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스트 일레븐=남해)
대구 FC의 ‘큰형’ 이근호. ‘태양의 아들’이라는 닉네임을 얻으며 오래 전 대구에서 만개했던 이근호는 여러 클럽을 돌고 돌아 다시금 대구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근호의 커리어의 ‘진짜 시작’이나 마찬가지였던 곳에서 황혼기를 보내고 있으니 선수로서는 참 뜻깊을 수밖에 없다.
이근호는 지난 시즌 대구에서 제몫을 해냈다. 별다른 부상 없이 한 시즌을 지속했고, 무려 42경기나 출장하며 4골 4도움을 올렸다. 노익장으로서 진가를 제대로 드러낸 셈이다. 그 덕에 이근호는 이번 시즌도 대구가 믿고 쓸 수 있는 카드 중 1장으로 기능한다. 예전보다 피지컬은 떨어졌을지언정, 시간이 흐를수록 숙성하는 와인처럼 노련미를 자랑할 수 있다.
대구는 이번 시즌 우승을 목표로 삼았다. 이근호는 패기 있게 나아가는 동생들을 아낌없이 지원 사격할 각오다.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정말로 대구가 태양을 삼키려면 무엇이 필요한지를 열거했다. 그러면서도 이근호는 <베스트 일레븐>을 통해 한 가지는 확실하게 짚어줬다. 지금 대구가 다른 어떤 팀과 비교해도 좋은 스쿼드를 갖췄다고 확신했다.

b11: 지난 시즌 이야기 먼저 해보려고 합니다.
“꾸준하게 엔트리에 들고 시즌을 마친 게 오랜만이어서 개인적으로는 만족합니다. 대구에서 관리를 잘 해주시기도 했고요.”
b11: 그러나 시즌 막판에 FA컵을 놓쳐서 너무 아쉬웠을 거 같아요.
“아, 이게 축구다. 딱 그거였어요. 정말 축구는 끝까지 모를 일입니다. 결승 2차전 때 변수가 생겼음에도 어떻게든 잘 따라갔는데, 마지막엔 결국 아쉬웠죠. 그래도 시즌 전체로 봤을 때는 팀이 잘 해냈다고 생각합니다. 리그에선 시즌 초반엔 어려움이 있었지만 극복했고,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에서도 어려운 환경에서 잘했습니다. 다만 마지막 FA컵이 아쉬워서 뒷맛이 개운치 않았던 점, 그게 안타까워요. 실은 잘했는데도, 오히려 퇴색한 느낌이랄까요? 그래도 지난 시즌의 안타까움이 이번 시즌 우리 선수들이 더 잘하는 계기가 될 거라고 봅니다.”
b11: 리그 3위라는 순위는 개인적으로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사실 2021시즌 시작하기 전에 축구계 전문가 분들이나 감독님들이 대구를 파이널 B로 예상한 게 많았어요. 그래서 우리들끼리는 ‘보여줘야겠다’라고 생각을 했죠. 초반엔은 솔직히 ‘어떡하지’라고 걱정도 했는데, 점점 좋아지는 걸 느끼면서 힘이 붙었어요. 우리가 선수단이 조금만 더 두꺼웠다면, 격리 기간 등이 없었다면, 훨씬 좋은 결과를 낼 수도 있었어요. 그만큼 기세가 좋은 2021년이었습니다.”
b11: 대구의 큰형, 팀의 동계 전지훈련 분위기는 어떤가요?
“동계는 1년을 보내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하죠. 더군다나 올해는 새 감독님도 오셨잖아요. 가마 감독님은 운동장에서 ‘타이트하게’ 하는 걸 좋아하세요. ‘실전처럼’ 모든 걸 쏟길 요구하시죠. 덕분에 선수들이 운동할 때 의욕과 눈빛이 살아있는 거 같아요. 전반적으로 대구의 동계 전지훈련은 잘 준비되고 있는 듯합니다.
b11: 국가대표 풀백 홍철도 오는 등 스쿼드가 좋아졌습니다. 현재 대구 스쿼드가 다른 팀과 비교하면 어떻다고 보시나요?
“좋은 거 같아요. 많이 바뀌지 않았고, 이름 있는 선수들도 보강이 됐죠. 가장 중요한 거는 츠바사가 나가긴 했어도 외국인이 거의 그대로라는 점입니다. ‘조직력’ 측면에서 분명 메리트가 있을 겁니다. 대구는 대구만의 분위기가 있어요. 이게 뭐랄까… 훈련할 때도 느껴져요. 다들 성실하고, 그 안에서 경쟁하고, 부족하면 그 부족함을 채우게끔 열심히 합니다. 그 분위기는 결코 흐트러지지 않으며, 새로운 선수들도 그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되죠.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어요.”
b11: 작년에 시끄러운 일도 있었죠? 이근호 선수에게 그때는 어떤 기억으로 남았나요.
“아무래도 더 신경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그런 점에 대해서 선수들에게 얘기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 책임감을 통감했습니다. 한편으로는 ‘대구가 이젠 정말 관심을 많이 받는 팀이 됐구나’라는 것도 느꼈어요. 말을 많이 하면 잔소리가 되겠지만, 필요할 때는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고참 선수들이 많이 없으니 저나 (이)용래나 노력해야겠죠. (김)진혁이도 작년에 주장을 처음 했는데 아주 잘하고 있습니다. 아 그리고 우리팀에는 세징야도 있는데, 세징야는 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팀 내에서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며 원하는 방향을 많이 이야기합니다.”

