가서도 찾아오는 한 경기, 한 경기를 마지막이라고 생각할 뿐입니다. 꿈꾸는 은퇴식 같은 건 지금까지는 생각해 본 적 없습니다. 일단 축구에 매진하고 싶어요.”

b11: 요즘 국가대표팀을 보면 어떤가요? 한때 투혼을 담았던 곳인데. 이용래의 이름을 알린 2011 AFC 카타르 아시안컵에 대한 기억은 여전히 생생할 거 같습니다.
“경기 볼 때마다 옛날 생각이 많이 나죠. 지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바라보며 열심히 응원합니다(웃음). 경기는 꼭 챙겨 봐요! 아시안컵은 제 축구 인생에 있어서 결코 잊을 수 없는 대회죠. 제 생애 가장 좋은 컨디션이었어요. 말 그대로 ‘최고치’였죠. 그때 하이라이트는 가끔 챙겨봅니다. 작년 시즌 앞두고도 그 경기에서 잘하던 제 모습을 보면서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곤 했어요.”
b11: 우승을 경험해봤던 선수로서, 우승에 도전하는 대구 동생들에게 도움이 될 이야기를 해준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한 시즌의 리그를 치르다 보면, 분면 좋은 상황과 안 좋은 상황이 교차합니다. 핵심은 ‘안 좋은 상황을 어떻게 풀어 가느냐’에요. 무엇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때가 찾아올 때마다 모두가 머리를 맞대 최선을 발견해야 합니다.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고, 힘을 받도록 해야 해요. 그래야 우승할 수 있습니다. 분위기가 안 좋을 때 서로 회피하면 안 됩니다. 누군가 희생하더라도, ‘지금 당장 팀이 어떻게 하면 잘 될까’를 반드시 고민해야 합니다.”
글=조남기 기자(jonamu@soccerbest11.co.kr)
사진=대구 FC, 한국프로축구연맹, ⓒgettyImages/게티이미지코리아(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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