b11: K리그에서 워낙 오래 뛰었으니 역대 수많은 외국인 선수들을 보았던 이근호 선수입니다. 그 선수와 세징야를 비교하면 어떤 거 같아요?
“일단 세징야는 장난기가 참 많은 친구라 좋아요. 영어로 소통을 하는 데, 깊은 대화까지는 안 되도 어느 정도 감정을 공유할 수 있어요. 세징야의 클래스라면, 보는 그대로죠 뭐. 정말 좋습니다. ‘역대급’으로 꼽힐 만한 선수인 거 같아요. 워낙 가진 게 많습니다. 한 가지 더 대단한 점은 세징야의 프로페셔널리즘입니다. 준비 과정이나 운동장 안에서 진지함, 그런 게 남달라요. 물론 에드가나 라마스 역시 훌륭합니다. 지난 시즌까지 함께했던 츠바사도 마찬가지고요.”
b11: 정태욱 선수가 훈련하다가 ‘죽을 뻔했다’라고 했어요. 이근호 선수는 어떻습니까?
“우리 태욱이가 엄살이 심해요 좀(웃음). 실은 가장 성실한데 말이죠. 음… 훈련 강도는 강해진 건 사실입니다. 그래도 다 버틸 만한 훈련이고, 그 안에서 선수들이 집중력을 가지고 정말 잘해주고 있어요. (아무래도 나이가 있으니 개인적으로 버겁다는 느낌은 없나요) 저는 이제 적당히 눈치껏 하죠(웃음). 모든 걸 다 똑같이 하기엔 무리가 오는 부분도 있는 게 사실입니다. 나이 차가 가장 많이 나는 선수들과는 거의 18~19살 차이니까요. 그러니 제 경험을 살려 필요할 때 쏟아 부어서 하고 있습니다. 코칭스태프에서도 배려해주시는 부분도 있고요.”
b11: 개인적으로 봤을 때 주력,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고 느끼나요?
“네, 아무래도 느껴요. 어린 친구들도 제게 한번씩 물어보기도 하고요. 그러면 ‘예전에는 페인팅 안 하고 쳤는데, 요새는 페인팅 안 하면 못 제친다’라고 솔직하게 답해줍니다(웃음). 그래도 경험을 토대로 할 수 있는 건 여전히 있습니다. 움직임과 동료 활용으로 극복할 수 있고, 재빠르게 공간을 선점하는 방식으로도 떨어진 스피드를 커버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용래는 이렇게 해요. 예전보다는 많이 뛰지는 못하지만, 노련하게 포인트를 잘 잡아요. 쓸데없는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맥을 짚고 끊어내죠. 용래는 그렇게 경쟁력 있게 잘하면서 ‘힘들다, 힘들다’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b11: 우승이 목표인 대구, 무엇이 필요할까요?
“우승하기로 다 같이 마음을 먹었으니, 그에 걸맞은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어떻게 보면 좀 더 무거운 분위기가 필요할 수도 있어요. 무슨 말이냐면, 우승하는 팀들은 한 번의 무승부와 패배에 대해 엄청 심각하게 받아들이거든요. 예를 들면 한 경기가 끝났을 때 중·하위권 구단이라면 ‘괜찮아, 다음에 잘하면 돼’ 이렇게 반응하겠지만, 우승하려면 결과가 아쉬웠을 때 직설적으로 지적하고, 그걸 모두가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해요. 실수를 덮고 넘어가는 게 아니라 바로 풀어서 얘기하는 거죠. 그렇게 경쟁하고, 안에서 살벌한 분위기도 만들어질 필요성이 있습니다. 이런 기억도 있어요. 제가 울산에 있을 때, 1년에 딱 4번 졌는데 우승을 못한 적도 있어요. 딱 4번졌는데 말이죠. 그러니 아까도 이야기했듯 무승부와 패배에 대하여 이제는 이전보다 더욱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욕심도 더 내고요.”
b11: 대구가 베스트 11을 가동했을 때, 전북이나 울산과 붙으면 경쟁력은 충분할까요?
“충분합니다. 일단 우리는 구성이 좋아요. 한국인과 외국인, 각자의 역할에 대한 이해도, 오랜 시간 구축한 시스템 등 여러 가지 장점이 있습니다.”
b11: 아무래도 나이가 적은 편은 아니니 ‘은퇴’라는 단어가 점점 가까워져오는 느낌이 들 거 같습니다.
“그렇죠. 지금 생각해 보면 먼저 뛰었던 형들이 있어서 저도 지금까지 할 수 있는 거 같아요. 형들에게 새해 인사를 할 때도 ‘형님들이 오래 하셔야 우리도 오래합니다’라고 하는 이유죠. 그러니 (염)기훈 형, 멋지게 마무리했으면 좋겠습니다. 인천 유나이티드의 (김)광석이 형도 마찬가지고요. 광석이 형과 특별히 친분은 없지만, 마음으로는 그저 응원하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강민수·김창수·박주영 모두들 좋게 마무리했으면 좋겠어요.”
“저는 멀리 보지 않습니다. 하루하루 살아갈 뿐이에요. 조광래 사장님의 배려로 계약이 잘 됐으니, 일단 올해만 보고 갑니다. 그 다음은 또 끝나고 생각해야죠. 2022년은 출전이나 공격 포인트도 좋지만, 일단 아프지 않고 선수들과 끝까지 함께하고 싶어요. 와중 팀에 도움이 되는 선수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거 같습니다.”
글=조남기 기자(jonamu@soccerbest11.co.kr)
사진=대구 FC, 한국프로축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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